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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Sep 17. 2020

잃어버린 나의 이름

이 세상의 수많은 "작은 어른들"이 찾아야 할 그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중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름’의 중요성을 깨우쳐주고 있다.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존재에게 이름을 붙여주자 그 존재가 모양과 색깔, 향기를 갖춘 의미 있는 대상으로 느껴진다는 것. 그저 그런 존재에서 가치 있는 대상이 된다는 것. ‘이름’은 상대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그 인식은 상대에 대한 호감과 애정이 만들어지는 창구를 열어준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이름을 인지하는 것은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연결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작아진 어른이 있다. 그는 오늘에 대한 만족과 내일에 대한 기대가 많았던 어린 시절을 잊어버리고 사회에 순응하는 작은 어른으로 자라났다. 어떠한 반문도 갖지 않은 채 ‘남들 하는 대로’ 살아왔다. 누구나 대학을 가니까, 누구나 결혼을 하니까, 누구나 묵묵히 내 삶을 깨뜨려 가며 일을 하니까 의문을 가질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어른은 작은 것이라고 체념하며 지냈던 그는 어느 날부터 점점 부풀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무엇이기에 이곳에 있는지, 왜 아무도 힘든 티를 내지 않는 것인지, ‘대체 왜?’라는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갔다. 더 이상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부푼 작은 어른은 차오르는 생각들 때문에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돌려 바라본 풍경은 어딘가 이상했다. 모두 똑같이 생긴 작은 어른들만 가득했다. 그는 당황하여 주변의 작은 어른을 붙잡고 물었다.





 “너는 누구야?”


그는 피곤함을 잔뜩 머금은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돈이야.”


작은 어른은 다시 한번 물었다.

“네가 왜 돈이야?”


“그걸 말해줘야 아니? 주변을 돌아봐. 다들 돈 때문에 힘들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일 하고 있잖아.

 돈을 위해 사니까 결국 내가 돈 아니겠어.”


작은 어른은 혼란스러움을 안고 조용히 물었다.


“그럼 너는 지금 행복하니?”




그는 대답이 없었다.




작은 어른은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작은 어른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야?”


나는 회사의 부속품이야." 


작은 어른은 다시 한번 물었다.

"네가 왜 부속품이야?"


"너도 얼른 바쁘게 움직여. 우린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나는 책임져야 할 커다란 아이가 있어. 방해하지 말아 줄래?”  


작은 어른은 혼란스러움을 안고 대답했다.

“커다란 아이? 너는 더 작아지고 있는 걸.”




그는 대답이 없었다.




작은 어른은 마지막으로 잔뜩 짐을 지고 있는 작은 어른에게 다가갔다.

“너는 누구야? 그거 무겁지 않아?”


그는 작은 어른의 물음에 대답했다.

나는 모두의 기대야.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너무 아껴서 모두 큰 기대를 걸고 있어.

 애정이니까 무겁지 않은 걸. 누구나 이 정도는 들고 가는 거 아니겠어?”  


작은 어른은 혼란스러움을 안고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너, 지금 곧 무너질 것 같은 걸.”


짐을 들고 있던 작은 어른은 그 소리에 놀라 짐 더미에 파묻혀 버렸다.

부담감이라는 짐의 무게를 느껴버린 것이었다.     


작은 어른은 그들을 보며 깨달았다.


 '저들은 이름을 잃었구나.'


그 순간 작은 어른 속에 아등바등 눌러 담겨있던 온갖 의문들이 터져 나왔다.

그는 다시 홀쭉해졌고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 안에 남은 한 가지 대답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름을 잃었구나.”         





돈, 직장, 기대감과 같은 여러 가치들은 사실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모두 중립적인 요소일 뿐. 그것들을 어느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내 정체성이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다른 가치가 대신한다면 우리의 삶은 작아지고 말 것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작은 어른들은 그렇게 자신의 이름조차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왜 짊어지고 있는지 모를 짐들을 이름 대신 이고 가면서.


‘잃어버리다’는 자신도 모르게 없어져 더 이상 내 소유가 아닌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잊어버리다’는 알았던 것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황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나의 이름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꼭꼭 숨어버렸다면 ‘잊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지만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자신도 모르게 없어져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끔 된 상황이라면 ‘잃었다.’라는 표현이 더 알맞다. 우리는 이름을 잃었다. 나의 정체성, 성격, 상황들을 모두 포괄해주는 그 단어, 이름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이름과 함께, 우리는 '나'를 잃어버렸다. 내 속에 있는 구체적인 모양과 향기 그리고 색깔을 잘 모른다면 가치를 알아볼 수 없으니 자꾸만 다른 것에서 가치를 찾게 된다. 이름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나버린 구멍은 나를 향한 인식과 애정, 자존감마저 흘러나가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그 자리에 무언가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름'에 꼭 맞는 그 구멍은 어떤 것으로도 메워지지 않기 마련이다.

이 순간 수많은 작은 어른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

.

.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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