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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듕쌤 Sep 04. 2023

조건을 바라면 사랑할 수 없어.

얼마 전, 아는 동생에게서 정말 오랜만에 카톡이 왔다.


"잘 지내시나요?"

(나: "그럼~ 잘 지내지! 오랜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시고~~??"

(나: "응~ 잘 지내고말고~호호호")

"나도 좋은 소식 가져와야 하는데~~ 왜이렇게 누굴 만나는게 어려운지 모르겠네~ ㅎㅎㅎㅎㅎ..."


사실 이런 고민은 나도 아주 오랜시간 해왔었고, 지금도 많은 친구, 언니, 동생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있기에 어떤 마음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좋은 소식 가져와야 하는데.


[결혼 좀 안 하면 어때?]에서 말했듯 늦기 전에 결혼을 해야한다는 '사회적 '에 갇혀 나 또한 30대가 되고부터 자주 했던 말이었다.


20대에는 서른이 되어서도 결혼을 안하면 문제가 있는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직장 들어갈 당시 29,30에 결혼할 사람도 없는 선배들을 보며 "뭐야~ 저 나이 되면 당연히 결혼해야하는 거 아니야? 이상한 사람들 아니야?"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니 나이 서른에 아직도 결혼을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스스로 얼마나 한심스러웠을까.


이래서 남 욕은 함부로 하면 안되는건가보다.


내 꿈은 "현모양처"였다.


이 어찌나 황당한 꿈인가. 하지만 정말로 그랬다. 내 일기에도 그렇게 썼고, 학교 진로 희망서에도 그렇게 적어냈다.


대학에 들어가고부턴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일찍이 오빠와 나를 키워놓은 엄마는 엄마라기보다 친구에 가까웠다. 나도 내 아이와 친구가 되려면 나이차가 많이나면 안될 것 같아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연애는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나이먹은 나를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면 어쩌지?"


그리고 매해, 더 늦기전에 결혼을 해야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전세구함"처럼 "남편구함" 푯말을 걸어둔 부동산 상품처럼 나를 시장에 내놓았다.



보증금과 월세를 얼마정도로 잡아야 적당할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나는 참 저렴했다. 보증금 1000에 월세 30이라니. 사실은 무보증금까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보증금 1억/ 월100만원>

정도의 상대를 찾아 해맸던 것 같다.


"남자가 사회생활 했으면 자기 수중에 최소 1억은 있어야지!"

"월급받으면 생활비로 최소 100만원씩은 주겠지?"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고, 결혼에 실패하며 내 가치를 '대학동 언덕 꼭대기 위에있는 작은 단칸방'정도로 격하시켰다. (실제로 여기는 무보증금에 월세30짜리도 있다.)



좋은 사람 어디 없어?


우선 이 '좋은 사람'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집을 구할 때를 떠올려 보자.


사람마다 각자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측면이 한두가지씩은 꼭 있다.


내 경우엔 갖고있던 짐이 많은 편이어서 집이 좀 낡아도 상관 없었지만 작은 집은 절대 안됐다. 또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 편이기에 지하철역까지 무조건 도보10분이내 거리에 있어야 했다.


이처럼 살면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결혼이 하고 싶어도, 상대가 좋아도, 절대 양보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하면 언젠간 "이 집에선 더 이상 못살아!!"라며 헤어질 수밖에 없어진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결국 마음갖기 나름이고 내가 만들기 나름 아닐까?

물론 모든 면이 다 좋고 비싼 집이 좋은 집이겠지만 가진 돈이 없어 살 수 없는 집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게 좋은 사람 찾는 법


첫째, 나는 왜 특이하고 특별한가?


나라는 사람이 어떤 매력을 가진줄도 모르면서 마냥 사회 통념상 좋다고 하는 상대의 기준만 따라가면 무조건 후회를 하게된다.


"키는 170 후반이면 좋겠구~ 정규직으로 직장은 다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구~ 아, 사업가도 괜찮다. 착하고 매너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말도 잘 통하구!"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물어보면 어쩜 이렇게 다 똑같은 답변이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다. 내 대답도 저것과 똑~같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사람을 정의하는 항목들이 아닌 그저 현재의 '상태'만으로 기준을 잡은 것. 그리고 말이 잘 통한다는게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물으면 "그거 있잖아~ 티키타카 잘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니까, 어떤 사람이랑 티키타카가 잘 되는데?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독특함이 있다. 그리고 그 독특함을 이해해 주거나 그것과 비슷한 측면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평범해지려는 노력 없이도, 나는 나로서 살 수 있게 된다. 나는 남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둘째, 내게 없는 걸 상대에게 바라지 말라.


"나는 청소를 잘 못하니까 꼼꼼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나는 요리를 못하니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라는 기준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지저분한 나 대신 하루종일 청소하는 상대는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요리를 해주기만을 바라는 게 얼마나 숨막힐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신랑과 자주 다퉜던 부분과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원하는 기준을 신랑에게 강요했을때 혹은 내가 해주는 부분에 대해 반대급부를 바랄 때였다.


"내가 요리 해줬으니까 넌 설거지 해줘."

"제발 접시좀 순서대로 예쁘게 쌓아줘."


그럴 때마다 신랑은


"나한테 자꾸  해달라고 하지마. 나는 언제 너한테 뭐 해달라고 했어?  자꾸 나한테 뭘 바라고 그거때문에 난 또 핀잔을 들어야 되는데?"


처음엔 그저 황당하기 그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판단이 맞았구나 싶었다.


그는 내가 부탁하면 할 수 있는 한도에선 다 들어주려고 한다.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가끔 로봇청소기도 돌린다. 하지만 공부하려는데 부모님이 "공부 왜 안해!"라고 하면 하기 싫듯이, 어른도 똑같이 하라면 하기 싫다.


만약 그가 아무런 집안일도 하지 않는다면?

나도 아무것도 안 해주면 된다.

혹은 아무런 대가 없이도 할 수 있는 한도에서만 하면 그만이다.


(사실 이런 대등한 관계를 갖기 위해선 두사람이 다 직장이 있고 맞벌이를 한다는 가정하에 성립이 되지만 말이다. 그만큼 자기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현재의 '조건'이 사라진 상대를 상상하라.


만나자마자 눈이 뿅뿅 돌아 사랑에 빠져버리면 모든 단점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지금은 돈도 잘 벌고 몸도 좋고 잘생긴 상대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신랑은 연봉이 아르바이트생보다 낮았다.

학기중에만 일을 하고 방학땐 일을 쉬며 글도 쓰고 운동에도 집중하며 하고싶은 걸 하고 산다. 하지만 그의 하루 일과를 보면 단 1시간도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가 없었고, 돈이 생긴다고 생각없이 막 쓰던 사람도 아니었다.


남자의 능력에 기대지 않기로 했던 나는 내 수입정도면 그의 수입이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와 함께할 때의 난 전혀 외롭지 않았고 부족함이 없는 인간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가진게 무엇인지를 보기보다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가 더이상 사랑스럽지 않은 날이 오더라 "남자란 자고로 스스로의 밥값만 할 수 있다면 함께 사는 것에 지장이 없는 것 아닐까?" 하며.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잘 번다. ㅎㅎㅎ)




이런 기준들이 확고하게 서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개팅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면 항상 내 모든 걸 상대에게 맞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는 조용히 책읽고 가만히 있는 거 좋아하는데 민정씨는 활발해서 잘 맞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아니에요~ 저 집에 되게 잘있어요~"


실제로 지금은 집콕중이긴 하지만 남편이랑 둘이 하루종일 붙어서 집콕하는걸 상상하면... 끔찍하다.


하지만 그때는 조건적으로나 사람이 괜찮아 보이기만 하면 내 모든걸 맞춰 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 결과 돌아오는 건 상처 뿐이었지만.



좋은 사람은 굴러들어오지 않는다.


영화같은 설레는 만남은 요즘 세상에 더 이상 없다. 개인 SNS나 어플을 통해 만나는 것이 평범해진 지금은 밖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본다고 번호를 묻거나 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나한테 일어날 확률은 1%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찾아 나서야만 한다.


나 또한 인기가 많았을거라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대부분은 내가 먼저 번호를 물어봤지 남자가 먼저 다가온 경우는.... (이하 생략.)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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