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떳떳한 자긍심

by 고아함

슈퍼마켓에 가는 길이었다. 화창했던 어제와 다르게 날씨는 흐려 잿빛 기운이 가득했다. 외부차량을 단속하는 차단기가 설치된 아파트 진입로 인도를 걸어가는데, 고가의 외제 검은 승용차 한 대와 그에 앞선 손수레 한 대가 차도로 들어서고 있었다. 폐 종이 박스가 가득 실려 있고 힘겹고 느리게 끌리는, 가녀린 초로의 할머니 손수레였다.

우리 사회의 빈부가 한 장면으로 포착되는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수레의 무게만큼 느리게 걷다 자신의 뒤를 따르는 승용차의 불편을 의식했는지 나와 맞닥뜨릴 즈음, 내가 걷고 있는 아파트 인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힘겨워 보여 순간 수레를 밀어 드렸다. 수레는 낮은 턱을 올라 사뿐히 인도로 올라섰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나를 돌아보고 미소를 지으셨다.

할머니의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삶의 일면을 보았다. 남이 쓸모없다 버린 종이 상자를 몸을 움직여 손수 모으고, 그것을 고물상에 팔아 한 푼 두 푼 통장에 모으는 진실한 삶이 잔잔히 가슴으로 와 닿았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생계유지 목적의 경제 활동이라 해도 말이다.

요즘의 돈 버는 방식으로 생각하면 사실 할머니의 돈벌이는 안쓰러울 수 있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같이 투자된 돈의 흐름을 분석하고 판단하여 떼돈을 버는 세태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두뇌 노동의 돈벌이는 서로 투자한 돈을 뺏고 빼앗기며 시세차익을 챙겨 누군 웃고 누군 우는 구조 아닌가. 어떤 돈벌이 방식을 선택하든 현 사회에서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긴 하지만, 이렇듯 순수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도 큰돈을 버는 방식과 할머니의 돈벌이 방식은 너무 대조적이다.

그러나 어디 인생이 돈벌이와 돈이 많다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으랴. 사람답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과 한번뿐인 생명을 치열하고 소중하게 산다는 가치도 있는 법!

적어도 할머니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의 대박을 꿈꾸다 돈 잃고 후회하며 자책하여 불면의 밤을 지새우지는 않을 것같다. 당연히 그와 같은 일로 소중한 생명도 스스로 해하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 나름의 정직한 노동 수고로 주어진 통장 액수의 증가만큼 성실했다는 내면의 떳떳한 자긍심도 있을 것이고, 돈 때문에 머리 쓰느라 불면이 많은 사람들과 달리 고단한 육체노동을 했으므로 날마다 꿀잠을 자는 행복도 있을 것 같다.

외제 검은 승용차와 종이박스를 가득 실은 할머니의 손수레 장면이 생생한 한 장의 흑백 사진으로 뇌리에 남는다. 할머니가 생계 걱정 없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소일거리로 폐휴지 수거 일을 하시면 좋겠다. 내일도 할머니는 종이상자를 수레에 가득 싣고 편리를 추구하는 자동차 물결 속 횡단보도를 건너며, 당신이 사시는 모습을 몸으로 정직하게 보여줄 것 같다.

*사진-고아함*

* 커버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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