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살아온 내내 하나의 지역, 한 공간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대체로 오래 한 곳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원가족과 함께라면 그럴 가능성이 더욱 많아지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온 인생이 이사의 연속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나의 인생은 늘 이사와 함께였다고 기억되진 않지만, 주변의 많은 이들과 나눠보면 나의 거주지 변화는 자주 그리고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한다.
사실 원룸에 살았던 경험은 많지는 않다. 22-23살 때 광주에서, 25살 김포에서, 그리고 27살 대구에서 약 2달간의 고시원 경험까지 하면 원룸에서만 오랜 시간 살아온 사람들에 비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 테다. 그런데 나는 왜 원룸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걸까. 때때로 너무나 혼자의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면서도 왜 늘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삶’을 꿈꾸고, 차라리 누구랑 같이 살지! 원룸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을까. 누군가는 나에게 그건 너의 원룸 생활이 너무 별로였던 터라 그럴지도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가?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도 누군가는 앞으로 원룸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소망할 수 있는 것은 너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살아가고 싶은 다른 삶의 모양이 있다. 그래서 나는 원룸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나의 아직까지 마지막 원룸이라고 할 생활은 수년 전인, 대구 동성로의 창문 없는 고시원이다. 보통 원룸이라고 할 공간에 고시원은 제외될지도 모르겠다. 공동욕실과 공동 주방도 있으니 어쩌면 주거 공동체와 무엇이 다르지? 생각이 들지도 모르고, 하나의 공간에 모든 것이 다 같이 있는 게 아니니까 원룸과는 조금 다른 생활 형태라고 생각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때, 고시원은 원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원룸에 속하는 것 같다. 물론 원룸도 작은 방 하나와 화장실이 조그맣게 달려 있고, 방과 주방이 구분되지 않거나 너무 비좁은 곳들이 많지만, 대체로 고시원은 그 모든 것이 전제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조금의 자유도, 소음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어쩌면 외로움까지도.
손바닥만 하고 코딱지만 한(물론 정말 손바닥만 하지도 않고, 코딱지만 하지도 않지만) 고시원 방에 살 때는 2012년이었다. 당시 나는 대통령선거운동을 하고 있었기에 대구에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접근성이 좋은 대구 동성로의 가장 싼 고시원 방을 하나 구했다. 고시텔 등 좀 더 나은 공간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가진 돈이 얼마 없는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많이 없기 마련이다. 최대한 싼 곳이 필요했기에 조그마한 창문도 없는 방으로 갔다. 어차피 잠만 잘 텐데 뭐, 라는 마음으로 창문 있는 방보다 3만원이 더 싼 17만 원짜리 창문 없는 고시원 방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곳에선 정말 잠만 잤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매일 아침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일정인 탓도 있었지만, 소리에 굉장히 민감한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매일 밤 작은 침대에 누워 책을 조금 읽다 잠드는 패턴을 반복했다. (여담이지만, 왜 자본론은 펼치기만 하면 수면제마냥 잠이 쏟아지게 하나요)
내가 원룸이 싫었던 이유 중에는 앞선 글들에도 있듯이 문을 열면 내 공간이 다 드러나는 것도 있는데, 고시원은 사실 그런 축에도 끼지 못한다. 열어 공간이 드러나고 말고를 떠나 그냥 아주 작은 사각형이 다이기 때문이다. 내 몸 하나 누우면 가득 차는 작은 1인용 침대와 딱 그만큼이 여분 자리에 붙박이 책상과 의자가 있다. 나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고시원에 들어간 것은 아니니까 내 책상과 위에 붙은 간이 책꽂이에는 주로 옷가지들이 들어있었다. 창문이 없어 아침이 오는지도 잘 모르는 어두운 방에서 알람 소리도 신경 쓰여 늘 긴장을 하며, 하지만 피곤에 절여 쓰러지듯 자던 시간들을 살았다.
여성전용 고시원이었던 그 공간에는 나 외에도 여러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텐데, 기억나는 게 없다. 2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살았던 것도 이유겠지만, 내게 고시원은 얼굴 없는 공간으로 기억된다. 나와 그녀들은 방 하나를 나눠 사는, 엄밀히 말하면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고 같은 주방을 사용하며 같은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이겠지만, 아마 어느 누구도 ‘같은 집’에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익명성으로만 존재하는 공간. 고시원은 그런 곳이 아닐까. 그리고 나에겐 이런 ‘얼굴 없음’이 원룸에서의 거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원가족과 살았을 때부터 한 번도 나만의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나는 어떤 ‘얼굴들’의 존재가 있길 바랐던 것 같다. 사실 언제나 나의 바람은 안정적인 공간이었지, 절대적인 나 혼자만의 공간이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이것을 나약함이나 주체적이지 못해서라는 이유와 연결하지 않는다. 장혜영의 노래 가사 말처럼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연약하다는 것은 외로움을 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하우스메이트인 동생은 내가 집에 안 들어오면 너무 좋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내가 없으면 집에 불을 끄지 못하고, 늦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곤 한다. 내 친구들 중에도 불을 끄기 무서워하는 이들이 있다. 혼자 살면서 울리는 늦은 밤 초인종에 마음이 콩닥콩닥한 경험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작은 네모의 공간에서 나 외에 누구도 확인하지 못하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이 익명의 시간을 걸어온 경험 역시 나만의 것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 중에 존재할 것이다. 아직 누구와 살아도 상관없어!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공간에 여러 얼굴들을 새기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원룸에 살고 싶지 않은 이유들과도 물 흐르듯 만나지는 것들이다.
나에게 있어 ‘얼굴들’은 ‘안전함’과 만나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집이란 것은 나의 자유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곳으로서 중요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 형태의 공간에서 살아보면서 깨달았다. 같이 살면서도 혼자 사는 것처럼 독립성과 자유로움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매우 어려운 목표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각자 또 같이 살아가는 공간을 나아가 공동체를 꿈꾼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큼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다.
저마다의 연약한 얼굴들인,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꿈은 오늘도 내 마음에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