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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다 Aug 22. 2024

예비맘이 아닌 진짜 맘

5. 1차 피검사

딱히 종교가 있진 않다. 그런데 종교가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유는 평상시에도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데, 그 마음이 말로 자주 표현되다 보니 남들이 보기엔 종교가 있어 보였던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내게 아기가 와 주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힘들다는 확률을 뚫고 첫 번째 인공수정 시술로 와준 기적과 같은 너무 고마운 아기였다.





생각해 보면 이랬다.

자연 임신을 시도할 때는 임신 극 초기 증상이라는 것을 자주 검색했다. 아랫배가 콕콕 찌르는 듯이 아프고, 가슴 통증이 평소와는 다르고, 칼로 찔리는 듯한 느낌도 있다고들 설명했다. 칼로 찔리는 고통까지는 전혀 모르겠지만검색되는 웬만한 증상을 볼 때마다 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달은 이 정도면 진짜 임신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증상이 실제로 나타났지만 결과는 모두 비임신이었다. 신기한 것은 비임신인지 알게 되면 증상이었던 것들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느꼈다. 상상임신이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내 생각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 시술 후에는 오히려 증상을 검색해 보지 않았다. 막상 임신을 해 보니 '임신 극초기 증상'이라는 검색이 임신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라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얼리임테기를 사용하면 착상 증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바로 두줄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임테기 전에 어떤 증상이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나의 경우에는 갑자기 없던 가래가 생겼다. 몸은 너무 멀쩡한데 소독약 맛이 나는 가래가 자꾸 나왔다. 그리고 소변보는 횟수가 늘었다. 임테기를 할 무렵부터 화장실이 급해서 아침 일찍 깨는 경우가 생겼다. 그런데 이것들을 모두 덮는 증상이 있었는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생리 전 증후군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곧 생리가 있을 것 같은 몸 상태라서 이런 몇 가지 증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이라는 의심을 오히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임테기에 확실한 줄을 보고 난 이후부터 본격적인 임신 극초기 증상이 나타났다. 인터넷에 떠도는 것 모두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생리 전 증후군이라고 생각했던 아랫의 묵직함은 더해갔고, 소변보는 횟수가 엄청 늘었다. 아랫배 콕콕 찌름 증상도 있었고, 밑이 빠질 것 같은 느낌도 오래갔다. 기초체온은 37.2도가 되었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맑은 분비물도 같이 나왔다. 별일은 없었지만 알고 보니 밑이 빠질 것 같은 증상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낯선 증상들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임테기 지옥에 빠졌다는 표현으로 불리지만 아침마다 임테기를 하며 마음 졸이며 더블링을 확인하는 그 순간마저도 행복했다. 일하는 와중에도, 밥을 먹는 와중에도, 샤워를 하는 와중에도 감사했고 행복했다. 감사하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겠다.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해하며 그리고 또 여전히 살짝은 불안해하며 병원 갈 날을 기다렸다.








23년 10월 6일. 임신 확인 피검사 하는 날.


수치가 100 언저리이면 안정적인 수치라고 하셨다. 검사를 하고 집에 가서 기다리면 당일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신다고 했다. 몇 시간 안 되는 기다림인데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남편한테 추어탕이라도 먹고 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그렇게 이것 저것을 하면서 기다리다 보니 전화가 왔다.


"정채원 님. ◇◇병원 난임센터입니다. 피검사 수치 결과 나와서 연락드렸습니다. 수치는 172로 잘 오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16일쯤 아기집 보러 오시면 될 것 같은데 어느 시간 대가 괜찮으실까요?"


"172라고 하셨나요? 감사합니다. 시간은 오후가 좋겠어요."


"네. 172가 맞습니다."

 

'100이 안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던 터라 172이라는 숫자가 너무 반가워 재차 여쭤보았다.

172가 확실했다.






비로소 임신 1단계 통과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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