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못하면 엄마 잘못인가요?

아이의 성취는 엄마의 자랑거리가 아니다.

by 똑선생
내가 만난 아이의 이야기

5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서 공부를 꽤 잘하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모든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고 영재학급을 준비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이는 표정이 없었다. 자신이 높은 성취를 보이고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있음에도 항상 무표정이었고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표정이 항상 안 좋아서 어디 아프냐는 말을 자주 건넸다. 실제로도 아이는 머리가 아프다거나 배가 아프다고 보건실 가는 일이 가끔 있었다. 교사로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표정이 안 좋아 어디 아프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해서 살펴볼 뿐이었다.

초등학생들이 머리나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것은 날씨나 먹은 것 때문이 보통이지만 사실 스트레스일 때도 많다. 그런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초등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혹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몸이 아픈 경우는 별로 없다. 보통은 가족, 친구와의 문제로 힘들어하곤 한다. 아이의 감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존재가 가족, 친구다. 배가 며칠 동안 아프다고 해서 따로 불러서 조심히 물어보면 친구와 싸웠거나 부모님 사이의 갈등이 있거나 부모님에게 큰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상담주간과 평소에 만나본 아이의 엄마는 치과의사로, 자기 관리를 잘하셨고 말씀을 굉장히 교양 있게 하셨다. 나에게 아이에 대해 사랑을 표현하셨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가 가정으로 인해 스트레스받으리라고는 의심하지 못했다. 친구와도 적극적으로 어울려 놀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친구와 어울렸고 본인이 크게 친구 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아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두 달 이상 지났을 무렵, 아이는 조금씩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성격임에도 매일 일기를 쓰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조금씩 마음이 열렸던 것 같다. 아이는 처음에 일기에 자신의 기본적인 생활에 대해서만 썼는데 마음을 열고나서는 자신에 대해 아주 솔직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반전의 엄마, 그리고 상처 받은 아이

세상에, 나는 아이의 진짜 생활을 이제야 엿보게 되었다. 아이의 엄마는 내가 몇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그 교양 있던 분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아이가 문제 하나만 틀려도 면박을 주셨다. 늘 완벽했던 어머니는 아이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아이의 실수도, 약간의 부족함도 인정하지 않으셨고 아이를 옥죄는 말과 행동을 그동안 많이 하셨다.


아이는 그 속에서 숨이 막혔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리다면 어린 12세 아이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가 됐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갑자기 그런 요구를 하시는 건 아닐 텐데.. 아마도 어릴 때부터 그런 엄마였을텐데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동안 수학 시험 한 개만 틀려도 한숨을 푹푹 쉬고 슬픈 표정으로 변하던 아이가 이제는 이해가 됐다. 아이의 감정 없는 표정도, 세상 다 산 듯 주변에 관심 없는 모습도 이제는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아이와 많은 대화를 했다. 아이는 아무에게도 말할 사람이 없었기에 참았던 감정을 마구 쏟아냈다. 아빠도 엄마의 심한 말과 행동에 개입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동생도 있지만 자신에게만 엄마가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아이는 독립적인 존재, 엄마의 성취와 아이의 성취는 별개다.

겉으로만 한 아이를, 한 가정을 판단할 수 없다. 완벽해 보이는 부모님과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아이도 마음속에는 상처가 있을 수 있다. 부유한 집안과 전문직 부모님만이 아이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다.


이 아이가 유난히 겪은 일이긴 하지만 사실 많은 부모님과 아이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많은 가정에서 아이의 성취를 부모의 성취로 여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거나 어느 대학에 붙었다면? 임원선거에 나가 당선된다면? 아이가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면? 보통 부모님들은 자랑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린다.

좋은 소식을 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이의 성취가 엄마의 성취인 것처럼 여기기 시작하면 엄마와 아이 사이에 비극이 시작되게 된다. 다음에 이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면? 혹은 다른 것에서 실패하면 아이의 성취와 엄마의 성취를 동일시하는 엄마들은 크게 실망하고 아이를 향해 화살이 날아간다. 아이는 실패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지만 다시 도전하고 일어서야 하는데 자꾸 탓하고 주변과 비교하는 엄마의 말에 일어설 힘을 잃는다.


부모 또한 불행하다. 아이의 성취가 곧 나의 성취라고 생각하면 아이를 부모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내가 직접 하는 거면 뛰어들어 내 스타일로 하면 되는데 아이는 도저히 내 맘처럼 움직이지 않고 결과 또한 내 맘 같지 않다. 생각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크게 실망하고 화가 난다. 결과는 아이와 부모 모두 지친다. 그리고 불행해진다.


아이는 엄마와 별개의 독립된 존재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주 잊는다. 나도 아이가 뭔가 잘못하면 내가 잘못한 것 같고 아이가 잘하면 내가 잘한 것 마냥 으쓱하는데, 사실은 나는 나고 아이는 아이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아이의 성취를 부모로서 도울뿐이지 아이가 성취하는 것이 곧 엄마의 성취라고 생각하지 말자. 아이가 성취를 했을 때 마음껏 기뻐하고 축하해주면 된다. 아이가 잘되면 내가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아이가 실패해도 내가 실패한 것처럼 여기지 말고 아이가 다시 일어서서 도전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워주자. 아이를 일으키고 힘을 줄 수 있는 부모가 진짜 행복한 아이를 만들 수 있다.


엄마도 성취할 거리를 찾자.

아이만 바라보고 집중하면 아이의 성취를 자신의 성취로 여기기 쉽다. 엄마도 평소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거나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 거기에서 성취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아이로 인해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고 조금 떨어져 자신의 삶을 산다면 좀 더 아이를 독립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이의 성취는 절대 엄마의 성취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와 엄마가 각각 독립적인 영역을 가지고 서로를 응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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