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리하는 남자야!

<육아휴직 170일차>

by 허공

“아휴 덥다, 아침부터 푹푹 찌네”

아침 온도를 보니 30도였다. 며칠 동안 무더위가 계속 되고 있었다. 낮에는 당연히 덥고 밤에도 더웠다. 그나마 낮에 혼자 있는 동안은 선풍기로 때울 수 있지만 가족들과 같이 있는 밤에는 에어컨이 필수다.


어제 아침,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야 되나 고민을 했다. 전 날에는 카레를 해서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다. 아내도 짱 맛있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이틀 연속 같은 메뉴는 좀 그렇다. 하루는 걸러야 한다. 냉장고에 있는 반만 남은 무가 떠올랐다.

‘그래 소고기 무국을 하자’


아이들을 등원시킨 뒤, 이은대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듣고 나니 어느덧 12시였다. 어제 먹다 남은 닭고기와 수박으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모자를 쓰고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햇빛은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잡아먹을 듯 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침이 말랐다. 그나마 모자라도 써서 다행이었다.


집 앞 사거리 큰 도로를 건너면 이마트가 있었다. 마트 안에 들어가니 금방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땀에 젖은 등을 말려주었다. ‘아, 이래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는구나’, 고작 5분 동안의 더위를 겪고 나서도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의 날씨였다.


마트에서 소고기 무국에 들어갈 한우 소고기, 그 밖에 쌀, 계란, 오리고기, 우유, 아이들 간식을 캐리어에 담아 계산을 했다. 영수증을 보니 8만원이 넘었다.

‘와 물가가 진짜 장난이 아니구나’

물론 쌀이 포함된 가격이었지만 직접 장을 보면 물가를 체감하게 된다.

장을 보고 난 뒤 집에 도착했다. 몇 번 소고기 무국을 끓여봤지만 정확한 레시피가 머리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직 초보 요리사의 한계다. 인터넷으로 소고기 무국을 쳐보았다. 간신히 레시피를 보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우선 무를 꺼내서 같은 모양으로 잘랐다. 반 절 남은 무를 다 잘랐더니 상당한 양이었다. ‘이거 다 먹을 수 있으려나’

다음은 다진 마늘, 집에 다진 마늘이 없어 냉동실에 있는 깐 마늘을 물에 씻은 뒤 직접 빻았다. 꼭 다진 마늘을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마늘을 빻는데 30초도 안 걸린다.

다음은 소고기, 미리 찬 물에 담아 피를 뺐어야 하는데 늦었다. 급한 대로 찬물에 3번 정도 씻어 큰 냄비에 넣었다. 참기름에 볶아야 되는데 참기름이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장모님이 주신 들기름을 2숟가락 넣고 전기레인지를 켰다. 향기로운 들기름 냄새가 나면서 소고기가 익을 때까지 열심히 볶아 주었다.

다음 단계, 소고기에 무를 넣고 다진 마늘도 같이 넣어주어 볶았다. 국 간장 2숟가락을 넣고 볶은 뒤, 물을 1.7리터 정도 넣어서 끓여주었다. 30분 정도 끓인 뒤 미리 썰어 놓은 대파를 넣고 5분간 더 끓여 주었다. 맛을 보니 거의 맹탕이었다. 마지막으로 소금 한 숟가락을 넣고 5분간 더 끓여 주었다. 드디어 요리 완료다. 이제 쉬어야 하지만 아까 건조기에 돌렸던 빨래를 개야 한다. 빨래를 개고 나니 어느 덧 오후 4시. 이제 아이들 하원을 시켜야 한다.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고 싶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웠다. 코로나와 더위 때문인지 놀이터에도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첫째 사랑이의 친구인 소예를 만나 놀이터에서 20~30분 정도 놀고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목욕시킨 뒤 아내가 소고기 무국을 다시 한 번 끓이고 반찬으로 참치 계란 전을 만들었다. 우선 아내가 소고기 무국을 맛을 본 뒤 “오, 맛있네”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더운 날에 소고기를 사와 요리를 한 보람이 있었다. 아이들도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항상 인생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이는 그나마 국에 밥 말아먹는 것을 좋아해서 탁 하고 말아서 떠먹었지만 첫째 사랑이는 참치계란전만 먹었다.

3명이 다 잘 먹었으면 좋았겠지만 2명이라도 잘 먹었으니 어디냐, 그래도 성공이었다.


휴직을 하기 전 라면과 미역국 정도 밖에 끓일 줄 몰랐던 나, 지금은 각종 볶음밥, 국, 찌개, 수육, 연어요리 등등 여러 요리에 도전하고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위기는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육아휴직은 그냥 쉬는 게 아니었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식사도 어느 정도 책임져야 했다. 또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 주는 가족들을 보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 요리 하는 남자야! 오늘은 그저께 만든 카레를 다시 먹여야겠다. 남는 음식을 버리는 것은 환경파괴요, 죄악이다. 싹싹 긁어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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