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가 지상 낙원을 꿈꾸며 착공하고 증축했다. 그리스도교 유럽과 이슬람교 아랍문화가 공존하며 극도의 아름다움과 세련미를 지니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미(美)를 향한 인간의 몰입과 능력이 최고도로 구현된 곳. 아라베스크 문양(빈틈없는 문자와 식물, 기하학적 무늬 배합)과 종유석 장식은 섬세하고 정교하여 정밀한 화려함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인다. 분수와 긴 직사각형 연못물이 어우러지고 드넓은 정원에는 장미꽃이 피며 오렌지 나무엔 주황색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걷다 보면 청명한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리고, 앙증맞고 귀여운 청설모와 마주치기도 한다. 광장 벤치에 앉아 잠시 쉬노라면, 풀어놓은 귀여운 고양이까지 다가와 쓰다듬는 손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은 프란치스코 타레가(FranciscTarrega)가 작곡한 클래식 기타 소곡.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살랑이는 바람처럼, 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물결처럼 선율에 흐른다. 한 음 두 음 몇 개의 음이 장식적으로 떨리며 빠르게 반복되는 트레몰로 주법임에도 느림의 여유가 있고, 안개가 포실포실 피어오르는 듯한 신비가 있다. 옛이야기를 품어 궁전의 역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1492년, 스페인 가톨릭교도인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군대를 이끌고 알람브라 궁전을 진격해 왔다. 스페인 남부를 차지해 이슬람 역사를 이어가던 나스르 왕조는 보압딜 왕을 끝으로 종식을 고한다. 도저히 승산 없는 싸움이었을까. 왕은 궁전 보존을 위해 세 가지 요구 조건을 걸고 항복했다. 알람브라 궁전을 잘 보존해 줄 것과 다 데리고 갈 수 없는 이슬람인을 국민으로 받아 줄 것,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이로써 알람브라 궁전은 보존될 수 있었고 그라나다를 무혈로 인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항복은 인간사에서 비겁과 무력함의 표징이다. 침략에 맞서 끝까지 싸우고 승리를 해야만 용맹한 자요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그러니 끝까지 대항하지 않고 어느 순간 군대를 철수해 항복한 일은 매우 나약하고 졸렬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싸움만이 능사가 아닌 지략은 아니었을까. 공들여 지상낙원의 꿈을 구현한 알람브라 궁전을 파괴하지 않고 자국민도 살리기 위해 품은 숭고한 뜻의 유연한 생각과 의지의 결단은 아니었을까.
왕은 추방당하여 알람브라 궁전을 떠나야 했고, 말을 타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 언덕길을 가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눈물을 본 신하가 나라 잃은 설움 때문이냐고 묻자 "다시는 알람브라 궁전을 보지 못해서 슬프다."라고 했다니, 알람브라 궁전에 대한 그의 애상함이 느껴져 가슴 뭉클하다. 애정과 꿈을 담은 곳에서 떠나야만 하는 그의 통한의 눈물이 애잔히 흐른다. 기타 선율 속에도…….
궁전에서 펼친 지상낙원의 꿈이 영원 없는 인생 파고로 허물어지고 인생의 덧없음이 허무가 되어 슬픔으로 잔잔히 떨린다. 그러면서도 고아한 알람브라 궁전에 심은 사라지지 않은 인간의 꿈을 아름답게 품는다.
자동차 안에서 가정에서 라디오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간간히 들어왔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요즘은 유튜브에서 기타 연주를 듣고 영상으로 궁전의 모습을 본다. 기타 선율은 언제 들어도 가녀리며 유려하다. 궁전은 밤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고요가 흐르는 풍경 속에, 하얀 눈이 포근히 내린 산등성 설원 속에 고고히 서 있다.
알람브라 궁전은 인간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인생에 시련과 시름이 불어 닥쳐도 살아있기에 포기할 수 없는 꿈. 일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탄생과 죽음의 가운데를 살며 영원함이 없기에 영원을 꿈꾸고, 그 영원에 다다르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과 최선을 다하는 꿈,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과도 영원히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
영원을 향한 천국과 에덴동산을 복원해보고 싶어 한 인간의 원초적 꿈이 알람브라 궁전에 살아 있다. 그래서 삶은 허무해도 살아있는 기쁨으로, 누군가가 옆에 가까이 서있거나,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도 한 번쯤 정겹게 바라보고 싶은 곳이다.
사람이든, 일이든, 사물이든 영혼의 충격으로 사랑하고, 호감과 기대로 시공간을 함께 하고 싶은 곳. 처한 상황과 생명도 영원하지 않아 빛바래고 풍화해도,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고 꿈은 가슴에 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