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놀이를 방해하고 있던 건 바로 나였다

아이의 몰입을 찾아서

by 구월

어릴 적 가장 신나게 놀았던 기억을 꺼내본다.


들판을 뛰놀며 메뚜기를 잡고,

친구들과 나뭇가지를 모아 오두막을 짓고,

엄마와 나란히 앉아 종이인형 놀이를 하던 시간들.


그땐 핸드폰도, 유튜브도 없었다.


직접 몸을 쓰고, 상상하고, 만들어서 놀았다.

놀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일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저절로 놀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만 세 살인 첫째 아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핑크퐁!"을 외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살기 위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밀린 집안일도 해야 했고,

나도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후회는 없다.

육아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늘 타협하며 살아가는 일이니까.


하지만 마음 한켠에 남는 죄책감만큼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이가 화면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다 어느 날.

미디어를 무조건 없애는 대신 더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알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며 놀이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주로 아이와 했던 활동들이 진짜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키즈카페,

문화센터,

교육적이고 유익한 장난감들...


아이를 위한다며 무의식적으로 놀이를 통해 아이를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어른들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노는 것.


그것이 과연 놀이일까?


그제서야 보였다.

자신이 선택한 놀이를 주도적으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제시하고 주도하는 놀이를 따라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놀이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아이에게 놀이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배우는 가장 본질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정서와 사회성,

그리고 자율성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배움의 과정인 것이다.

놀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기다리고 정리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니,

나 또한 처음으로 몰입을 느꼈던 순간이 바로 놀이였다는 걸 깨달았다.


메뚜기를 잡느라 숨을 죽였던 순간,

종이인형 옷을 오리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그 순간들이 바로 몰입의 기억이었다.


오롯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힘.

그 특별한 경험을 아이에게도 선물해주고 싶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는 자극과 방해로 가득하다.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만의 온전한 놀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아이 옆에 앉는다.

아이가 스스로 놀이를 선택하고 주도하도록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아직 서툴고 더딘 걸음이지만,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가끔 아이가 완전히 세상에 빠져든 얼굴을 보게 된다.


그 순간, 조용히 깨닫는다.


내가 지금까지 아이의 몰입을 얼마나 많이 방해했는지를.


아이는 이미 놀 줄 안다.

다만 우리가 그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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