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껴입는 일과 옷을 덜어내는 일

by 수수

나에게 계절의 변화는 난방 시설이나 냉방 시설로부터 시작되지 않는다.(물론 이것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지만) 특히 겨울의 길목에 서면 최대한 보일러 가동을 늦추는데, 그건 한국이 전기료가 싼 국가이기 때문에 전기용품을 사용하는 것과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것의 마음 태세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전기의 생산 과정을 생각하고, 밀양과 청도 할매들의 싸움을 생각하면 싼 전기가 옳다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여름이 되면 집 안의 에어컨도 최대한 가동을 늦추고 사용양도 적게 하려 하지만, 별 수 없이 가격 면의 부담 때문에 도시가스는 특히 사용에 있어 마음이 망설여진다. 따뜻하면 좋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보일러를 계속 틀어두었다가는 명세서 앞에서 어질어질해질 수도 있다. 물론 원할 때 따뜻하고 시원할 수 있는 집은, 누구나 갖고 싶은 공간일 것이고 나 역시 그렇다. 나도 친구들이 자주 찾는 집이 여름엔 너무 덥지 않도록, 겨울엔 너무 춥지 않도록 공간을 식히고 덥히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과 별개로 나 스스로에게 생활화 되어 있는 것은 옷을 껴입는 것과 옷을 덜어내는 일이다. 이 두 가지 행위는 나에게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절의 변화에 맞춘 준비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욱 준비가 철저한데, 하우스메이트인 동생이 춥다며 보일러를 돌리자고 한 모습이 반팔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일 때 나는 별 수 없이 잔소리꾼 모드가 되곤 한다. 여름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동생은 내가 잠을 자는 거실에 나오면 숨이 막힌다며 괜찮은지 묻는다. 나도 동생의 방에 가면 너무 추워 괜찮은지 묻는다. 나와 동생은 너무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것은 동생에게 또 어떤 것은 나에게 조율하며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만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만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조금 더 격차를 줄여가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추운 겨울이 올 때 보일러를 가동시키기 전에 먼저 입고 있는 옷의 길이와 두께를 늘려가는 것이 그런 합의점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옷을 껴입고 자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친구들 중에도 이미 많기에) 그래서 이것을 누군가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보일러를 충분히 가동해도 너무 추운 집에서도 에어컨이 없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 나는 집에서도 살아보았다. 그렇기에 겨울을 맞이하며 긴 옷 그리고 점차 두꺼운 옷을 껴입고 수면 양말을 신는 나의 모습은 싼 집, 좋지 않은 낡은 집, 추운 집, 그리고 비싼 난방비의 부담 때문에 시작되었기에 거창하게 지구를 살린다는 의미를 부여하며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겨울에 옷을 껴입고 자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마땅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겨울에는 난방비가 여름에는 냉방비가 걱정되어 그것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들 그러니까 내가 껴입고 자는 옷들 속에서 나는 불안을 본다. 삶이라는 것이 단지 혼자 살아가는 것에서만 외로움과 불안이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런 지점들에서도 생각하게 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 달 치의 임금이 없으면 내일을 안정적으로 이어나갈 수 없는 사람들, 쉬고 싶지만 생활을 위해 생계노동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시가스나 에어컨은 때로 조금 더 뒤로 밀어두고 싶은, 아니 밀어둘 수밖에 없는 사치의 것이 되곤 한다. 겨울이 되면 긴 옷을 입고, 여름이 되면 짧은 옷을 입고 에어컨 대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에 대해 그게 맞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비용 걱정으로 주름이 이는 삶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도 내 삶은 그 걱정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뿐 아니라 그 패인 주름들의 누군가들을 생각하는 것 역시 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한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해마다 대구에서도 폭염/혹한에 대비하며 쪽방을 점검하고 지자체에 생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그리고 그 요구들 속에는 지금도 무더위에, 다가올 한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그 속에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그래서 네가 사는 삶이 그 정도인가? 라고 비교를 하려 한다면 우리는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얼마 없을 것이다. 추운 겨울 입김이 나던 방에 누워보았던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는 아파트이다. 그렇기에 그것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지만, 생존의 위기 앞에서 등수를 가리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집 안에 있으면서도 옷을 껴입는가. 냉방이 세서 한 여름에 옷을 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겨울에 너무 추워서 옷을 더 많이 껴입어야 하는 사람들. 난방이 강해서 한 겨울에 옷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여름에 너무 더워서 옷을 헐벗어야 하는 사람들. 나는 이 문제가 개인의 몫으로도, 어떤 개인의 죄책감으로도 마무리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선에 시작과 끝 모두에 있어야할 누군가들이 있다. 그건 추위에 떠는 사람도 더위에 지친 사람도 아닌 이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할 이들일 것이다. 나는 바란다. 어느 누구도 더위와 추위를 덜어내고 싶은 것이 사치가 되어 눈물 흘리는 일은 없는 삶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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