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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25. 2024

나의 삶은 나의 삶대로 괜찮다


대기업의 회장이 그리 비싸지 않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신문기자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유명 메이커의 비싼 신발들을 제치고 중저가의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게 신기했나 보다. 

돈 많은 사람이니까 비싼 신발을 신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실제로 우리 눈에 비치는 돈 많은 사람들은 비싼 신발을 신는다. 

마치 우리의 생각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대기업의 회장은 나처럼 허름한 츄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동네를 돌아다니지 않는다. 

대기업의 회장이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그렇게 한다. 

언제나 깔끔한 옷차림에 윤기가 질질 흐르는 신발을 신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모양새를 사람들은 품위라고 부른다. 

웃긴 건 이런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돈을 쓴다. 

품위유지비라고 명목의 돈이다. 

돈이 많다 보니까 이런 데도 돈을 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기업의 회장처럼 돈 많은 사람도 분식집에서 라면이나 떡볶이, 오뎅과 순대 같은 음식을 먹을까?

아니면 이런 음식들도 일류 요리사들이 요리해 주어야만 먹을까?

라면 끓일 줄은 알까?

라면도 누가 끓여주어야 먹을까?

몸이 뻐근하면 훌쩍 산길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혹시 뒷동산에 올라갈 때도 수행원들을 대동해야만 가는 것 아닐까?

배낭여행은 갈 수 있을까?

특급호텔과 고급 차량과 비행기가 준비되어 있어야만 여행을 갈 수 있는 것 아닐까?

낯선 길에서 낯선 사람과 낯선 말로 이야기를 하면서 몸으로 배우고 깨달을 수 있을까?

아니면 하나하나 알려주는 가이드와 선생님이 있어야만 하는 것 아닐까?

낙엽을 밟을 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을까?

흙길의 포근함을 알까?

맨날 잘 닦여진 콘크리트길과 딱딱한 대리석길만 걸어다니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갔다.




대기업 회장 같은 돈 많은 사람을 보면서 기가 죽는 이유가 있다. 

내가 그의 모습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을 대동해서 걸어가는 모습도 부럽고, 비싼 자동차에 가이드를 앞세운 모습도 부럽고, 고급 레스토랑에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모습도 부럽다. 

그런데 이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사람들에게서 싹 없어져 버린다면 어떨까?

대기업의 회장이 폼 잡고 서 있는데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직원들이 데면데면하게 대응해 주는 것이다. 

여행 가려고 비싼 티켓을 구입했는데 비싼 티켓이든 저렴한 티켓이든 똑같이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줄 테니까 먼저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는데 돈이 뭐가 대수냐고 하면서 돈을 많이 줘도 먼저 지나갈 수 없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부러움이 없어지는 사회가 된다면 돈 많은 대기업의 회장들은 참 난처할 것이다.




어쩌면 돈 많은 대기업의 회장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답답함이 있을 것 같다. 

구중궁궐 안에 있는 임금님은 구중궁궐에 갇힌 몸이었을 것이다. 

궁궐 안보다 궁궐 밖에 훨씬 넓은 세상인데 임금님은 궁궐 안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것’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그것’에 구속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한다. 

남들에게 계속 부러움을 안겨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인지 자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지 구분이 안 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것 없다. 

나의 삶은 나의 삶대로 괜찮다. 

그렇게 믿으며 사는 게 속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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