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불어오는 훈풍이 봄기운을 느끼게 하지만 아직은 싸늘함이 남아 있는 겨울이었다. 분주한 일상을 접어두고 가족과 여행길에 올랐다.
얼마나 달렸을까.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니 큰 연못을 낀 산길 도로가 나타났다. 어둠과 고요가 짙어가는 시간이었다. 오가는 차량도 없었다. 호젓이 우리 자동차만이 헤드라이트를 켜고 목적지를 향해 산길 도로를 달렸다. 어둠과 고요 속에 적막과 으스스함이 다가왔다.
“언제 도착해 아빠?” 무서움이 느껴지는지 아들이 물었다.
“응. 조금만 가면 될 것 같아. 그런데 이 길이 민박집 가는 길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호젓함과 어둠에 압도당한 걸까. 남편은 핸드폰을 꺼내 민박집주인과 잠시 통화를 했다. 그러더니 맞는 길이라며 안도했다.
까만 어둠 속 장거리 운전 길에 마음 조리며 겨우겨우 당도한 마을 입구, “악!”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서있는 한 쌍의 남녀 장승, 어쩜 입은 그리 크고 입술은 두툼한가. 제일 먼저 우리를 맞아 해괴한 웃음을 짓고 있다.
깜짝 놀라 손이 절로 가슴으로 갔다. 그러나 한갓 마을 수호를 기원해 사람이 만든 나무조각상 아닌가. 그렇게 인식하고 나니 안심이 됐다.
차는 계속 어둠을 밝히며 목적지를 향했다. 그때 또다시 눈에 들어오는 생경스런 한 남자, 빈 팔 옷을 펄럭이며 느릿느릿 걷고 있다. 그러다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을 해댔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할머니 한 분, 어둠 속에서 초롱 등불을 들고 서 있었다. 하얀 머리에 하얀 한복, “헤-”, 천진한 미소까지, 백 년 묵은 여우의 야릇한 웃음 아닌가!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바로 그 인물. 어린 시절에 봤던 소름 끼치는 텔레비전의 옛 공포 장면이 가슴을 벌렁벌렁, 심장을 두근두근거리게 했다.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다 왔다며 할머니가 서있는 대문 앞 공터에 차를 댔다.
“먼 길 찾아오느라 고생했지라? 어서들 들어와요.”
우리가 묵을 민박집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든 초롱 불빛에 민박집이 희끄무레 보였다. 초가지붕 토담집이었다.
앞장서는 할머니를 따라 삐걱대는 나무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다. 마루 위 희미한 전등 빛에 아담한 흙 마당이 드러났다. 개 한 마리가 우릴 보고 나부대며 “컹컹!” 짖어댔다. 할머니가 다독이자 조용해졌다. 다른 사람 인기척이 없는 걸 보아 할머니 혼자 사시는 것 같았다.
“화장실은 이쪽에 있어요.”
마루 한쪽 끝, 열린 문 안을 할머니가 가리켰다. ‘어머나! 빨간 변기?’ -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 순간 어린 시절의 화장실 괴담이 쭈뼛 솟구쳤다. 그리고 화장실 입구엔 슬리퍼 대신 하얀 고무신이 놓여 있고 수도꼭지 앞엔 세수 대야 하나. 간소했다. 그래도 화장실이 수세식인 건 다행이었다.
할머니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가 묵을 방으로 들어갔다. 창호지 한 겹 발린 방문에 창문 하나, 방문 고리엔 수저 한 개가 꽂혀있다. 그리고 작은 텔레비전 한 대, 침구류, 쟁반, 물주전자가 전부였다.
“편히 자세요. 나는 옆방에서 자니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고요.”
평온한 표정으로 할머니는 말했다. 할머니 혼자 사시느냐 여쭈니 그렇다 하시고 아들이 서울에 사는데 가끔 내려온다고 하셨다. 그러시며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하듯 말씀하셨다. 그래도 쓸쓸하시겠다 싶어 다정히 할머니께서도 편히 주무시라고 했다.
“으앵 으앵…” 야밤의 적요를 깨며 음산한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뭔가 간절하고 서러워 애달피 우는 아기 울음 같은 소리. 순간 살인의 흔적으로 핏자국이 드러난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소설 장면이 떠올랐다. 소름이 오싹.
“훅-싸” 찬바람 한줄기가 툇마루에 들이쳐 후드득 흙모래를 뿌렸다. 방문은 “덜컹덜컹!”
금방 할머니가 여우로 변신하여 들어올 것 같았다. 숫돌에 칼을 싹싹 갈고 있지는 않을까? 귀를 곧추 세우고 ‘사느냐 죽느냐!’를 생각했다. 바깥 동정에 바짝 귀를 기울이며.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간간히 바람 줄기만 “휘-익” 돌다 사라졌다. 수저 하나 달랑 꽂아 잠근 방문이 잠들기엔 불안했다. 장거리 이동에 피곤도 했지만 짓눌려오는 공포에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창호지 문으로 비쳐 드는 햇살에 눈을 떴다. ‘무사히 살아 있구나!’
안도하며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밤새 불어 친 모래바람에 마루는 흙먼지가 자욱했다. 할머니는 뜨락 한편 아궁이에 불을 때고 계셨다. 연기가 희뿌옇게 뭉실뭉실 마당으로 번졌다.
“할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요. 모두 편히들 자셨수?”
아궁이 앞에서 허리를 펴시며 다정스레 살포시 웃으셨다.
“예, 할머니.”
그렇게 미소 지으며 대답은 했지만 사실 별의별 상상에 얼마나 무서운 밤이었던가.
“날 참 밝네! 맑은 공기 쐬며 동네 한 바퀴 돌아보슈!”
“예, 그럴게요.”
그러나 잠시, 혼자 사시는 할머니를 돕고 싶은 마음이 들어 할 일을 찾았다. 이미 부모님을 여읜 우리 부부는 객지에 살며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는 귀향을 하지 못한 지 오래였다.
나는 마루 모래먼지를 깨끗이 쓸고 남편은 마당을 쓸었다. 아이들은 짖다 벌써 친해진 꼬리 치는 개를 쓰다듬으며 놀았다. 이렇게 하니 꼭 우리가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아 고향집에 온 것 같았다. 할머니도 우리가 아들 며느리 손자 같았을까?
할머니네 민박집을 나와 동네 어귀를 지나서 언덕에 올라섰다. “와!” 입이 딱 벌어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에 온 것인가? 정신이 아리송했다. 시야 가득 끝없이 펼쳐지는 몇몇 기와집과 많은 초가집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젯밤 공포는 다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한밤의 그 공포가 무색했다. 삭막한 문명이 끼어들지 않은 평화로움이 마을 한가득 흐르고 있었다. 큰 성안, 마을 전체가 한 시대의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신비로웠다.
한복 차림을 한 아이들이 머리를 길게 땋아 늘이고 고무신과 짚신을 신고 이 집 저 집으로 뛰어다녔다. 몇몇 아이들은 손에 책을 들고 서당에 가는지 한 집 마루로 급히 올라섰다. 훈장님이 선착순으로 꿀이라도 준다고 한 걸까? 부리나케 고무신짝, 짚신짝을 훌러덩 벗어버렸다. 한동안 정겹게 넋 잃고 바라보다 읍성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포박당한 죄인을 실은 소달구지가 기와지붕 관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포졸은 창을 들고 옆을 따랐다. 이내 사람들이 웅성웅성 지켜보는 가운데 사또의 판결이 이어졌고 죄인에게 힘찬 곤장 세례가 가해졌다. “아야야야!” 죄인은 죽겠다 아우성쳤다. “하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죄인은 그토록 고통스러워하건만…….
그렇게 인정없이 웃다 각종 물건 “뚜닥뚜닥 지이익”소리 내며 만드는 대장간도 둘러보고, 빨간 당근 “우득우득” 찰지게 씹어먹는 마구간 말에게 먹이도 주었다. 그러다 마당에서 한판 민속놀이를 하며 옛 시대로 돌아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린 듯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이 유유히 떠갔다. 해가 서쪽으로 가까워질 무렵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떠나야 할 시간, 할머니의 손을 감싸며 다음에 또 오겠노라 작별 인사를 했다. 할머니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흘렀다. 꼭 다시 오라며 할머니는 우리를 떠나보냈다. 그런 분을 뒤로하며 떠나는 마음이 홀어머니를 고향에 남겨두고 가는 것처럼 아렸다. 타인이었지만 하룻밤 쌓은 정이 깊었나 보다.
할머니는 홀로 서서 우리 자가용이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드셨다. 우리도 할머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잊을 수 없는 이야기(story)가 머문 정겨운 추억을 안고 낙안 읍성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