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냥 Oct 31. 2020

쓸데없는 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아무 의미 없다면 어떡하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거겠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생각들에 빠져 자기 확신감을 잃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자기 확신감이란 누군가가 확신을 주지 않더라도,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들었더라도 ‘그럴 수 있지, 뭐.’라는 마음으로 금세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아이 시절 확립되어야 하는 이 확신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른이 될수록 사라져 가는 듯 보인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작은 어른들을 보면 누군가의 평가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스스로의 결정과 행동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 혹시나 잘못 가고 있는 것일까 봐,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봐 매번 불안해한다. 우리는 이런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나 잘하고 있는 거 맞겠지?”




내 결정에 확신이 없어 방황하던 때에 두 친구를 만났다. 한 명은 불도저라는 별명의 무엇이든지 일단 해보는 친구였다. 불도저에게 인생이란 일단 ‘GO!’였다. 그 과정에서 걱정을 종종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무엇이라도 시작하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쓸데없지 않게 됐다. 또 다른 친구는 ‘라바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였다. 친구의 큰 눈이 캐릭터 라바를 닮아 얻은 별명이었다. 라바는   눈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있는 일들을 찾아내 여러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결국 이 두 사람이 겪었던 많은 경험은 튼튼한 돌다리가 되어 당당히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이 친구들을 떠올리면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에서 조정석 배우가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자기 인생에 물음표 던지지 마, 그냥 느낌표만 딱 던져.” 지나친 물음표는 느낌표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다. 일단 한 번 해보는 것, 불안함이 아닌 자기 확신감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 불도저와 라바가 그랬듯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도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가보지도 않았는데 쓸데없는 일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쌓여가고 있는 내 경험들이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어떻게 지금 당장 알겠는가.







작은 어른은 뒷동산과 연결된 오솔길을 발견한 이후 그곳으로 종종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꽤 자주 그곳에 갔는데, 그러다 보니 동물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자연스럽게 요즘 동물 친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알 수 있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작은 어른들이 자꾸만 찾아와 헤집어 놓는 탓에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몸을 피할 장소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고민하던 작은 어른은 동물 친구들에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골라 오두막 하나를 지어주기로 약속했다.


그는 우선 근처에서 통나무 몇 개를 구해다가 열심히 옮겼다. 홀로 질질 끌면서 힘겹게 옮겨야 했지만 친구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작은 어른은 휴일이 될 때마다 찾아와 나무를 옮겼고, 이제 오두막을 지을 수 있을 만큼의 양이 모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오두막 짓기가 시작됐다.


그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걱정이 많았다. 그런 걱정과 달리, 집을 지어본 주변 친구들에게 묻기도 하고, 관련된 책을 읽기도 하면서 오두막의 형태를 갖춰나갈 수 있었다. 동물 친구들도 찾아와 그를 응원해주곤 했다. 그날은 다람쥐 가족이 찾아와 말했다.


“작은 어른아.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다들 기대로 가득 차 있어!”


작은 어른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다람쥐들을 향해 말했다.

"얼른 완성시키고 싶어. 다들 기뻐할 생각을 하니까 나도 좋다!"


그는 다람쥐 가족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못질을 했다. 망치로 쾅쾅, 사포로 슥슥.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오두막의 형태를 거의 완성해가던 때,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작은 어른은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나 내일 마무리 짓기로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 뒤 창가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살짝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동물 친구들과 오두막에 들어갈 수 있겠지? 어떤 도시락을 가져갈까...!'

그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행복에 젖어 있었다.


톡톡


'어라, 무슨 소리지? 설마...'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금방 그칠 것이라고 했던 일기예보와 달리 그날의 빗줄기는 굉장히 거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센 바람이 불면서 천둥, 번개마저 치기 시작했다. 작은 어른은 동물 친구들과 아직 완성하지 못한 오두막이 걱정됐다. 안타깝게도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그는 한 달음에 달려가 오두막 상태를 확인했다. 정말 처참했다. 오랜 시간 공들인 것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밤새 내린 비와 돌풍에 오두막이 쓸려가 버린 것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엉엉 울고 있는 그의 주위로 동물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던 찰나에 다람쥐 가족이 작은 어른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저기, 작은 어른아. 오두막은 무너졌지만 네가 보여준 노력은 헛되지 않은 걸.”


작은 어른은 다람쥐의 위로가 들리지 않는 듯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껏 해온 일들이 모두 쓸데없어졌는걸. 물거품이 되어 버렸잖아...”


그때 사슴 한 마리가 어딘가에서 다급하게 튀어나와 말했다.

“얘들아! 너희 저기 시냇물 쪽에 가봤니? 오두막 잔해가 흘러 내려와 막아준 덕분에 우리 집이 쓸려 내려가지 않았어!! 그 오두막 아니었으면 우리 아이들 전부를 잃을 뻔했다니까 글쎄...!”


 사슴이 말을 마치자 이번엔 토끼 가족이 나타나 말했다.

“어젯밤에 비 때문에 앞이 하나도 안 보여서 도망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작은 어른이 통나무를 끌고 갔던 자국이 깊게 남아있어서 그 길을 따라 도망칠 수 있었어! 하마터면 우리 모두 큰일 날 뻔했어 정말!”


토끼 가족의 말에 다른 동물 친구들도 웅성 거렸다.

“맞아, 그 길에 돌부리가 없어서 도망칠 때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어!”


“맞네! 나도 그랬어.”


"세상에! 작은 어른이 오두막을 만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작은 어른은 그들의 말에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원래 계획과는 다르지만 그 오두막이 너희를 도와줬구나.”    






지금 떠올려 보면 작은 어른과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있었던 일이다. 내가 가고 싶던 학교는 '발표면접'이 있는 곳이었다. 문제를 제시하면 그에 관한 답변을 면접관 앞에서 발표한 뒤, 내 기록이 담긴 서류를 보며 질문받는 그런 구조였다. 문과 과목 범위 안에서 어떤 종류의 발표면접 제시문이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놀랍게도 논술고사를 보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접한 내용이 제시문에 등장했다. 친구의 권유로 무심코 등록했던 논술학원, 그때 가장 많은 생각을 하며 고민했던 문제가 논술고사도 아닌 발표면접에 뜬금없이 제시문으로 등장했다. 본의 아니게 미리 연습을 해놨던 터라 막힘 없이 답을 적고 발표할 수 있었다.


발표 면접을 끝내고 개인적인 질문을 하던 때에도 의외의 경험이 도움됐다. 워낙 긴장을 잘하는 타입이라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안함이 컸었다. 어느 날은 집에 들어오니 사촌 동생이 놀러 와 TV를 보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동생에게 대뜸 물었다. "너라면 대학 면접에서 어떤 질문을 할 것 같아?" 동생은 목이 말랐는지 거칠게 요구르트를 먹다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 대답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놀랍게도 그 질문이 면접에서 그대로 등장했고 덕분에 준비한 대로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큰 생각 없이 배워두었던 학문이 특정 순간에 결정적인 능력으로 발휘될 수도 있고, 무심코 상대방에게 던진 질문이 결정적인 해답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경험한 일들은 이렇게 종종 의도하지 않은 사이에 각자의 자리에서 중요하게 역할한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를지 몰라도 모두 자신이 맞는 자리를 찾아 적재적소에 쓰이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이 길이 쓸데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말자. 그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어떤 능력을 만들어낼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통해 어떤 길이 만들어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미리 단정 짓고, 미리 염려하기보다는 오늘을 열심히 살며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도록 하자. 

.

.

.

언젠간 그 퍼즐 조각들이 각자의 자리로 찾아 들어가 한 편의 아름다운 완성본이 될 것이다.






이전 14화 당신은 가치 있는 존재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