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뿌리

다른 곳에 살아도, 우리는 우리야

by 구월



1998년 1월.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스페인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민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기엔 너무 어렸지만,

떠나는 날 엄마가 울던 그 모습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지만,

마음 한켠에 알 수 없는 무거움이 남았다.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마드리드 공항은 새벽이었다.

어둡고, 추웠다.


우리 가족은 낯선 땅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지인 집에서 2년 동안 생활했다.

내 것이 하나도 없는 공간,

말도 통하지 않았고, 음식도,

사람들의 표정까지 모두 낯설었다.


몇 년이 흐르자 겉으로는 잘 적응한 듯 보였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어디서나 주목받는 내 모습이 싫었고,

도시락에서 나는 김치 냄새가 부끄러웠다.

우리를 비웃는 사람들 앞에서

그저 웃고만 있던 엄마가 창피했다.


그런 낯선 생활 속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놀림받을까 봐 입을 다물었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 여겨질까 봐 말을 아꼈다.

그렇게 점점 ‘나’를 감추는 게 익숙해졌다.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려 애썼고,

나의 진짜 모습은 점점 잊혀져 갔다.


청소년기는 나에게 혼란과 외로움의 시간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스페인인도 아닌

어딘가 애매한 경계에서 고립감과 무력감에 흔들렸다.

여기에 내향적인 성격까지 더해져,

그 외로움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진짜 모습을 알아주고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도 나처럼 이민자였지만,

자기 신념과 뿌리에 대해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낯설면서도 참 멋있어 보였다.


그와 결혼했고,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30대가 되어서야

내 안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의 정체성, 가치관,

그리고 내가 걸어온 시간들이 모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내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내향인인 내가 좋다.


지금도 우리는 이곳 스페인에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이곳이

이제는 나의 고향이 되었고,

아이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추웠던 기억이 가득한 이곳에서,

이제는 아이들의 따뜻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이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게 될까 봐.

그래서 오늘도 한국어를 가르친다.

하지만 단지 말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정서와 문화를 느끼며 자라나길 바란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를 바라며.


세상은 다양하고, 우리는 다르다.

그리고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것도,

꼭 전해주고 싶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흔들릴 것이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을 의심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 내가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혼란스러운 너도, 그것이 바로 너야.”


그 모습 그대로 충분히 괜찮다고,

엄마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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