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야

어쩌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삶은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by 구월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 성향을 갖고 있다.



무언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는 이상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분명 잘하고 있는데도

기대치가 높아 더 완벽함을 추구했다.

그리고 이 완벽함을 남에게까지 보여주려고

나의 연약한 부분을 꽁꽁 숨기려 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병이 났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무대에 오를 때면

손이 떨려 활을 제대로 잡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컨트롤할 수 없는 떨림은 곧 소리에 그대로 드러났고,

음은 자꾸만 깨지고 흔들리며

결국 연주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온 적도 있었다.


처음엔 연주에서 시작된 두려움이

점점 내 삶의 더 많은 영역으로 퍼져갔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누군가 앞에서 책을 읽어야 하거나,

심지어 단순히 자기소개를 할 때조차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의 수준이 얼마나 심했냐면,

불안해 보이는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건 기본,

불쌍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내 손을 꼭 잡으며 괜찮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무대공포증과 사회공포증에 시달리며 살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음악이

나에게는 오히려 공포가 되어 멀리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많은 기회들을 놓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이면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애썼고,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땐 ‘인데놀’이라는 약에 의지했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가졌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째를 임신했을 땐 마침 코로나 시기라

사람들을 만날 일도,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모임도 거의 없어

크게 불안할 일 없이 무난히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를 가졌을 때는 달랐다.

그런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사람들 앞에 서서 발표를 하거나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하지만 약을 복용할 수 없는 상황.


그렇게 둘째 임신 중,

그때까지 참고 있었던 감정들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임신 호르몬, 우울, 두려움,

이 모든 것들에 사로잡힌 채 임신 초기를 보냈다.


답답하게 막혀 있는 지하철 같은 곳에서는

공황 증상이 나타나 몇 번이나 쓰러질 뻔하기도 했고,

극심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도 자주 들었다.


그런 날 회의나 발표가 잡혀 있기라도 하면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고,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라

가족에게조차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차라리 약을 먹는 게

아이에게도 더 나은 건 아닐까…’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었다.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조금씩 다시 올라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둘째는 이제 6개월이 되었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다.

첫째는 올해 5살이 된다.

점점 더 나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색칠을 하다 조금만 선을 벗어나도

“나는 못해”라며 금세 포기해 버리고,

조금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짜증을 내며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아이에게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을 물려주고 싶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처음부터 완벽히 해내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다.


실수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그 실수를 딛고 조금 더 높이 자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지금도 무대공포증을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시간을 지나오며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사실, 이 글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완벽함과 씨름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어쩌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삶은 더 아름답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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