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이른 아침부터 내렸나 보다. 베란다 철대엔 빗방울이 대롱대롱 투명 구슬처럼 가지런히 매달려 있었다. 찬바람 한 줄기 휙 거리에 불어왔다. 떨어진 낙엽들이 맥없이 나부끼더니 바람 따라 줄행랑을 쳤다. 교회 앞, ‘옛날 호떡’이라 써 붙인 용달 포장마차에 유난히 눈길이 머물렀다. 비 온 뒤 촉촉한 물기 탓일까. 아니면 스치는 찬바람 때문이었을까. ‘옛날 호떡’이 안겨주는 따끈함과 달콤한 향수에 끌려 서슴없이 포장마차 안에 들어섰다.
한 청년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호떡을 굽고 있었다. 그 앞엔 고즈넉이 한 여인이 앉아 그의 바쁜 손놀림을 지켜봤다.
“어서 오세요!”
반가움과 친절함이 배인 밝은 음성이었다.
“앞에 대기하는 손님이 몇 분 계셔서 좀 기다리셔야 해요.”
내게 미리 양해도 구했다. 기다리겠다고 결정하고 그의 앞, 빈 의자에 앉았다. 외모가 곱상한 청년이었다. 호떡을 구워내는 불판 옆 큰 사각 통에는 어묵도 구수하게 끓고 있었고, 주변엔 장사에 필요한 각종 재료와 도구들이 즐비했다.
혼자 손으로 가루반죽을 척척 알맞은 크기로 잘라내더니 가운데를 오목하게 하고 황설탕 한 숟가락 푹 퍼 집어넣었다. 다음 오므려 기름 판에 올려놓은 뒤 누름 이로 꾹 눌러 납작하게 둥근 모양을 냈다. 앞뒤로 뒤집어가며 노릇노릇, 지글지글 익혀가고 있었다.
그의 부지런한 손놀림 끝에 익어 호떡은 한쪽 판에 따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두둑해지니 여러 흰 종이봉투에 담아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여인에게 건넸다. 많은 양이었다. 그녀가 나간 뒤 이제 나와 단 둘, 포장마차 주변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왔다.
“장사가 참 잘 될 것 같아요.”
어색한 침묵을 깨며 그를 격려하듯 말했다.
“그래요?”
미소를 살짝 보이며 청년은 연신 바쁘게 호떡을 구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말이 신통력을 발휘한 듯, 한 여자 아이가 바로 들어서고 이어 남자 중학생 두 명, 꼬마 사내아이를 앞세운 젊은 엄마도 들어왔다. 포장마차 안이 갑자기 꽉 찬 느낌이었다. 사람은 자꾸 들어오고 청년 혼자 일손이 바빠졌다.
“일 도울 사람 쓰셔야겠어요.”
급한 손놀림을 하는 청년에게 또 말을 건네자 배시시 웃었다. 한쪽에 차곡 쌓인 호떡을 보니 이제 내게 줄 만큼의 호떡이 다 구워진 것 같았다. 그런데 계속 새 반죽을 올리고 구웠다. ‘혹시 내 주문량을 잘 못 알고 있는 걸까?’ 의아해하며 “전 여섯 개만 싸주시면 돼요.” 하니 청년 왈, “손님 것은 지금 판에 있는 것들이고 쌓인 이것은 이전에 주문한 다른 분 거예요.”
좀 전 내 앞의 여자분이 많이 사 갔는데, 보이지도 않는 또 다른 분이라니, 청년은 부랴부랴 익어 쌓아 놓은 호떡을 주섬주섬 흰 봉투에 담았다. 그러더니 호떡 구이판 곁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쏜살같이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어디 가느냐고 물어볼 새도 없었다. 내 호떡은 어떻게 되는 건지 황망한 고민을 하다 뒤돌아보니, 바로 포장마차 앞에 멈춰 선 자동차 여자에게 급히 봉투를 건넸다. ‘나라도 호떡을 뒤집어 줘야겠다!’ 마음먹고 일어서는 순간, 청년이 다시 후다닥 용달차 의자에 올라타 판 위의 호떡을 황급히 뒤집었다.
아뿔싸! 노릇노릇해야 할 내 호떡이 갈색 빛을 띠었다. “탔네요. 하나 더 드릴게요.” 천연스럽게 말하더니 새로 호떡 반죽을 기름판 위에 올렸다. 이미 익어가고 있는 다른 호떡 한 개는 구멍이 나 황설탕이 밖으로 삐져나오기까지 했다. 청년은 반죽을 조금 떼어 그 구멍을 뭉실 때웠다. 그리고 또 다른 호떡을 뒤집는데 그 호떡은 더 많이 탔다. ‘에구! 내가 얼른 뒤집을 걸…….’
“너무 타서 두 개 더 드릴게요.” 그렇게 탄 것 포함, 터져 때워진 호떡까지 청년이 싸주는 대로 여덟 개를 받아 들었다. “수고 많으셨어요!” 웃으며 말하고 긴 시간을 기다린 포장마차 안을 떠나 왔다.
비 온 뒤 낙엽이 나뒹구는 거리엔 오후 햇살이 밝게 퍼졌다. 간간히 찬바람이 겨울을 예고하며 부드럽게 스쳐갔다. 따끈하고 달콤한 ‘옛날 호떡’ 온기를 손으로 느끼며 청년을 생각했다. 청년이 왜 호떡장사를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나름 인생 계획과 꿈이 있어 시작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의 자세를 지닌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맛난 호떡을 만들어 허기도 채워주고 기분도 즐겁게 해주는 청년, 그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인생의 큰 테두리 안에서 보면 젊은 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결단하여하는 것은 더 큰 성공을 향한 도전이 될 것이다. 내 호떡이 탄 것에 대한 보상까지 정직하게 할 줄 아는 상도(商道)를 지닌 청년이니 큰돈 벌어 언젠가는 번듯한 사업체도 운영하지 않을까. 꼭 청년이 그렇게 되길 바라며 하늘을 봤다. 연푸른 하늘이 참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