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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선비,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by 박은석 Mar 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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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광복을 꾀하여

북경 상해 십 년 온갖 고생 다 겪으며

잠시도 쉬지 않고 동분서주하였네.

뜻한 과업 성취하지도 못한 채

머리만 흰 눈 맞은 듯

하루저녁 미친 회오리바람 급히 일더니

병약한 이 몸 적의 감옥에 갇혀 버렸네.

때로는 전기로 혼을 앗아갔고

때로는 쇠사슬로 걷어 올렸네.

고문은 비록 참혹하고 독하였지만

담소하는 정신은 명랑하였네.

십여 년간 옥살이를 하다 보니

구차스레 투생(偸生)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네.

맏아들 왜놈에게 죽고

둘째 아들 오랑캐에게 죽어

사람 죽고 가문 이리 망하니

젊은 과부와 아이들 모조리 표류되었네.

폐인된 이 앉은뱅이

인사도 못 차리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헛되이 탄식만 했었네.”




어느 독립운동가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지은 <스스로 비웃음>이라는 시의 한 대목이다.

대한의 독립이라는 높은 뜻을 세웠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흔적이 보인다.

전기고문을 당하고 쇠사슬로 얻어맞았다.

얼마나 심한 고문을 당했길래 ‘앉은뱅이’가 되었을까?

상상이 안 된다.

그런 고문을 당하다 보면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삶을 구걸할 수도 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감옥에서 보내면서도 투생(偸生)하는 것이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아버지를 도우려다 큰아들은 일본놈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둘째아들은 중국에서 목숨을 잃었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자신은 폐인이 되어 집안에만 틀어박힌 꼴이 되고 말았다.

자기 자신을 보니 참 바보처럼 살았다는 생각에 자신의 삶을 비웃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그 누구도 그를 비웃지 못한다.

글을 쓴 이도 사실은 자신을 비웃고 있지 않다.

정몽주의 노래처럼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자신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의 일편단심은 대한의 독립이다.

그는 독립운동가 심산(心山) 김창숙이다.




김창숙은 을사늑약(1910년) 때부터 일제에 반대하며 친일파들을 규탄하였다.

“역적들을 성토하지 않는 자도 또한 역적이다”라는 글을 짓고 사람들에게 외쳤던 인물이다.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자신이 유학자였지만 기미독립선언서에 적힌 민족대표 33인 중에 유학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부끄러움을 씻으려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강화회의에서 장문의 글을 써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려고 하였다.

후에 이 사건은 ‘파리장서(長書) 사건’ 혹은 ‘유림단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글에서 그는 

모든 인류는 자기 나름의 삶의 양식이 있으며 여러 나라와 민족은 제각기 전통과 습속이 있어서 남에게 복종이나 동화를 강요받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4천 년 넘는 역사를 가진 문명의 나라이며 우리 스스로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일본의 간섭은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리장서는 일제에 들통이 났고 그로 인해 수많은 동지들이 잡혀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김창숙도 밀정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모진 고문과 회유를 당하면서도 그는 “비록 고문으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맹세코 난언(亂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긴 옥살이 끝에 해방을 맞이했지만 그의 몸은 불구가 되었고 집은 망했다.

여관을 전전하였고 친척집에 얹혀살았다.

당당하게 자신의 몫이라며 많은 것을 가져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무너진 유학을 다시 세우려고 노력했다.

친일파의 소굴이 되어버린 경학원을 깨끗이 정리하고 유림의 본산인 성균관(成均館)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1953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젊은이들에게 선비정신을 전하고자 성균관대학교를 세우고 초대 총장이 되었다.


심산 김창숙, 우리는 그를 불굴의 독립운동가이자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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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성균관대학교에 세워진 동상 (독립기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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