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나무문 안에서 불안을 껴안고

by 수수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내 방’을 가졌을 때는 22살 때였다. 가을이었고, 광주에서였고, 약 한 달 남짓의 시간동안이었다. 22살 가을, 광주에서 약 한 달 동안 나 혼자 생활하는 원룸을 구해 살다가 나왔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가져본 내 방은 곧 나의 집이기도 했던 낡은 원룸 방이었다. 오래된 건물 3층에 조금 기묘한 모양으로 길쭉하게 생겼던 내 방이자 집. 누군가 열려고 시도하면 허술하게 열려 버릴 것 같은 나무문에 똑딱 잠금장치 하나 달려 있던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는 원룸 방. 가지고 있던 짐이 얼마 없어 작은 공간이 휑하게 느껴지고 종이 박스로 임시 테이블을 만들어 두었던 그 방에서 나는 오래 살지 못했다. 앞에 밝힌 대로 선금으로 낸 월세가 끝나기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그 집 아니 그 방에서 한 달 만에 나왔다. 도저히 이곳에선 안 될 것 같아, 도피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방의 짐을 정리하고 엄마에게로 갔다.

애초에 혼자만의 방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건물 2층에서 R과 같이 살고 있었던 나는 충동적으로 방을 구하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화가 난 마음으로 방을 옮겼다. 더 이상 그녀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혼자서도 거주하고 싶지 않은 원룸에서 둘이 같이 살았다고 생각하니 없던 두통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 간 대학을 얼마 다니지 않고 그만둔 나는 다시 광주로 갔다. 가진 돈도 없던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은 R이 살고 있던 원룸밖에 없었고, 나는 그곳에 얹혀살면서 일을 시작했다. 오갈 데 없던 나를 받아준 R의 호의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고맙고 쉽지 않았을 일이지만, 언젠가부터 옷가게에서 일을 하며 번 돈으로 월세며 생활비를 내가 모두 충당하고 있었고 우리의 너무 다른 생활 방식은 내게 힘겨움이 되었다. 그런 그녀와 결별하기 위한 방식으로 나는 그녀의 원룸 방에서 나왔다. 어쩌면 도망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사라고 말하기엔 너무 짧게 금방 끝난 초라한 이동을 한 후 나는 새로운 방이 생겼다.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던, 처음으로 가진 ‘내 방’인데도 나는 왜 기분이 나쁘고 슬펐던 걸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떤 마음으로 자기만의 방에 있었을까 궁금하다. 그토록 원하던 나만의 방인데 왜 그리 불안하고 외로웠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혼자만의 삶, 자기만의 방이 예찬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은 모든 사람들과 같은 경험일 수 없고 공감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토록 바라던 것이라는 체감을 할 수 없었다. 시선을 똑바로 응시하면 보이는 낡은 나무문처럼 그곳에 있는 내가 한없이 낡고 힘없이 머무를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웠다.

주거 독립이라는 것이 거창한 준비가 필요하고 그 준비가 다 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생각에 없던 혼자만의 공간이 예상과 다른 시기에 발생하게 될 때, 그 대책 없음 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왜 그런지 잘 몰랐겠지만, 그 불안과 외로움이 왜 그랬을지 말이다.

더 적은 비용을 감당하고 그게 누구든 타인과 살아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엔 함께 살아가는 삶은 기본적으로 불편하고 고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생이란 것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계획한대로만 살아갈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불행에 기초하지 않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시작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나는 어쩌면 매일 힘겹게 이어지는 생계 노동 속에서 위안이 되지 않는 낡고 불완전한 방과 누군가에게 지친 마음으로 더 이상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화가 잔뜩 나고 마음이 슬픔으로 무거울 때 그곳을 떠났다. 정확히는 그곳에서 벗어났다. 내가 가진 적은 자원 속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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