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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Oct 31. 2020

공허한 그 자리

우리를 작은 어른으로 만드는 궁극적인 원인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다가 이런 댓글들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저 사람들을 도와줘?”,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네. 구조 헬기 좀 그만 보내라고 해.” 우리가 타인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과는 전혀 관련 없다는 듯 선을 긋는 댓글들을 보고 있으니 숨이 막히면서도 모순적이게 어딘가 빈 것처럼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수군거림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기사 하나가 터지면 그것이 확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인 것처럼 인신공격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얼굴을 마주하고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비판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면 그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틀린 행동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만약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실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공격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나를 아끼고 내 의견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나쁜 행동은 아니다. 문제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패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내 이익만 소중하게, 내 입장만이 정답인 것처럼 여기는 이기주의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나만큼이나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우리가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그것이 언젠가 나에게도 도움으로 돌아기도 하며, 내가 받고 있는 도움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기도 한다. 




작은 어른은 커다란 아이로 살다가 작아져 버린 이후로 오랫동안 이름을 잃고 살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스스로 생각하는 힘, 주관이 서서히 깨어났다. 그 이후 그는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주관의 힘을 길렀고 부정적인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었다. 아직 이름을 찾을 순 없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했다.


그런데 그는 언젠가부터 원인 모를 공허함을 느꼈다. 분명 많은 것을 깨닫고 몸도 가벼워졌는데 조금씩 마음의 빈자리를 느끼곤 했다. 넓고 푸른 들판 위를 달리며 시원한 바람을 느껴봐도, 나비와 함께 춤을 춰봐도 그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작은 어른은 답답한 마음이 들면 늘 그래 왔듯 이번에도 뒷동산으로 향했다.


어김없이 뒷동산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은 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날은 유독 나무에 기대고 있는 등이 따뜻했다. 왠지 나무가 곧 말을 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 일이 일어났다.


“안녕, 친구. 오랜만에 왔구나.”


따뜻하면서도 깊은 목소리가 나무에게서 울려 퍼져 나왔다. 작은 어른은 등을 떼고 몸을 돌려 천천히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푸르른 나뭇잎이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리가 났지만 그는 이상하게 놀랍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안녕, 나무야. 나는 작은 어른이야.”


작은 어른의 소개에 나무도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 친구야. 나는 아하바라고 해. 늘 너를 지켜봐 왔어. 이렇게 직접 대화하니 참 좋구나.”


작은 어른은 나무 기둥에 손을 얹고 말했다.

“처음 왔을 때부터 대화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지켜보기만 했어?”


“네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방법들을 통해서 다가갔단다. 여기에서 만났던 마노아 기억하지? 그 아이는 나랑 아주 친한 친구야. 네가 만났던 하얀 어른도 가끔 이곳에 와서 나와 대화하다가 가곤 하지. 노란 숲에서 만났던 딱따구리도 기억하고 있겠지? 그 아이도 자주 놀러 오곤 한단다. 또 햇빛 요정도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야.”


작은 어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정말 그 친구들이 전부 너의 친구야? 그러면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일부러 그 친구들을 보낸 거야?”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하지만 너와 친구가 되고 싶은 건 확실히 맞아. 내 목소리는 주관이 깨어나야 들리거든. 그 친구들을 통해서 너의 주관이 깨어났나 보구나.”


작은 어른은 주관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며 고민을 토로했다.

“마침 그 말 잘 꺼냈어. 내가 주관이 깨어난 뒤로 말이야. 분명 자유를 느끼고 행복한데, 이상하게 어딘가 공허한 느낌이 들어. 내 일상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말이야. 대체 왜 그런 걸까?”


아하바는 작은 어른의 질문에 짙은 초록색의 나뭇잎을 그의 머리 위로 톡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마음의 빈자리를 말하는 거구나. 그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리란다. 원래는 채워져 있던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버려 생긴 빈자리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렴. ‘그것’은 몸이 자라나는 것처럼 자라게 만들 수 있거든.”


작은 어른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자라게 만들 수 있다니! 얼른 그 방법을 알려줄래? 꼭 채우고 싶어, 그 빈자리.”


“좋아. 내가 알려줄게. 자주 나를 찾아와 주렴. 우선 친구가 되자.”




작은 어른은 그날 이후로 뒷동산에 더 자주 찾아갔다. 아하바는 그때마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하바가 해줬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맞춰보니 ‘그것’은 아직 세상이 따뜻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마음의 원천이면서 무언가를 아끼고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의 기반이었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이 나오는 문이었다. 작은 어른은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갔갔다. 그러나 여전히 그 이름은 알 수 없었다.


그날은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하늘도 회색빛이 돌며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었다. 작은 어른은 아하바와 이야기하면 이상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뒷동산으로 향했다.


아하바, 나 왔어. 근데 오늘 좀 이상하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야.”


그의 말에 아하바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이내 나뭇잎을 파르르 떨며 이야기했다.

“친구야, 곧 이 뒷동산이 사라질 거란다. 어서 이곳에서 내려가야 해.”


작은 어른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불안함에 울먹거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뒷동산이 없어진다니? 너는 어쩌고?”


아하바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친구야. 내 말을 잘 들으렴. ‘그것’은 때론 부패해서 나타나기도 해. 부패한 ‘그것’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 전부터 뒷동산을 없애고 새로운 도시를 만들 계획을 해왔어. 동물 친구들의 터전이 사라져 갔던 거 기억하지? 그게 시작이었단다. 이제는 아예 이곳을 불태워 버릴 거야.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해.”


작은 어른은 그의 말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무 기둥을 끌어안았다.

“안 돼, 아하바. 너만 두고 갈 수는 없잖아! 나도 여기 있을 거야.”


아하바는 풍성한 나뭇잎이 달려 있는 나뭇가지로 작은 어른을 끌어안았다.

“내 친구야. 부탁이 하나 있단다. 꼭 네가 해줬으면 좋겠는 일이야. 그렇게 해주겠니?”


작은 어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끄덕임에 아하바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아하바 나무가 살았단다. 이 세상 곳곳에 살던 그들 덕분에 너희들이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지. 하지만 부패한 ‘그것’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모두 베어버렸어. 나무가 사라질 때마다 너희는 이름을 잃고 점점 작아져갔단다. 마지막으로 남은 나마저 사라지게 되면 저들은 따뜻함까지도 영영 잃어버리고 말 거야. 그러니 네가 작은 아하바들을 심어주지 않겠니?”


작은 어른은 아직 멈추지 않은 눈물을 훔치며 물었다.

“그런데 아하바, 나는 그럴 만한 힘이 없어. 어떻게 내가 그런 일을 한단 말이야?”


아하바는 작은 어른을 더 따스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소중한 친구야, 네가 나를 위해 울어주는 눈물이 그 자격을 의미한단다.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다는 건 이미 네 마음속에 ‘그것’이 자라고 있다는 의미거든. 너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나는 너와 대화하며 네 마음에 ‘그것’을 심었어. ‘그것’은 곧 나란다.


아하바는 작은 어른을 안고 있던 나뭇가지를 풀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마음에 있는 아하바 나무를  길러내면 열매를 맺을 거야.  열매를 주변에 퍼뜨리고 다니렴. 작은 아하바들이 널리 퍼져나가 너희 세상의 따스함을 유지해줄 거란다. 이제 어서 가도록 . 그들이 오고 있어.”


작은 어른이 코를 훌쩍이며 나무를 쓰다듬자 아하바는 나뭇가지로 그의 등을 밀었다. 작은 어른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옮기며 뒷동산 아래로 뛰기 시작했다. 그때 아하바의 마지막 소리가 들렸다.


“잊지 마! 결국 너희가 잃어버렸던 건 ‘이름’이 아니라 바로 나야! '그것'의 이름은 사랑이란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 마음을 공허하게 만드는 그 빈자리에 들어갈 것은 아하바(히브리어로 사랑을 뜻함)이다. 사랑 그것은 모든 좋은 마음의 원천이다. 사랑의 근본적인 특성은 무언가를 아끼고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사람에게 향하게 되면 애정, 우정, 관심, 배려, 이해 등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나에게로 향하게 되면 열정, 자존감, 가능성, 자기 확신감 등으로 나타난다. 사랑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며 지켜야 하는 모든 선(善)의 기반이다.


수많은 작은 어른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사랑’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있다. 함께 살아남기 위해 공동체를 이뤄가기 시작했을 그때, ‘우리’라는 개념이 생겨나며 ‘나’뿐만이 아니라 ‘너’의 안위도 생각하는 마음이 자라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마음은 부패해갔다. 비교대상이 있다 보니 ‘내 이득’을 더 채우고 '내 입장'을 더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비뚤어진 사랑은 ‘우리’의 자리를 지워버렸다. ‘너와 나’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던 사랑은 점점 희미해져 갔고, 그 자리에는 나만을 생각하는 부패한 사랑이 짙어져 갔다.     





부패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사랑의 원래 속성을 인지하지 못해 스스로의 가치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볼 줄 모르니 외부에서 무언가를 채워야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로서 자리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가치 있는 존재로서 살려면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타인을 무시하게 되기도 한다. 당연히 타인을 볼 때도 그 자체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사람 자체’의 가치보다 내 이익을 채워줄 것의 가치를 더 높게 여기게 되고 만다. 심지어 내가 누군가를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어른이 되었다. 작은 어른들이 많아지자 커다란 아이들도 작아졌다. 올바른 사랑이 자랐어야 할 공허한 그 빈자리에는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작은 어른들처럼 부패한 사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부패한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작은 어른으로 변하게 만들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는 ‘내가 잘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 말을 '나만 잘 사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향한 사랑은 머지않아 부패해버리고 만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봐야 그것을 유지해줄 공동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랑의 마음을 올바르게 성장시켜 '내 모습 그대로의 가치'를 인지하면 더 나아가 타인의 가치도 볼 수 있게 된다. 작은 어른들이 양산되는 악순환은 공허한 빈자리에 올바른 사랑이 자랄 때 끊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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