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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Oct 12. 2021

1%의 희망을 갖고 매일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의 의미


병원을 어떤 이유로든 찾아 치료를 하다 보면 , 특히나 수술의 경우에는 완치라는 것에 대해 의사들은 100프로 확신하지 않는다. 수술이나 시술 과정을 설명하며 감염, 폐색전증, 심하면 합병증으로 사망까지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최악의 상황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있다 보면 덜컥 불안함도 생기고 두근거림과 동시 잠시 동의서 작성을 하며 멈칫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보다는 고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동의서에 사인을 한다.

 

그녀는 아버지와 고속도로에서 안개를 뚫고 가다 사고를 당했다. 비가 오늘 가을 날씨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고 앞 차량을 박아 미순 씨는 골반뼈와 다리뼈가 부서졌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였다. 동승했던 아버지는 사고의 상황에서 정신을 잃었지만 딸만은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차에서 딸아이를 꺼냈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다리의  극심한 고통으로 소리 지르고 울고 있었다.

X-ray 상 그녀의 골반 뼈는 수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다리는 커다란 통나무처럼 부어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다음날 응급 수술을 하고 그녀의 뽀얀 살과 보이지 않는 뼛속은 차가운 철심이 박혔다.


사고로 그녀의 가정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병원에 하나 있었던 특실에 모든 가족이 살림을 옮겨왔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의 곁을 지켜며 간호 하기 시작했다.

먹는 진통제와 주사가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고통에 비하면 진통제는 효과가 없었다. 마약인 데메롤까지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 미순 씨는 골반과 다리를 많이 다쳐서 수술 후 재활 이후에도 제대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임신하기도 많이 힘들 수도 있어요. “


25살,  한참 예쁠 나이의 딸을 둔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형외과 의사의 설명에 그녀의 부모님은  말을 잃고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진통제 좀 주세요.

너무 아파요. “

매일 소리를 지르고 우는 날의 연속이었다.

간호사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그녀의 병실을 드나들었다. 혼자서는 소변도 볼 수 없었고 옆으로도 돌아누울 수 없었다.

“ 저 치료하면 나을 수 있을까요?”

“ 그럼요.. 차차 통증 덜해지면 물리치료받고 ,재활 치료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용기 잃지 마세요 "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뿐이었다.


몇 달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딸의 간호에 매달렸다. 매일 딸의 몸을 닦이고, 먹이고, 달랬다.  울음으로 이야기하는 25살  '어른 딸아이'의 보호자가 된 것이었다. 정말 그녀의 어머니와 나는 어린아이 다루듯 조심히 그녀의 몸을 대했다. 철심이 박힌 다리의 상처에 소독을 하고, 주사를 놓고, 매 시간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체위 변경을 했다. 옆으로 돌아 눕는 것조차 통증이 너무 심했다. 혼자서는 화장실도 갈 수 없었기에 기저귀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보다 조금 어린 나를 무척 좋아하셨다.( 그땐 신규라 때 묻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정말 순수하게 간호하는 것에 사명이 큰 시기였으니까)  항상 고맙다고 하셨다.


그녀는 수술 후 수십일이 지나서 물리치료를 할 수 있었다.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었던 그녀였다. 침대 채로 처음 물리 치료실에 내려가고, 그 다음은 침대에서 내려오기, 휠체어로 물리치료실 가기, 그렇게 3개월 넘게 치료는 계속되었다. 다행히 젊었기 때문에 그녀는 생각보다 뼈가 잘 붙어 간다고 했다.


그녀에게 없을 것 같았던 일상과 퇴원의 순간도 왔다. 늦가을에 그녀는 입원하여 다음 해 봄에 퇴원했다. 다 죽어가는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생기를 머금듯 그녀도 다시 일어섰다.


긴 시간  함께 하며 그녀와 또 가족들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 미순 씨는

“ 그동안 내가 너무 심하게 신경질 내고 화내서 미안해요”

그녀의 엄마도

“ 우리 미순이 간호해주고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간호해줘서 고마워요. ”

작은 편지와 함께 핸드크림을 선물로 주고 가셨다.

그렇게 걸을 수도 그리고 어쩌면 여자로서 결혼도 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다쳤던 그녀가 허벅지와 다리에 커다란 흉터는 남았지만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어 마음까지 밝아져서 나갔다는 것이 그 당시 신규 간호사인 나에게는 커다란 감동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작년 어느날  근처 마트에서 그녀의 엄마를 만났다.

마스크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에 미순 씨의 엄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어머니 , 너무 반가워요. 잘 지내셨죠? 미순 씨도 건강히 잘 있지요?”

“ 한 간호사님 , 요즘에도 한 번씩 한 간호사님 생각났어요. 우리 미순인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어요. 감사합니다. “

어머니의 눈에는 행복이 가득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나처럼 둘이나 있다는 말에 그녀의 엄마만큼이나 행복했다.

어쩌면 다리뼈가 부러져 장애로 완전히 걷는다는 것이 힘들 수도 있었고, 골반이 다 부러져 아이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의사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와  가족들은 이 1%의 작은 희망을 갖고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과정들이 말하지 않아도 그림처럼  그려졌다.


의료진은 최악의 1%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치료를 한다. 다만 어떤 순간에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환자와 가족은 두려움을 이기며 1%의 가능성을 잡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문득 15년이 지나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고 미순 씨의 소식을 들으면서 작은 희망을 잡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간절히 원하고 , 한 걸음 한 걸음 아이가 걸음마하듯 매일이 쌓이면 다시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현실이 되기도 한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나는 어제의 불완전했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하고 나아지는 것이다.


수년이 지나 나는 23살의 신규 간호사에서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병원은 나왔지만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좋은 간호사로 생각해준 보호자가 있어 나 또한 인생을 무의미하게 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그렇게 최선을 다했기에 미순 씨의 삶에도 힘들었던 순간이 인생의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하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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