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들
나는 드라마 보는 걸 아주 좋아한다.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간접 경험하는 일은 정말 흥미롭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에 빠지는 궁극적인 이유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어떤 드라마도 과정 없이 결말만 덩그러니 존재하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역경을 헤쳐나가며 전개되는 바로 그 과정이다. 여러 역경이 등장하지만 등장인물들은 그 어려움을 나름의 방식대로 풀어나가며 과정을 거치고 결말에 도달한다. 드라마가 시선을 끌 수 있는 이유는 그 과정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생도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사회에 나가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수많은 결과들을 마주한다. 그 결과들 안에는 숨겨진 과정과 어려움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내려 간다. 역경을 헤쳐나가기도 하고 잠시 쓰러져있기도 하다가 다시 삶을 살아간다. 그 모습을 한꺼번에 내려다보면 인생이라는 하나의 과정이자 한 편의 드라마이지 않을까.
작은 어른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매일 비슷한 내용의 라디오가 흘러나온다. 그 라디오 방송은 그가 사는 곳에 유일하게 딱 하나 있는 방송국에서 내보내고 있었다. 또박또박한 발음의 진행자는 이런 멘트를 반복하곤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입니다. 그중에서도 돈이 최고지요.”
“여러분, 명예를 얻어야만 성공한 삶입니다. 그런데 이 명예는 돈으로도 살 수 있지요. 이 두 가지가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니, 그것이 행복 아니겠습니까.”
“아름다운 외모는 경쟁력이랍니다. 아름답지 않으면 무능력하게 자기 관리를 못한 사람이 됩니다.”
“공동체에서 튀는 행동은 금물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그건 틀린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만 구분하세요. 좋은 것을 쟁취하는 사람은 나쁘지 않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되든 승리자이지요. 반면, 패배자는 아주 나쁜 것이랍니다."
매일 같이 라디오를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기준을 철썩 같이 믿게 됐다. 방송의 타당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곳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역시 그 기준을 충족한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드라마 한 편이 종영되어도 그다음 방영되는 드라마 역시 비슷한 내용이었다.
작은 어른은 자신을 따라다니던 거짓말쟁이 그림자를 없앤 이후로 방송국이 영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왜 매일 똑같은 내용의 라디오와 드라마만을 송출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주변의 작은 어른들은 그의 불만이 유별나다는 듯 입을 모아 한결같이 대답했다.
“나는 재밌는데, 왜? 너무 현실적이고 맞는 말이잖아. 내가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 있지만 대리 만족이라도 해야지. 뭐, 어쩌겠어. 난 주인공이 아닌 삶을 살고 있는 걸”
여러 지인들이 같은 대답을 반복하자 결국 작은 어른은 방송국에 찾아가 항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당당하게 걸어 방송국 앞에 도착했다. 그 건물은 도시의 외곽에 있었지만 작은 어른이 이제껏 봤던 건물 중 가장 으리으리하고 높았다. 방송국 꼭대기에는 작은 어른들의 세상 곳곳에 전파를 내보낼 수 있을 정도로 큰 송신탑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방송국의 이름인 <사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작은 어른은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 한 번을 하고 문을 열었다. 수많은 작은 어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순간 괜히 온 것이 아닐까 후회되기도 했지만 정면에 보이는 안내 데스크를 보고 다시금 용기를 냈다. 작은 어른은 그곳에 앉아있는 안내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녕. 나는 작은 어른이야. 방송국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할까?”
안내원은 이상한 질문을 들은 것 같은 표정으로 눈썹을 추켜올리며 대답했다.
“그래. 네가 작은 어른인 건 누가 봐도 알겠다. 여기 작은 어른 말고 또 누가 있겠니. 대체 뭘 묻고 싶다는 거야? 너 같은 작은 어른은 내가 일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었어.”
작은 어른은 굴하지 않고 말했다.
“왜 너희 방송국에서는 매일 같은 내용만 내보내는 거야? 난 그게 불만이야. 어디로 가야 건의할 수 있니?”
안내원은 빨리 대화를 끝마치려는 듯 대답했다.
“너 참 유별나다. 오른쪽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국장실로 연결된 버튼 하나가 보일 거야. 거기로 가서 얘기해보든지 말든지.”
작은 어른은 안내원의 말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국장실로 향했다. 띵동! 문이 열리고 긴장되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걷다 보니 그는 어느새 거대한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려고 손을 뻗은 그때, 거대한 문이 저절로 끼익 열렸다. 그리고 아주 크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이름 없는 작은 어른! 밑에서 연락받았으니 어서 들어오라고! 허허.”
작은 어른은 용기를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국장을 바라보았다. 그는 목소리 크기와는 다르게 작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국장이 작은 어른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보내자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딱딱한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넓은 방 안, 책상 하나를 끼고 마주 보고 있는 두 작은 어른. 국장은 궁금함을 못 참고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 아주 웃기는 소리를 했다더군. 우리 방송국이 매일 같은 이야기만 내보낸다고? 다양하지가 않다고? 하하! 어디 한 번 떠들어 보시게나.”
작은 어른은 확신에 찬 눈을 하고 대답했다.
“그래. 다양하지 않아. 이 방송국에서는 매일 같은 이야기만 흘러나오고 있거든. 마치 그게 정답인 것처럼. 세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잖아. 그럼 당연히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국장은 그 큰 방 안이 울릴 정도로 웃더니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마치 정답인 것처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원. 우리 방송은 정답이야. 자네가 오답이라고. 기준에 맞지 않는 이야기는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군. 상품 가치가 없는 내용을 왜 돈을 써가며 송출해줘야 한다는 건가!”
작은 어른이 반박하려 하자 국장은 더 큰 목소리를 내며 그의 말을 막았다.
“자네가 불만을 가진 이유가 뭔지 나는 너무 뻔히 보이네만. 정답 근처에도 못 간 삶을 살고 있으니 그러는 거 아니겠나? 여기 자료를 보니까 자네도 무대에서 쫓겨난 사람이더군. 경쟁에서 밀리고 눈에 보이는 결과도 못 냈으면 무대에 설 자격이 없지. 하긴 주인공을 아무나 하겠는가? 질투가 나면 그렇다고 말하게. 괜히 다양성 운운하지 말고.”
작은 어른은 그의 말을 들으며 오히려 더 차분해진 상태로 받아쳤다.
“너희는 본분을 잊었구나. 방송국의 역할은 세뇌하는 게 아니야. 편파적이지 않게 다양한 작품을 송출하는 거지. 드라마를 만들 때는 너희처럼 무대 하나에 사람들을 세워둔 채로 촬영하지 않아.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며 만들어지는 게 드라마잖아. 무대는 너희가 정하는 게 아니야."
작은 어른의 말에 국장은 몸을 파르르 떨며 노려보며 외쳤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 봤자 너는 절대 우리 무대에 세우지 않을 거야! 알아듣겠나!!"
그는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 마지막 한 마디를 내던졌다.
내가 있는 곳이 내 무대인 거 아니겠어?
건물 밖으로 나오자 잔뜩 껴있던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졌다. 그 햇살은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되어 작은 어른을 따뜻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여전히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라디오의 소리가 마을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춤을 추며 걸어갔다. 작은 어른의 드라마는 그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햇살은 그의 움직임대로 그를 비추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곳이 작은 어른과 햇살이 함께 만드는 넓고 자유로운 무대였다.
저마다의 드라마는 사회라는 방송국의 기준에 맞게 편집당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암묵적으로 ‘성공한 드라마’, ‘바람직한 드라마’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드라마는 서서히 힘을 잃으며 사라져 갔다.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주체로 서 있던 나는 없었다. 그 안에 사회의 기준들이 가득 들어차게 되면서 정작 나는 ‘자격 없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정말 내가 자격 없는 사람일까?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는 방송을 잠시 꺼보기 바란다. 거짓된 주파수에서 멀어진다면 내게 주어진 드라마의 주체가 나임을 느끼게 된다. 내 삶은 사회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얻게 된 인생이라는 이 깜짝 선물은 이 세상에서 떠나는 날까지 소중하게 가꾸며 펼쳐야 하는 나의 드라마다. 사회의 기준이 내 주관을 빼앗아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자유는 여전히 나에게 있다.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기에 나만의 드라마를 풀어나가며 불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꼭두각시처럼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장르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방송국에서 방영해주지 않겠다며 내 무대를 빼앗았더라도 크게 개의치 말자. 원래 드라마는 카메라가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만들어진다.
.
.
.
잊지 말자
인생의 과정은 당신이 있는 그곳이 무대가 되어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