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땅값이 얼마인지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그 땅의 이름에 대한 관심이다.
왜 이 땅에는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하는 관심이다.
새로운 곳에 가면 그 땅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그 이름의 유래를 검색해 본다.
땅 이름에는 그 땅에서 있었던 우여곡절의 이야기가 어려 있다.
땅 이름에 역사가 담겨 있다.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성남시이다.
남한산성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성남이라는 땅 이름을 얻었다.
지금에서야 남한산성에서 어느 쪽에 자리하고 있는지 별로 중요치 않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어느 쪽에 있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때가 있었다.
남한산성의 북쪽에는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성 궁굴이 있었다.
남한산성은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외적을 막기 위해서 쌓았다.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외적을 피해서 임금님이 남한산성 남쪽을 파천을 하면
남한산성은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외적을 막아내는 성이 되었다.
내가 사는 옆 동네는 오리동이다.
지금은 눈을 씩고 봐도 보이지 않지만
옛날에는 그 동네에 오리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땅이었으니까 오리가 살기 좋았을 것이다.
다른 데서는 고작해야 한두 마리 정도의 오리를 볼 정도였는데
이곳에서는 수십, 수백 마리의 오리가 있었지 않을까 싶다.
오리가 사람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괜히 동네 이름을 오리동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리동은 오리가 많은 동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리동 옆에는 죽전동이 있다.
한글로 봐서는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힘들지만
한문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대나무 죽(竹) 자와 밭 전(田) 자가 합쳐진 말이다.
아! 대나무 밭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그러니까 옛날 죽전동에는 대나무밭이 넓게 퍼져 있었을 것이다.
땅의 이름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아무 의미도 없이 이름이 그냥 주어지지는 않는다.
땅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아무 생각 없이 허겁지겁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특한 계획을 가지고 다른 것들과는 구별되도록 특별하게 만드셨을 것이다.
길가에 놓인 돌멩이도 자세히 보면 옆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나름대로의 구별이 있고 특징이 있다.
얼굴에 귀가 두 개인 것도 이유가 있을 테고
입이 하나인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지혜이다.
그래서 지혜자는 한 번 말하기 전에 두 번 들으라고 가르쳤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아!'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나도 비로소 귀가 두 개인 이유, 입이 하나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손가락이 열 개인 이유는 무엇일까?
물건을 잡기 쉽도록 진화된 것일까?
주먹을 잘 쥐게 하기 위해서 5개로 손가락이 나누어진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함민복 시인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함민복 시인은 <성선설>이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의 손가락이 다섯 개인 이유를 알려주었다.
어머니 뱃속에서
우리가 몇 달 동안
은혜를 입었는지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가락 열 개를 주셨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이름은 없다.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모든 삶은 나름대로의 이름이 있다.
나름대로의 존재 의미가 있다.
나름대로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