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결심 하나 세운 것이 있다면 바로 '3 척', 이름하야 아닌 척, 아는 척, 아문 척하는 '척척척'을 하지 않겠노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껏 난 아닌 척~ 하면서 아는 척~을 하고 이내 아문 척~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다.
첫째, '아닌 척'. 이건 내 감정에 대한 부인이나 부정이다. 대개 부정적이라 여기고 있는 감정들이다. 내가 주로 못 느낀 양 취급하고 싶은 감정은, 서운함과 질투인 거 같다. (이건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분노, 누구는 외로움, 또 누구는 불안이 느껴지면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각자 자기감정을 잘 들여다볼 일이다) 어쩐지 인정하는 순간 딱 내가 그만큼 쪼잔한 것 같게 여겨지는. 그래서 난 서운함이나 질투가 감지되면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저 멀리 밀어내고 별거 아닌 걸로 축소시켜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없어지지 않는 감정은 꽤 오래간 끙끙대기 마련이다. 나 좀 봐달라고.
둘째, '아는 척'. 이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지레짐작이다. 마치 '공감한' 듯 구는 것이다. 상대의 말이 혹은 감정이 어떤 건지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으면서도, 성급히 고갤 끄덕이거나 더 나서서 "그렇죠~ 알죠~ 맞아요~"라 반응한다.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게 먼저인, 가짜 공감이다. 순간은 공감한 척 보일 수도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피상적이란 걸 나도 그도 느끼기에.
셋째, '아문 척'. 이건 아직 아픈 상처에 대한 외면이다. 생채기가 남아 따끔따끔 아픈데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사로, 이젠 괜찮아졌단 거짓말로 덮으려 한다. 대충 반창고로 붙여버리는 꼴이다. 해사한 표정으로 난 아무렇지도 않노라 웃는다 한들, 그 안에서 덧나지 않을 수가 없다. 운 좋게 이번엔 괜찮았대도 다음에 다른 곳으로 옮겨 모습을 드러내기 십상이다(마치 진통제로 치통을 참아냈다 한들, 충치는 사라지지 않고 옆니도 썩게 만드는 것처럼).
이 모든 '척'을 꺼내 가만히 내려놓고 보면 그 밑바닥엔 결국 다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고, (공감 잘해주는 사람이라고)사랑받고 싶고, (약하다고) 버림받고 싶진 않은 마음이 깔려있다.
그러니 반대로 '척' 하지 않는단 건 그냥 나, 썩 괜찮지 않을 수 있고 (상담심리사여도) 남을 잘 이해 못 할 수 있으며 약한 구석 투성이인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이다. 그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보여주려는 용기이다. 사실 내가 그리 쏘-쿨하지 않다는 것을, 나 역시 사람들의 마음에 들고 싶어 제법 안달복달한다는 것을, 상당히 치사스럽고 오래도록 꽁하며 속은 좁디좁아 얄팍하다는 것을. 그런 사람이 나란 것을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나지만 어딘간 제법 괜찮은 구석도 있으니 그걸 보려는 당신이라면 다행이고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끝내 거짓의 길로는 날 밀어내지 않겠단 선택이다.
그런 맥락에서 융 분석가인 제임스 홀딩스는 말했다. 흔히 '중년의 위기'라 칭해지는 마흔 이후의 삶이란 '중간 항로(Middle Passage)'라 재명명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유년기의 주술적 사고와 사춘기의 영웅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존성, 콤플렉스, 공포를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새로운 항해를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나도 이제 ~척은 그만하잔 마음을 먹을 때도 된 게다. 이런 '척' 하느라 에너지가 제법 많이 들어가고 소중한 시간이 헛되이 흐르는 것이 아깝게 여겨지기도 하는 만큼. 그러니 고상한 척 도도한 척 괜찮은 척 '3척'은 그만하고 나 자신을 직면하며, 그 꼬락서니 그대로 드러내려는 거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었으면 하고(주술적 사고), 내가 항상 되게 괜찮은 사람이란(영웅적 사고) 착각에서 벗어나, 그냥 이 정도의 사람이나라는 것부터 솔직하게.
그럼에도 마음의 습관이란 무섭도록 강력하여 또 척~ 하려는 때가 여전히 많다. 그럴 때면 난 잠깐 숨을 고르고 강아지 단지 녀석의 꼬리를 떠올린다. 반가우면 뱅뱅 헬리콥터처럼 돌아가는 그 녀석 꼬리, 슬슬 장난칠 요량이면 좌우로 크게 흔들거리는 그 녀석 꼬리, 간식 줄 줄 알고 갔더니 양치질이나 목욕이 기다리고 있단 걸 알았을 때 이내 포르르 내려가는 그 녀석 꼬리처럼.
지금 내 마음, 내 꼬락서니는 어떻지? 거기에 만약 꼬리가 달렸다면 어떤 모양일까? 아주 잠깐, 3초 멈춰 살펴본 뒤 그에 족하는 반응을 취해보는 거다. 기쁜 만큼 웃고, 이해 안 되면 다시 묻고, 서운하고 아프면 (단,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표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