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같이 자는 게 익숙한 이유

by 수수

원가족과 함께 살았던 어린이·청소년 시절에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온전히 방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하나 아니면 둘 밖에 있어보지 않았다. 언제나 동생과 같이 방을 써야했고, 자주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자고 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왔다. ‘우리 집’에 거실이란 개념이 생긴 것도 부모가 함께했던 가게를 정리하고 그 건물 이층에 집을 짓고 살았을 때가 처음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을 했던 아빠가 귀빈반점 이층에 하얀 조립식 집을 설계하고 직접 지은 집이었다. 더 이상 엄마가 집에 없었을 때라 아빠 방 하나, 나와 동생이 같이 쓰는 방 하나, 화장실 하나, 그리고 부엌 겸 거실인 공간 하나인 집이었다. 작은 집이었지만 처음으로 집 안에 거실이 생기고 바깥을 통해 가지 않아도 되는 화장실이 생겼다. 비록 그 공간에서 아빠와 매일같이 소리를 지르고 싸웠고 더 이상 엄마가 없었지만, 살면서 처음 가져본 구조의 집이었다. (부산에서는 그런대로 살았다고 하나 기억에 없으므로)


내 방은커녕 서로가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찮았던 터라 나와 원가족은 집 안에서 각자로 존재하기 어려웠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다른 원가족 구성원들에게 숨길 수 없었다. 늘 누군가의 엄마아빠, 딸과 언니와 동생으로만 존재하며 사적 생활이란 것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나만 개인의 자리를 갖지 못한 게 아니다.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직장과 집이 같은 곳인 그녀는 오죽했을까.(지금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픈 걸) 내 생각만 하다가 이어진 엄마 생각에 마음이 욱신거린다. 엄마는 어디에서 엄마 아닌 시간을 가졌을까. 명자는 어디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그때 우리의 생활은 우리를 우리로만 생각하게 만들진 못했던 걸 보니 분명 우리들에겐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을 자신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말이다. 비록 갖지 못하고 그 시절은 속절없이 흘렀지만.

각자의 방도 없이 싫어도 함께 있어야 하는 작은 공간에 사는 삶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모든 것이 나빴던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지금 와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그때의 생활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분명 영향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지금도 나와 동생은 공간 분리가 되지 않는 엄마 집으로 자주 간다. 여전히 엄마 집은 가족 구성원들의 분리된 사적 생활을 하기 어려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나와 동생은 기꺼이 그 공간으로 향한다. 나에게는 같이 잠을 자는 것이, 서로의 생활을 목격하고 둘러보는 것이 익숙하다.

그 익숙함은 원가족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관계들로 퍼져나갔다. 내가 거주하는 공간에는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왔고, 놀러 온다. 우리는 같이 밥을 해 먹고, 같이 잠을 자는 것이 즐겁고 무엇보다 익숙하다. 몇 년 전 주거공동체에 살 때도 내 방에서 같이 살기를 거쳐 간 친구들이 있었고, 거실에도 늘 친구들이 북적였다. 원가족과 보낸 나의 어린이·청소년 시절은 각자의 취향이 무엇인지 살펴보지도 못하고 어떤 때는 자신을 구겨가며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절을 살아낸 덕에 인생이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도 계속 해보는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삶이라는 끈이 사람들과의 접점이 없다면 어딘가에서 그려지다 끊기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게, 그 시절의 경험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울타리의 익숙함을 주었고 한편으로는 울타리의 중요성을 주었다.


여전히 혼자 사는 삶을 꿈꾸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꿈은 항상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이다. 그런 꿈을 가지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이 나도 모르는 사이 배경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같이 자는 게 익숙한 이유는 우리가 가난해서 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서로를 외면할 수 없는 공간에서 자유 없이 살아와서만이 아니라 서로를 지켜봐주고 돌보아주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오늘도 어렵다 어려워, 고개를 흔들면서도 누군가들과 함께 살아가는 꿈을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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