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으로 경험한 조직문화의 문제점과 개선점
*본 글은 지난 1년간 '블루밍비트' 라는 블록체인 미디어 회사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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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문화에 대한 회고(2) https://brunch.co.kr/@scotch2510/5
Ep 03. 조직문화를 정의한다고 스스로 적용되진 않는다.
지난 사건으로 인해 대표님은 조직문화에 대한 컬처북을 빠르게 만들기 시작했고 IR 준비로 바쁘신 와중에 우리 회사에서 지향하는 조직목표, 업무 문화, 인재상 등을 정리하여 하나의 문서로 만들었고 완성되자마자 슬랙으로 빠르게 공유해주셨다. 그리고 타운홀 때 그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를 직접 진행하시면서 회사에서 더이상 그런 문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당부하셨다.
하지만 지난 사건에 대해서는 그 어떤 처분도 이뤄지지 않았다. 욕설 사건 이외에도 또 다른 분은 피그마에서 수정작업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를 보고 '지금 뭐하는거죠? 그대로 놔두세요'라며 다그치기도 하고 분명 슬랙에서 사전 협의를 했고 본인이 체크표시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전부터 자기한테 조금이라도 까다롭거나 불편하면 못한다고 하거나 마음대로 변경해서 개발하거나 했던 사람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더 이상 같이 일하기 힘들정도라고 생각되었다.
이외에도 회의에서 여태 어디 어디 회사를 다녔냐며 물어보고 다 ㅈ소 아니냐며 깔깔대며 그분의 경력을 비하했으며 애초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아예 없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도 가장 큰 문제는 스타트업이기에 대체자가 없었다는 것, 징계를 논한다거나 그분이 나가게 되면 더이상의 프로젝트 진행이 어려웠던 상황 때문에 그 어떤 처분도 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반복에 반복을 겪었지만 명확한 해결책이나 대처가 없으니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말투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여전히 협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회의시 간만 되면 숨이 턱턱 막힌다며 스트레스를 받아했고(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출근하는게 두렵다며 도망치고 싶다는 얘기도 많이 했었다.
우스갯소리로 제일 많이 했던 게 '이제는 그 사람들에 대한 처분이나 이 회사가 변하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빨리 나가는게 더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라고 했다. 사실 그 정도로 회사는 내부적으로 매우 심각했고 프로덕트는 억지로 굴러만 가는중이었다. 공유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고 공유하면 또다시 비꼬거나 비난하는 내용만 돌아왔고 일에 효율은 점점 떨어져 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문화가 정의됐지만 그 조직문화는 단지 1회성 타운홀 주제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이런 조직이 되어야합니다!'라고 공표했지만 문제를 일으켰던 사람들은 발표를 하는 내내 왜 우리 조직이 이런 문화를 가지게 되었는지, 나는 정의된 조직문화에 맞는지에 대한 고민하려는 태도는 없었고 여전히 핸드폰만 했고 자기들끼리 속삭였다. 결국 컬처북에 맞게 행동하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열심히 고민하고 써 내려갔어도 결국 그들에겐 흰 종이에 검은 글자만 적혀있었을 뿐 조직문화에 맞게 변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이쯤에서 깨달았어야 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맞지 않는 사람들은 떠나는 게 맞을 거라고, 하지만 프로젝트를 멈추는 것이 용납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문제는 반복되었으며 오히려 피해자가 회사를 더 먼저 떠나고 싶어 하는 상황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를 제외한 피해자들은 회사를 떠났다. 업무 과정에서 너무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로 인해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던 부분이 가장 컸고 이 조직은 얘기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조직문화는 단순히 글로 써 내려간다고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것 패시브적인 것이 아니다. 수 없이 많은 구성원과의 스킨십과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가이드와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순간에 관여하며 지향하는 바로 향해 갈 수 있도록 누군가는 키를 잡아주어야 한다. 하지만 정의만 해놓고 '이대로 지켜주세요' 라고 하는 순간 그 누구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과거와 다른 조직문화를 가져오며(또는 없었다면) 공감되지 않는 조직문화를 이제부터 지켜달라라고 하면 그 누가 그것에 공감하며 따르려 할까?
물론 회사와 대표의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여러 방향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회사를 '정상적'으로 끌고 가고 싶다면, 채용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남들이 보기에도 '좋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면 무언가를 진행할 때는 공감을 얻는 행동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있어 공감을 얻으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공감 없이 경영진선에서 결정하고 전달하는 일도 있겠지만 적어도 조직문화만큼은 기존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을 잘 설정하고 이전에는 업무가 급해서 채용했지만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하는 조직문화에 맞지 않는다면 그쯤에서 빠르게 이별하는 것도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너무 착했다. 말이 안 되는걸 말이 된다고 믿었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오히려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만 더 들었고, 이게 맞는지 의문을 갖다가도 끝내 이해하지 못해 포기하였다. '원래 저런 사람인데...', '얘기한다고 바뀔까? 내가 노력한다고 달라질까?' 이런 자책과 스스로에게만 끝없이 질문했고 결국 답을 얻지 못했다.
조직문화를 올바르게 잡고 싶다면 또는 문제에 대해서 확실하게 해결하고 싶다면, 조직에 대한 신뢰가 아직 남았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는 반드시 공론화해야 하고 꼭 해결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야 한다.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안되면 떠나야 한다. 애초에 그 조직은 그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그냥 좀 대충 넘어가지' 이런 생각일 뿐이다.
큰일로 만들고 싶지 않고 구성원을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것뿐이니 애써 미련 가질 필요는 없다.
요즘은 이전과 다르게 조직문화와 구성원들에게도 많이 신경 쓰는 추세이기에 나를 존중하지 않는 회사에 대해서 회사를 존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잘되고 내가 안정감을 느껴야 회사를 믿고 회사가 잘되게 내가 더 노력할 텐데 없는 동기부여마저 깎아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절대 해결해주지 않는데 오히려 그걸 믿고 기다리는 건 시간 낭비다. 문제가 생겼다면 반드시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