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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들때 Aug 15. 2022

'마흔다섯'에게 보내는 찬사

여전히 서툴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브라보!"

26살에 결혼하여 위로 언니 둘, 오빠 하나를 출산한 엄마가 막내인 나를 낳으신 나이는 34살이었다. 그러니까 엄마 나이가 45살이 되는 그때로 계산해보면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즈음 된다. 아주 세세하고 정확한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난 기억력이 게다가 꽝이다), 그즈음의 파편들을 모아 보면 엄마는 지극히도 나를 사랑하셨고 꽤 무서웠다. 돌아보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또한 나도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생긴 두려움이었던 거 같다. 그러나 이건 돌아보면, 이고. 어쨌든 그때는 꽤 무서웠다.



당시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어느 날 동전 몇 개 용돈으로 주시며 바로 위 언니랑 나눠 쓰라고 했던 그날. 피아노 학원을 다녀오던 나는 그 동전 몇 개를 집 오는 길 뽑기 가게에서 탕진했다(한참 '오징어 게임'으로 '달고나'가 다시 주목받았지만, 사실 그 시절 어린이들을 더 유혹했던 건 '뽑기'였다고 생각한다). 우 씨, 한 번만 더 하면 달짝지근한 설탕으로 전신을 두르고 크기마저 위세 등등한 저 어를 탈 수 있을 거 같았는데!  



터덜터덜 허탈함과 묘한 불안을 안고 들어온 그날 현관에서 나는 상당 시간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곳에 세워진 채 엄마에게 잔뜩 혼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마의 주장은 그 돈을 왜 언니랑 나누지 않고 혼자 다 썼냐,였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씀이었지만 그 어린 나로선 안도 밖도 아닌 현관문에 죄인처럼 서있으면서 추궁당하는 그 순간이 퍽이나 싫었던 것인지, 아니면 천 원짜리도 아니고 그깟 백 원 몇 개 몽땅 좀 썼기로서니 이렇게 면박 주시나 어린 나이에도 수치스럽고 억울했던 것인지 잘못했단 말도 못 하며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근데 이것도 지금 생각이 소환한 기억이, 그땐 그냥 어 줄 몰라 눈물만 흘렸겠지. 이제 그러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그녀의 말.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



세상 어머니들이여, 우는 아이에게 그 말만은 하지 마라. 잘해서 우는 게 아니다. 그냥 어 줄 몰라서 우는 거다. 잘못은 한 것 같지, 다 인정하자니 괜스레 억울은 하고, 엄마가 무섭기도 하고, 언제 이 상황이 끝나나 두렵기도 하고... 그러면서 아이는 껑충 생각하는 거다. '무슨 엄마가 저래, 저렇게 화나 내고. 엄마는 엄마고, 엄마는 어른인데!'



그런 엄마의 사랑과 화를 먹고 나는 훌쩍훌쩍 컸다. 점점 엄마 품을 떠나 친구로, 술로, 연애로, 사회로 향해 갔다. 그리고 나는 30대의 시작을 상담자가 되겠노라 다짐하며 대학원에서 맞이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원은 학업은 전공 지도교수님이, 인턴 수련은 상담센터 수석연구원 선생님이 담당하시는 구조였다. 수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센터에서 보내게 되는 수련생에게, 수련 전반을 총괄하는 수석연구원 선생님은 존재 자체로도 그 묵직함이 컸다. 더욱이 그분은 늘 자신 있는 태도 카리스마가 엄청났다. 그러니 그분에 대한 선망과 존경이라는 게, 이제 갓 상담자 걸음마를 뗀 나에게 얼마나 컸겠나. 인턴 근무 날에 뵙게 되면 괜스레 살짝 먼발치서 수줍게 인사드리게 되,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유일한 지침인 양 고개 주억거리며 감탄하면서 '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내 맘대로 선생님을 롤모델로 점찍고 흠모하던 그 날들. 그때 그 선생님의 연배가 딱 45살 이 즈음이었다.



세월은 살같이 흘러, 내 나이 올해 45살이 되었다. 잔인하게도 평균수명이 길어져 내가 아흔까지 산다 치면 딱 절반을 지나온 셈이고, 소위 난 '중년 여성'이 된 거다. 그렇담 나는 그때 엄마에게 속말로 중얼거렸던 것처럼, 그리 어른이고 화도 안 내는가? 웬걸 전혀. 선생님처럼 그리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깜냥인가? 아이고 전혀.



45살의 난 여전히 어리고 감정적이며 서툴다. 여전히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고, 되려 '삶'은 더 난제가 되었다.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무서워하고 나보다 나은 여럿을 흠모하고 질투한다. 그렇게 45살의 나는, 초딩 꼬맹이 때나 30살 사회초년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종종 눈이 어릿어릿하고 움직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게 되는 미천한 몸뚱이만 빼, 거기서 거기다. 어마어마하게 어른도 아니고, 굉장한 능력자도 아니다. 여전히 치사하게 남 욕도 하고 비겁하게 남 탓도 하며 식탐의 노예인 스스로를 한심해하면서 작심삼일을 일삼기 바쁜 그런 나. 그게 45살 먹은 나라는 중년 여성의 실체다.



그렇다 보니 요새 부쩍 그 시절의 엄마도, 선생님도 떠올려진다. 그때 엄만 얼마나 어렸던가. 그때 선생님도 나 모르는 서이 있으셨겠지. 그래서 때론 어린 내가 봐도 이해가 안 가고, 때론 나 혼자 키운 기대에 못 미친다며 실망 품게 되는 모습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



그렇게 연민이라면 연민이랄까, 이해라면 이해랄까. 막상 45살이 되어도 별다를 거 없이 여전히 어리고 서툴지만, 그나마 조금은 나아진 게 있다고 우겨본다면, 나란 인간이 중시하던 '중심축'이란 것의 변화다. 이전엔 그것이 '성취와 분리와 경계'였다면, 이젠 '비움과 연민과 이해'라는 것으로 조금은 이동했다는 것. 이리 정돈하여 적어놓고 보니 썩 나쁘지 않다. 45살이란 숫자도 숫자지만, 벌써 올해도 한여름을 통과하며 끄트머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란 생각에 근래 괜히 조급도 해졌는데 살짝 안심도 된다.



모든 45살 안팎의 중년들이여! 막상 이쯤 되고 나니, 엄청 대단할 것도 없지만 또 뭐 썩 나쁘진 않지 아니한가? 올해 10살이 된 내 강아지 단지가 1살 때나 5살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내겐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존재 자체이듯, 우리도 스스로부터 자신을 그리 사랑스럽게 봐주자. 스스로가 자신 없을 땐 슬쩍 고개 돌려 옆을 보자. 나를 아껴주는 가족, 친구, 신을 믿는다면 신, 때로 그도 멀게 느껴진다면 내 강아지(*성인의 애착 대상이란 각자가 다르고 모두에게 있기 마련이다. 찾아보고 알아채 주고 적정 수준에서 만족하는 것도 중요한 심리적 과제이다)만은 그런 존재 자체로 날 하염없이 사랑스레 보아주 있을 것이다.


어디 있든 무얼 하든 너의 시선은 항상 나를 향하고 있구나. 언제나 정직하게, 따뜻하게 나를 향하는 세 개의 검은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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