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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콩새 Feb 22. 2021

그 순간 희망은 절망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중개인과 연락이 닿았고 저는 몇 명과 함께 탈북 대열에 합류하기로 합니다.


제가 있던 곳은 베이징이었고 한국행의 출발지도 베이징이지만 함께 하는 일행들은 중국 여러 곳에서 생활하던 새터민 여성들이었고 우리는 출발을 위해 베이징에 모였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 일가요?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의 떠돌이 생활을 하는 과정에 접한 대한민국이라는, 한반도 남쪽 땅의 사람들, 그 사회에 대한, 자유에 대한 동경이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으로의 출발"은 3국에서 방황하던 암흑의 시절에 제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 속으로 첫 발을 내디디게 됩니다.



그러게 시작되는 여정은 = 베이징 - 곤명 - 미얀마 - 라오스 - 태국 - 그리고 한국까지입니다.

북경에서 기차를 타고 윈난 성 곤명으로 가게 되고 여기서 안내자를 만나게 됩니다. 다시 곤명을 출발하여 미얀마를 거쳐 라오스를 지나 태국으로 입국하는 거죠. 베이징에서 윈난 성 곤명까지의 여정은 우리들끼리 가고 곤명에서 중개총책과 만나고 여기서부터는  중개총책이 고용한 현지 중개인이 인솔하게 됩니다.



1. 기차로 북경에서 곤명까지.


저보다 나이 어린 아가씨 4명을 이끌고 북경을 출발합니다. 베이징에서 곤명까지의 긴 구간을 가는 것이라 먹을 것도 필요하고 마음의 준비도 필요합니다. 열차 내에서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공안의 검문에 단속되지 않으려면 표정은 편안해야 하고 눈빛은 순수해야 하고 일행과는 자유롭게 어울려야 했습니다.


북경에서 곤명까지는 열차로 40여 시간 정도입니다. 몇 시 기차를 타느냐에 따라서 기차 안에서 2박을 하게 됩니다. 가격이 비싼 차는 타지 못하고 제일 싼 가격의 기차표를 끊었지만 드디어 오매불망 가고 싶었던 한국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흥분과 함께 순탄치 않을 그 길에 혹시 모를 위험에 부딪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쁘지만 기뻐할 수도, 두렵지만 그 속에 실낱 갖은 희망도 함께 존재하는 묘한 감정으로 출발했습니다. 여비를 절약하느라 기차에서 마른 라면을 씹어먹었다는 이야기는 사실 제 주변의 사람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곤명에서 만난 중국인 중개인은 며칠 동안 우리에게 이제 거쳐가게 될 중국-미얀마 국경, 미얀마-라오스 국경. 라오스-태국 국경 등 과정에서 주의할 점, 만약의 경우의 대처사항을 주입시키는 것과 함께 한국사람으로 위장하면서 지나야 하기 때문에 한국사람들로 보일 수 있게 옷과 신발 등을 준비해주었습니다.



2. 미얀마 국경을 넘고 드디어 라오스 경내로 들어오다.


우리의 이동수단은 주로 보행이었습니다. 무덥고 습하고 다니는 사람도 없는 한적한 시골길을 무작정 걷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걸으면 이상해 보일 가봐 100미터 정도씩 떨어져 앞사람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걸어갑니다. 동남아의 도로는 포장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길가에 사람도 없어서 우리 자신의 발걸음 소리에도 머리카락이 쭈뼛할 정도로 긴장되고 입안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곤명을 출발하여 라오스까지 가는 여정의 안내자는 미얀마 중개인입니다. 우선 중국 - 미얀마 국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미얀마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제가 보기에는 어리숙해 보이는 이 남자를 믿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어찌 보면 수더분하고 소박한 이미지가 의심 덜 받을 수 있으니 이도 탁월한 선택일 듯싶었습니다.


실지 중국 - 미얀마 국경을 넘을 때는 걷던 걸 멈추고 작은 지프차를 탔습니다. 중개인이 기사님 대동 준비해왔더군요. 중국 - 미얀마 국경은 국경이라고 할 것도 없이 정말 허접해 보였습니다. 편하게 오고 갈 수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보였지만 국경은 국경인가 봅니다. 경비초소가 있었고 통과에 필요한 서류를 요구하더라고요.


우리는 국경경비대 앞에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려고 웃기도 하고 멀리 풍경을 가리키며 별거 아니라는 제스처도 지어 보이고 했습니다. 당연히 무사통과해서 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3. 라오스의 새벽 - 체포


중국 - 미얀마 국경을 무사히 넘고 이제 라오스까지는 다시 도보로 가야 합니다. 역시 밤, 낮 걷고 또 걸었습니다.

미얀마 - 라오스 국경도  건널목 차단봉 하나만 넘으면 되는 거였습니다.


이곳이 국경이라니 하고 깜짝 놀랐지만 국경은 국경입니다. 사전에 중개인과 서로 합의가 되어 우리가 그곳을 지나는 새벽 3시에 경비대가 순찰 가는 것으로 되어있어서 이 국경도 무난히 넘었습니다.


철길 건널목 같은 국경이라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우리 마음은 긴장해서 동공은 산대 되었고 심장박동은 북소리처럼 울렸고 서로의 거친 숨소리는 우리 마음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드디어 라오스의 메콩강기슭에 닿았습니다. 이곳에서 오늘 밤을 보내면서 몇 시간만 더 긴장하면 새벽 4시에 배를 준비해가지고 오는 

또 다른 라오스 중개인과 만나기로 된 것이지요.


이곳까지 우리를 안내한 미얀마 중개인은 좀 눈을 붙여야 새벽에 배를 타고 (배를 타고 두 시간 가야 태국의 챵마이라는 국경도시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갈 수 있으니 지금은 잠을 자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메콩강에는 악어들이 있어서 배에서 졸다가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기울어 물에 빠지면 악어밥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좀 자야 되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대와 흥분과 긴장감으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나무로 둘러친 방안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며 지나온 많은 시간들을 떠올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나 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스럭부스럭 소리와 함께 밖에서 남자들의 두런두런 대화 소리가 들려와 우리 모두는 얼른 일어났습니다. 아직 날이 밝아오지 않은 어둑한 시각이어서 밖에 서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볼 필요도 없이 새벽 4시에 온다고 했던 다음 인솔자가 왔으려니 하고 짐을 챙겨가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헌데 이게 웬일입니까.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우리를 체포하려고 온 것입니다. 참 허무하게, 그렇게 우리는 체포되었고 우리 모두의 손에는 차디찬 수갑이 철컥 철컥 채워졌습니다. 힘든 과정을 오롯이 겪으면서 견뎌왔던 모든 시간들이, 지금까지의 희망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면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6살 난 아들을 살려보겠다고,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났는데, 그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연번에서 체포되었고, 북송의 위험으로부터 겨우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한국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또다시 이렇게 무너지나 하는 생각에 슬프고 억울했지요.

 

어떻게 체포되었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순간 중개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했던 사람은 어디 있냐고 주인집에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중개인이 우리를 밀고하면서 이중으로 돈을 받아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허무했습니다. 라오스에서 배를 타면 바로 태국으로 갈 수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태국은 안전하기 때문에 지금 이곳이 마지막 관문이거든요.

그 바로 한발자국 앞에서 희망이 무너져 절망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미얀마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간단한 조사와 몸수색을 하더군요. 동남아 시골의 가택들을 가본 사람은 알 수 있겠지만 그곳의 거처들은 모두 벽이 아니라 수숫대 같은 것으로 둘러친 막입니다. 벽으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사실 안팎으로 들여다보고 내다볼 수 도 있는 그야말로 다 드러난 곳입니다.


미얀마에 대해 나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미개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여성 경찰이 들어와 우리 모두를 몸수색 하겠으니 옷을 완전히 나체 상태로 벗으라고 하더라고요. 옷깃 하나하나 흩어보고 몸도 구석구석 살펴보는 동안 수치심과 모멸감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얼기설기한 벽짬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인 거죠.  십수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온 몸이 부르르 떨림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미얀마 경찰은 우리가 중국에서 미얀마 국경을 넘을 때부터 수상하게 생각하고 뒤를 밟아왔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는 태국으로 돈 벌려고 간다고 둘러댔었는데 그들은 몸 팔려고 가는 여성들이라 생각하고 뒤쫓았다고 하더라고요. 몸에 소지한 돈이 있지 않을까, 또는 마약밀수군들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는 것을 전해 듣게 되었죠. 사실 저희들에게는 돈도 없었고 마약을 하지 않았으니 나체 상태로 꼼꼼히 살펴도 주삿바늘 자리 하나 찾을 수 없었던 거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일까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던 미얀마 경찰은 결국 우리를 중국 경찰에 인계했고 오후에 중국 경찰에 의하여 다시 곤명으로 이송되었답니다. 다시 북송의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지난번 체포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매우 강력한 북송의 위험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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