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살아가는 세상의 크기를 넓혀준다.
20세.
사회에서 정한 성인이 되는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 되던 해,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충분히 보고 느꼈다고 착각했고,
그 얇게 쌓인 경험이 나의 신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신념이라 여기는 생각들이 절대적 진실이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럽지만, 그때 그 시절의 나는 꽤나 진지했다.
올해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그때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걸 보면서 당황스럽기도 했고, 상실감과 상처가 쌓여갔다.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했던 친구들과 자연스레 멀어졌고,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끝나기도 했다.
돈이 많으면 인생의 대부분이 해결될 거라 믿었지만
정작 마음속 허기는 메워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성격, 내 능력,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까지.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때 그 시절의 나는, 나에 대해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그때는 왜 이리 몰랐었나 싶다.
엄마와 함께 마요르카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바람.
‘그래, 이게 바로 마요르카지’ 싶은 풍경이었다.
해변에서 엄마와 사진을 찍으려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엄마는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저 멀리, 담벼락을 타고 자라난 빨간 꽃덩굴 앞에 서계셨다.
너무 아름답다며 사진에 담고 계셨다.
다음 날, 우리는 다른 해변에 가기로 했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제 그 꽃, 한 번만 더 보고 가면 안 될까?”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마요르카까지 와서… 꽃?
게다가 꽃은 집 앞 공원에도 있는데.
툴툴거리며 따라갔던 그 길이 지금은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요즘 나도 길을 걷다 꽃을 보면 종종 멈춰 선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는 안다.
꽃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던’ 거였다는 걸.
아름다움을 봐도 그걸 알아보지 못하는 나이였다는 걸.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통찰이 깊어진다고 한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풍경에 눈길이 머물고,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그 안에 얽힌 지난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게 시작한다.
그리고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이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삶을 조금 더 붙잡기 위해 이전보다 더 깊이 살아가게 된다.
그 모든 건 ‘경험’이 우리 안에 쌓인 덕분이다.
경험은 때론 우리를 아프게 한다.
믿었던 것을 무너뜨리고, 혼란을 안기고, 상실감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경험 덕분에 우리는 조금씩 분별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진짜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경험은 세상의 크기를 넓혀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인식하는 만큼이 곧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크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청년의 시기에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관찰하고, 도전하는 것은 필수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물 가 안에 갇혀있던 나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이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구나.’
이 말을 하게 되는 순간, 겸손 또한 자라난다.
온이들아.
너희도 언젠가는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야.
너무 당황하지 않기를.
그건 너희가 자라고 있다는 증거니까.
넓은 세상을 너희만의 방식으로 탐험하고, 관찰하고, 도전해 보렴.
그리고 언젠가, 진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스스로 발견하게 되길 바란다.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