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도 유튜브 속을 헤엄쳤다. 진득허니 하나의 영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런저런 영상을 휙휙 보는 식이다. 그러다 결국 예전에 봤던 콘텐츠로 다시 돌아가 두어시간을 시청한 듯하다. 어두워지면 켜지는 가로등 빛이 이젠 아침을 알리듯 탁, 하고 꺼지는 시간이 있는데 그즈음까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눈을 한 번 뜨고, 정오에 깨어났다. 늦게 일어난 것에 대한 자책감이 상당하던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생에게 "나 내일부터 갓생살거야. 8시에 알람 맞춤."이라고 호언장담을 했건만, 동생은 오전 내내 잠에 취해있는 나를 보면서 "오늘부터 갓생산다 그러지 않았어?"하면서 허벅다리를 퍽퍽 칠 뿐이었다.
'게으르다'는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왜 일찍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납득이 스스로 안 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길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매일 아침 8시에 알람은 맞춰놓지만 그것을 실행하기까지의 거리는 참 멀다. 정오에 시작한 하루지만, 아직 하루가 끝난 것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8시에 일어나는 루틴이 만들어졌다, 는 문장을 언젠가는 쓰리.
동생이 차려준 식사를 하고 양심상 설거지와 빨래 널기를 내가 마무리한다. 누구든지 동거인이 있다면 암묵적이든 공표를 하든 집안일에 대한 분담은 나누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 이 평화가 오래도록 유지되기 때문이랄까. 집안일을 하기 귀찮거나 그런 것은 없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바람이 잘 불고 화창한 날이면 세탁이 다 된 빨래감을 너는 일,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등의 일상의 일들이 좋다. 간단해 보이지만 내 손을 닿아야만 비로소 굴러가는 일들을 좋아한다.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한 만큼 결과값이 바로바로 산출되기 때문일까. 집안일은 정직하다는 느낌을 준다.
감성 한 스푼 담긴 에세이를 앞으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2년 전, 그때는 감성을 채울 수 있는 순간만 있다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환경과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그렇기에 더욱 집안일을 통해 주변 환경을 정돈하고, 경제적 여건을 고려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을 스스로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럴만한 환경이 제공되지 않으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내 자신을 알고, 끝이 정해진 일일지라도 그 과정을 걷는 것도 누군가의 push로 행하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은 하고 싶은 하는 것도 내가 움직여야만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달까. 언젠가 다시금 경제적 여건을 채워야 할 때가 오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텐데, 그전까지 이 행한대로 결과가 보여지는 일상의 일들을 만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