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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Oct 31. 2020

#프롤로그

작은 어른을 발견하다

몇 년 전, 평소와 똑같이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내가 타고 있던 칸이 유독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덥지도 않았는데 묘하게 숨쉬기가 힘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아 보였다. 무표정으로 앉아 스마트폰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 그 칸에 타고 있던 아이들 외에 모든 어른들이 어두운 표정을 한 채로 생기 없이 앉아있었다. 그 묘한 분위기는 숨이 턱 막히게 했다.


다시 고개를 내리자 꺼진 스마트폰 화면 위로 내 얼굴이 비쳤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생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꼭 화면 안에 갇힌 작은 어른 같았다.  해맑게 재잘거리는 작은 아이들은 커다란 아이 같았고, 큰 어른들은 작은 어른처럼 느껴졌다. 분명, 눈 앞에 보이는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훨씬 덩치가 큰 성인이었지만 작았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와 생각에 잠겼다. 사람은 긴 우주의 역사 속에서 짧은 기간 내로 나름의 한 획을 그으며 세상을 발전시켜온 존재들인데 왜 이렇게 다들 작아져 있는 걸까. 왜 다들 생기를 잃고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내릴 수 있는 답은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문득, 진정한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어른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작은 어른 속에 갇혀 있는 내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갇혀 있는 그것은 나의 '주관'이었다. 진정한 내 생각, 자유로운 내 시선이 나오는 엔진인 '주관'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내 역동적인 주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수동적인 순응만이 자리했다.


작은 어른의 틀을 비집고 나오려면 주관을 깨워야 했다. 진정한 내가 있어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내가 깨어나야 살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진정한 내가 설 수 있다.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줄 알게 되면 이미 사회에 의해 결정된 행복의 조건보다는 내가 느끼는 행복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며 폭넓은 시각으로 행복해지는 길을 걸어가 보자. 억지로 작게 만들어 움츠려 있던 어깨를 당당히 펴면서.

그런 마음으로 만들어낸 것이 <작은 어른>이다.


그날 내가 지하철에서 발견한 것은 흔들어 깨워 줘야 하는 작은 어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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