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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다 Aug 26. 2024

우리 아기의 태명은 '열무'입니다

6. 행복한 5주차 임산부

시간이 원래 이렇게 느리게 흘렀던가, 아기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고, 보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hcg호르몬(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호르몬) 수치 변화를 토대로 일별로 태아의 특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요약해 놓은 표를 보며 아기의 하루를 추측하며 시간을 보냈다.

태아는 놀라웠다. 하루가 다르게 장기와 몸들이 형성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임신 초기를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이야기하는구나 싶었다.


"자기야~ 오늘은 융모에 혈관이 생기는 날이래"


알지도 못하는 의학용어로 토론도 하고, 하루하루 변해가는 아기를 상상하는 게 우리 부부의 행복한 루틴이 되어버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10월 16일.

남편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초음파를 보는 날이다.

시크하기로 유명하신 선생님이 담당이셨는데,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앉기도 전에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불편한 게 없었냐는 질문과 함께 초음파가 시작되었다.

내 대답을 듣고도 한참을 묵묵히 보시더니, 이내 말씀하셨다.


"휴,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 줄 알고 놀랐네요. 요기 잘 자리 잡았어요.

(간호사 선생님에게) 남편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찰나 놀랐다가, 남편이 들어오는 사이 내 눈에도 동그랗고 까만 아기집이 보였다.


'이쁜 집을 지었구나. 고마워 아가야 ㅠㅠ'





아기집 위치와 난황을 확인해 주셨고, 피고임이나 다른 특이사항 없이 다 좋다고 하셨다.






진료실.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과 임신확인서가 나왔다.

초음파에는 5주 3일이라고 찍혀있었다. 이제 나는 5주 3일 된 아기를 가진 진짜 임산부다.

임신확인서를 보니 이제 진짜 아빠가 되는 것 같다며 남편도 좋아했다.





난임병원 대기실에서는 초음파 사진을 보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큼은 모두가 임신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나만 좋다고 마구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남편과 함께 병원을 나와서 차에 타자마자 초음파 사진을 꺼내 들었다. 보고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좋았다. 좋았다는 표현에 정도가 있다면 극치가 맞을 것이다.





남편이 운전을 하다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신경을 쓰지 못한 채 초음파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흘렀나? 남편을 찾아보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내 눈앞으로 무언가 훅 들어왔다.





임신을 축하하는 선물과 편지, 꽃다발이었다.


"자기야...(글썽글썽)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 계속 나랑 같이 있었던 거 같은데... 너무 이쁘잖아..."


"자기야, 내가 자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우리 아기랑 셋이서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자."


늘 모자랄 것 없는 내 남편이지만, 극 T성향을 가진 터라 오글거리는 이벤트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임신 후에도 별로 좋은 티도 안 내고 달라진 것 없어 보여 은근 섭섭했는데, 임신확인서 받을 때까지 실망하기 싫어서 좋은 마음을 감춰뒀다고 한다.


"이제는 좀 좋아해도 되겠지? 내가 아빠가 된다는데!"







남편과 이런저런 감동의 말들을 주고받으며 카페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이 하루 한잔의 커피는 괜찮다고 했지만 인공수정 시술 이후부터 커피는 디카페인을 주문했다.


카페에 앉아 우리는 아기의 태명을 상의하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남편이 먼저 떠올랐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자기, 정말 멋진 태명이 생각났어! 우리 아기의 태명은 '진주'야."


"'진주'? 왜?"


"'진서'(남편이름)의 주니어! '진주'"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웃음만 났다. 사실 똥으로 매주를 쓴다고 우겨도 이날은 행복하다는 생각만 했을 것이다.


"안돼. 태명에 내가 없잖아!  '열무'는 어때?"





내가 그동안 마음속으로 아기를 부를 때 사용했던 임시 태명이었다. '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잘 자라라'는 의미에 '열무'였는데, 결국은 둘 다 계속 '열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합의했고, 그렇게 우리 아기의 태명은 '열무'가 되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고 오랜만에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까지 먹고 집으로 들어왔다.


"자기야, 라면 콜?"


"콜! 이게 찐 행복이지! 하하하"





다시 생각해도 참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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