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다 Aug 12. 2024

임신 확률 15%

2. 인공수정을 하다

우리 부부는 8월까지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9월부터 적극처방을 받기로 했다. 오랜 기다림이 될 수도 있었고, 기다려도 되니까 건강한 아기가 와 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초조하고도 행복한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사실 산전검사를 받을 때만 해도 정확히 인공수정이 무엇인지, 시험관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정도로 무지했다. 임신을 계획하기 전까지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임신 계획이 길어지고, 시술들을 조금씩 염두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시험관은 인공수정보다 훨씬 더 힘든 시술이라는 정도만 구분 지어 놨었다. 당시만 해도 아직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에 유난 떨며 임신준비가 집착이 되지 않길 바라는 이유에서였다.






혹시나 하는 우려는 결국이 되어 내가 시술 당사자가 되었다. 8월까지도 자연임신이 되지 않은 것이다. 그제야 담당 의사 선생님과 각종 매체로 인해 인공수정, 시험관의 구분을 확실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빌려 짧은 설명을 하자면,

인공수정은 남자의 건강한 정자를 추려 여자 자궁경부를 통과한 지점에 직접 뿌려주는 것이 시술의 전부이고 그 이후부터는(정자가 헤엄쳐서 난자에게 가야 하는 것,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것 등) 모든 것이 자연임신의 방식과 동일하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시험관은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를 채취해 체외에서 수정 및 배양시킨 뒤, 배아를 다시 여자의 자궁에 안착시키는 것이었다.






내 나이로 시험관 시술 성공 확률은 44%였고 인공수정은 15% 내외다.





나는 남편에게 확률이 높은 시험관을 바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남편은 그래도 내게 조금은 덜 힘든 인공수정을 한 두 번이라도 해보자고 했다. 우리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선생님도 검사결과 둘 다 문제가 없으니 인공수정을 한 두 번 먼저 해보자고 하셔서 시험관은 차순위에 두기로 하였다.






시험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공 수정도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나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을 하고 있어 다행이었지만, 직장 다니는 난임여성들은 병원 스케줄과 호르몬에 따라 변화하는 몸 상태 때문에 참 고민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술 준비가 시작되면 일단 병원에 가야 하는 날들이 잦다. 생리가 시작되면 3일 이내 병원에 방문해야 했고 그때부터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후 과배란이라는 것을 해 난포를 많이 키우는데 그 변화를 체크하러 병원에 몇 번 더 방문해야 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도 할게 많았는데 매일 시간 맞추어 약도 먹어야 고, 배주사를 직접 놓아야 다. 나는 겁쟁이라서 시술을 하기 전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이 배주사였다.(지나고 나니 배주사는 힘든 것도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 간호사 선생님께 주사 놓는 법을 배우고 남편이 있을 때는 남편이 놓아주었다. 남편이 없던 첫날에는 병원에 갈까 말까 백번을 고민하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맞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꼭 하는 게 맞겠다 싶어 큰 마음먹고 주사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듯 평범하던 내 일상에 꽤나 신경 쓸 일들이 많아졌다. 약과 주사시간이 신경 쓰여 루틴에 벗어난 행동을 하기가 꺼려졌고, 아침마다 꾸역꾸역 일어나는 게 힘들었지만, 제법 잘 다니고 있던 수영도 혹시 모를 감염을 피하기 위해 그만두어야 했다. 아직은 소소하지만 찬란한 꿈을 꾸며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에도 크게 신경 쓰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일들을 제치고 1순위로 아기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9월 21일 시술 전날, 잘 자란 난포 3개를 터트렸고,

9월 22일 드디어 시술 당일이 되었다.





기대감보다는 공포심이 가득했다.

행복 임계점이 매우 낮은 게 장점인 나는 고통 감내력도 매우 낮은 단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심지어 고통을 남들보다 심하게 느낀다고 여길 정도이다. 고통을 잘 느껴서 겁쟁이가 되었는지, 겁쟁이라서 고통을 잘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고통을 감내하는 부분에서 만큼은 나는 확실히 겁쟁이가 맞다.

사전 정보없이 무지한 채 했던 자궁조영술 검사 난이도에 놀래서 부디 그만큼은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아무것도 몰랐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술 당일날은 남편이 먼저 병원에 가서 정자 채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자 채취 후 약품 처리하는 시간이 걸려서 나는 남편 예약시간보다 한 시간 반쯤 지난 후에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냥 남편 예약시간에 맞추어 같이 가서 기다리기로 했고,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신분증 검사를 하고 남편이름과 내 이름이 적힌 팔찌를 끼워주셨다.


"정채원 님. 남편 성함이 김진서 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정확히 남편의 정자를 내 몸에 넣는 게 맞는지 시술 전까지 남편이름 확인과 팔찌를 몇 번씩이나 번갈아 확인하셨고,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가장 많이 확인하는구나'라는 생각들을 하며 나는 혼자 수술대로 올랐다.







간호사 선생님이 시술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해 주셨다. 자궁의 위치가 좋아 시술이 크게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해 주셔서 조금은 위로가 됐다. 준비가 끝나고 담당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시술은 말처럼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걱정이 안도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취를 하지 않아 느껴지는 낯선 느낌들이 계속 긴장하게 만들었고, 그런 나를 보던 간호사가 시술 내내 손을 꼭 잡아주시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보름간의 준비는 고되었지만 그에 비해 직접적인 시술은 5분 정도로 끝이 났다.

시술이 끝난 후 30분간 휴식을 취하고 약을 처방받으며 설명을 들었다. 시술이 끝났다고 이달의 모든 준비가 끝난 건 아니었다. 앞으로 보름동안은 시간 맞추어 매일 질정을 넣어야 한다.

선생님은 다음 생리가 시작하는 날 즈음 임신테스트기(이하 임테기)를 해보고 2줄이면 피검사를 하러 내원하라고 하셨고, 생리가 시작되면(임신실패) 다음 임신 준비를 위해 내원하라고 하셨다.





막상 준비했던 시술이 다 끝나고 나니 기억의 오류 때문인지 지금의 과정보다 앞으로의 기다림이 더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이 달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은 이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이제는 신의 영역이다.





'아가야, 넌 어디쯤이니?'



이전 02화 85년생 동갑 난임부부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