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분명해진 '자기주도적학습능력'의 중요성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공기가 가득했던 하루가 지나간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학교의 풍경이다. 서로 눈만 마주쳐도 웃는 아이들. 일기장에 이제 학교에 자주 가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설렌다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지금 이곳에 있다.
이번 주부터 우리 반 아이들은 주 3일 등교를 한다. 아직 정상화되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늘어난 등교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원래 주 5일 등교가 보통이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는 것이 참 어려워졌다. 실제로 지난주까지 내가 맡은 3학년은 주 1회 등교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올 때마다 어색하게 교실을 들어서는 아이도 있었다. 매일 당연하게 오고 가던 학교가 이제는 그렇지 못한 곳이 되어버려 안타까울 뿐이다.
특히 안타까운 아이들은 전학 온 아이들이었다. 올해 우리 반에 2명이 전학을 왔는데 학교에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데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자유로운 대화와 놀이가 어렵다 보니 친구들과 섞일 기회가 없었다. 전학 온 지 세 달이 넘었는데도 오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앉아있는 그 친구를 보니 마음이 무겁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지난 여덟 달, 아이들은 학교에서 조금씩 멀어졌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줌을 통해, 온라인 수업을 통해 가능한 한 촘촘히 관리를 했음에도 오늘 만난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동안의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온라인 수업에서 이미 배운 내용임에도 아이들은 처음 듣는 듯 낯선 모습이다. 수업을 하는데 눈이 금방 다른 곳을 향한다. 책에 답을 쓰고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칠판 쪽을 쳐다보고 있고 이제 다음 장을 넘겨야 하는데 넘기지 않는다. 앉아있는 것이 참 불편해 보였다.
아이들의 버퍼링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 시간은 어땠을까? 화면만 보면서 수업을 듣는 것이 3학년 아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많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인데, 선생님 없는 공간에서 수업을 과연 잘 들었을까? 요즘 맞벌이 가정도 많은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 학교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여덟 달 동안의 아이들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도를 해야 좋을지 오후 내내 고민이 되었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짜 능력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바로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다.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이 필요하다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들어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길러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당장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초등학교 시기를 보내곤 한다. 그러다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학교에서 늦게 끝나고 학원을 오가다 보니 공부를 알아서 하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또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실제 아이들은 학교를 오가고 학원을 오갈 뿐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스스로 학습하는 시간을 거쳐야 진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음에도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 누가 하라는 것에 길들여져 끌려가는 공부를 할 뿐 진짜 내가 주도하는 학습을 하지 못한다.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있는 아이들에게 이번 코로나 상황은 어쩌면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아는 내용이나 자신이 관심 없는 부분까지 들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진짜 내가 알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모르는 것을 찾아보며 배워가는 진짜 자기 주도 학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읽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인터넷 사이트나 유튜브를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없는 학생들에게 지난 여덟 달은 의미 없이 날아간 시간일 수 있다. 규칙과 틀이 없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풀어진 시간 속에 아이들은 집중력도 잃고 자신에 대한 통제력도 잃었다. 자신의 시간을 통제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자유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도 늘었고 게임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이 아이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말았다.
몇 년 전 6학년을 맡았을 때 우리 반에 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첫날부터 그 아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수업 시간에 태도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내가 하는 수업을 모두 다 눈과 귀에 담아내려는 듯 집중했다. 가르치는 사람은 안다. 아이의 눈빛만 봐도 이 아이가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니면 반만 듣는지 말이다. 이 아이는 내가 뭔가를 더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해서 수업을 들었고 질문도 꾸준히 했다.
아이의 성적은 역시나 좋았다. 그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학년에서 1,2등 할 정도였다. 워낙 수업 태도가 좋았고 성적 또한 우수했기에 특별한 교육을 따로 받고 있지는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학교가 좋은 학구에 있었고 교육열이 매우 높은 곳이었기 때문에 보통 아이들이 학원을 수준별로 다니고 있었는데 이 아이도 그런 학원 한 두 군데쯤은 다니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 정도로 잘하는 아이이면 선행도 두 학년쯤은 앞서서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학원에 대해 우리 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아이에게 어떤 학원을 다니고 있는지 누군가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대답했다.
“나 학원 안 다니는데..”
우리는 깜짝 놀랐다. 모두들 쟤는 우리가 모르는 과외나 학원을 다닐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 또한 공교육에 있으면서도 특별히 잘하는 아이를 보며 사교육을 받고 있을 거라고 짐작한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 생각들을 뒤로하고, 가장 궁금한 것은 그 아이의 공부 방법이었다. 어떤 비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저는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들어요.”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처럼, 이 아이도 수업 시간에 충실했다는 조금은 뻔한 이야기를 했다. 사교육은 전혀 받지 않고 있고 바이올린만 배운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듣고 내용을 이해한 뒤 혼자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만 찾아보든 교사나 부모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수능 만점자의 이야기는 실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아이의 대답은 와 닿았다. 왜냐하면 평소 이 아이의 수업 태도가 진짜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6학년 2학기 말이 되자 처음으로 수학에서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고 한두 달을 학원에 다니면서 그 부분을 배운 뒤 다시 혼자 하는 공부로 돌아왔다. 이 아이를 보며 자기 주도 학습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학교를 옮긴 뒤에도 가끔 자신의 소식을 전하곤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가서는 공부에 매진한다며 한동안 연락이 없었는데, 올해 초 대학 입학을 마치고 연락이 왔다. 아이는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에 놀랍지 않았다.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의 학습을 이끌어갈 수 있는 아이라면 명문대 입학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심을 다해 그 아이에게 축하하는 마음을 전했다.
사실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이유는 스스로 공부를 해나가는 데 부족함이 있을 때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학원을 보조수단으로 선택해서 다녀야 하는데, 많은 아이들이 필요를 느끼는 단계 없이 필수처럼 학원을 선택한다. 학원을 다니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채 학원의 수업을 듣고 학원 숙제를 밤늦게까지 하며 시키는 대로 끌려가며 공부를 한다. 그러다가 정작 혼자 해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누군가 도와주겠지’, ‘누군가 내가 할 일을 알려주겠지.’라는 수동적인 생각을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자유시간을 주면 아이들은 한참을 뭘 해야 할지 고민한다. 남에게 이끌리는 것에 길들여져 자신의 시간을 경영하지 못한다.
특히 올해처럼 코로나 상황이 되어 갑작스럽게 자율과 자유가 주어지자 아이들은 어찌할 줄 몰라 멈춰있다. 엄마나 아빠가 집에 계신 상황이면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제대로 들으며 시간을 좀 더 유익하게 쓸 수 있도록 도우려고 노력하겠지만 실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와 갈등을 빚는 일이 잦아질 뿐이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부모는 답답하다. 또 맞벌이 가정의 경우에는 아이들 혼자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생활해야 하므로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큰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부모와 교사가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의미 없는 자유 시간만을 만끽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이 궁금한 것,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공부를 해나가고, 자신의 시간에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어른이나 학원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배움 경험을 쌓아갈 수 있다. 아이들 교육의 방향을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기르는 쪽으로 정하고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그냥 "너 스스로 해."라는 말로는 아이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만들 수 없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필요한 공부를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어른들의 구체적인 조언과 경험의 공유가 필요하다. 어른의 역할은 지식의 전달자, 결정의 주체자가 아니다. 혼자 일어설 수 있게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며 점점 손을 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현재 아이들이 탄 자전거를 어느 정도의 힘으로 잡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