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독서생활자가 되다

by 수수

나는 책을 꽤 많이 읽는다. 다독가야 세상에 많고 많겠지만,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을 둘러보자면 그들 사이에서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으로 통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책을 읽지 않았던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내가 지금처럼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이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덕분이다. 그 외롭던 시절의 나는 의기소침했고 회색빛이었다.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간 대학을 한 학기 다니고 재미없어서 그만 두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아져 놀 수 있었던 건 아니고 내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엄마 집에 얹혀살며 임금노동을 했다. 1년이 되기 전, 치사한 권고사직을 당했다. 퇴직금은 날아갔지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그때는 치사고 뭐고 감지덕지한 무지했던 나는 곧 다른 알바노동을 구해 일을 했다.

바뀐 일터에서 꼰대 사장으로 열 받지만 해사하게 웃기를 미션 삼아 살던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그녀는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연락이 왔을 때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그녀가 내게 연락한 건 자신의 자리에 내가 와서 일을 해줬으면 좋겠어서였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자신의 자리를 채우다 이후엔 같이 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내게 그녀가 있던 김포는 서울과 매우 가까운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이는 나에게 메리트로 작용했다. 원룸도 제공해준다고 하니 지금 여기가 아닌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에 딱 좋은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재혼한 엄마의 낯선 집에서 사는 게 답답하기도 했던 나는 몇 년 후에도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은 일단 오케이. 별 고민 없이 승낙했다.


그렇게 갑자기 내 일생은 김포에서 시작되었다. 막상 가본 김포는 지금과는 달리 굉장히 시골 같았다.(처음 갔을 때의 당혹함이란...) 물론 편의점이나 마트는 거주할 공간 옆에 있었지만, 생각과도 다르고 일단 너무 낯설고 하여 설렘이 가득하진 않았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도착한 첫 날 너무 고요하고 외로웠던 나는 텅 빈 방에 앉아 그 당시 윤건이 하는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내 통화를 했었다. 윤건이 피아노 쳐줌!) 그 전까지는 원가족과 살지 않았어도 친구들이 있고, 지인들이 있었던 곳에서 살아서 혼자라는 감각이 그리 크지 않았던 내게 김포에서의 생활은 무척 휑한 경험이었다. 물론 제안해준 친구가 있었지만, 그는 임신 중이었고 사는 곳이 같은 지역이지 않았다. 친구와 나는 명백히 다른 삶과 다른 집중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의 파트너 역시 사실상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그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내게는 직장 동료이자 새로 관계 맺기 해야 할 사람들이었지, 마음 나누는 곁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는 혼자였다. (그때의 선택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무언가를 덧붙일 마음은 없다. 여전히 나에게 제안을 준 친구의 고마운 마음이라 생각하기에)


서울과 가깝잖아! 메리트는 잘 작동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서울로 놀러가는 일은 많지 않았고, 주말엔 그냥 일 하지 않고 쉬고만 싶어졌다. 내 방이 너무 좋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작은 창문 하나만 있던 그 원룸은 한낮인데도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언제나 불을 켜고 생활을 해야 했다. 불을 켜지 않는 방은 늘 어두웠다. 원룸 생활도, 혼자 사는 것도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나는 아마도 그 시절의 생활에 진저리가 난 게 아닐까 싶다. 현관문을 열면 내 생활의 공간이 전부 드러나는 그 원룸 방에 대해서는 이후의 내 삶에 더는 등장시키고 싶지 않는 요소였다. (내 꿈은 비-원룸에서 사는 것)

어느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일도 재미는 없었다. 주문을 확인하고 출고되는 상품을 확인하는 것들이야 재미를 떠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고객 응대가 어려웠다. 이전에 광주에서 살 때에도 옷 가게에서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아마 비슷한 이유인 듯 고객 전화 받는 게 힘겨웠다. (그런데도 계속 새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을 하는 게 참 신기하다, 너) 고객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재빠르게 문의 게시판을 채워야 한다! 미션 수행을 위해 하루하루 기 빨리듯 살았던 것 같다.

김포에서 일하고 거주하는 기간 내내 나는 혼자였다. 지금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당시의 나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여성들과의 관계 맺기는 너무 어렵고 별로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공간에서 처음 일을 배울 때 언니들에게 일을 배워야 해서 좀 버거웠다. 까랑까랑하고 당시의 내 판단으론 인상도 센 언니들 틈에서 늘 조금은 긴장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힘을 주면서 살았던 것 같다. 이 부분은 지금도 그런지 묻는다면 완전히 달라졌지만 그때의 내겐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었다. (페미니즘 만세!)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내게 첫 인상이 강해보였다고 하는데, 나도 강해보이는 첫 인상들 때문에 힘들어했던 것이 어쩐지 조금 웃기고 이상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땐 그랬다. (잠시 샛길로 새면 혼자 일하는 내게 사람들은 “외롭지 않나요?”라고 묻지만, 나는 혼자 일하는 게 너무 너무 좋다!)


주중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픽업하러 오는 직원 차를 타고 이동하여 회사에서 일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별로 할 게 없는 낯선 시골에서의 삶. (그렇다. 이 두 가지는 중요하다. 낯선 곳이고 동시에 시골인 곳) 주말이라고 딱히 다를 건 없다. 좀 더 늦잠을 잘 수 있는 정도?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항상 옆에 있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외식은 아니지만 외식 기분을 내며 무한도전을 보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 늘 혼자서. (이때 키워진 스킬이라면, 혼자 먹기 달인이 된 것일지도)


그때에 나는 참 외롭다고 생각했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 그 시절을 돌이켜 보는 지금도, 무척 외로웠던 시간을 버티며 살았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으로 쓰여 지던 그 시간을 채워나가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책 읽기였다. 그때 나는 그 외로움과 고립감과 고독함을 오로지 책 읽는 것으로 풀거나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책을 매일 읽는 사람이 아니었던 나는 외로움에 치여 다른 감각을 가지려고 혹은 외로움이란 감각을 잊어보려고 책을 읽었다. 매주 토요일에는 버스를 타고 김포 도서관에 가서 빌릴 수 있는 한정의 책 권수를 모두 채워, 가득 안고 집 아니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이루지 못하는 갈증들을 해소하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책을 읽었다. 그 시절에는 주로 여행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지금은 손이 잘 가지 않는 책들을 읽던 그때, 나는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그때의 나는 땅에 발을 딛고 현재를 살아내고 있었을까.

일하는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 외에 남은 여분의 시간은 책으로 쌓여갔다. 어떤 책은 무시했고 어떤 책은 질투했으며 어떤 책은 사랑했다. 그 갈증이 온전히 해소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책 읽기는 나의 일상에 짙게 남겨졌다. 지금이라면 다른 온도로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외로움에 치이도록 방치한 나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 시절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이제는 거센 파도가 아닌 잔잔한 파동을 만드는 외로운 독서생활자 시절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을 테니까.

가장 외롭던 삶의 한 가운데에 책을 아니 책만 읽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일상이 되어 가장 사랑하는 행위가 되었다.

외로운 독서생활자였던 나는 이제 책을 통해 곁을 풍성하게 하는 빛나는 독서생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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