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듕쌤 Aug 11. 2023

날 인정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어.

행복학 개론

나, 스스로를 인정한다는 것.


요즘은 '자존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다. 오죽하면 '자존감 도둑'이라는 말도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이 결국 자존감이 없어서란 걸 알고 있다한들, 애초에 가져본 적도 없던 그 '자존감'이라는 걸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자존감은 언제부터 사람다워졌을까?


지금도 나 스스로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어!"라고 할 만큼 튼튼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바늘을 톡 갖다 대면 펑 하고 터지는 풍선은 아니다.



나의 그동안의 두 브런치북에서도 많이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어린 시절의 내 자존감은 진흙탕 그 자체였다.


"너는 어쩜 그렇게 이마가 톡 튀어나왔어?"

학교 선생님의 한마디에 앞머리를 잘라 이마를 가렸다.


"넌 왜 맨날 잘난 척이야?"

다른 반 친구의 말을 들은 뒤로 1년간 숨죽여 살았고


"난 네가 좋아"

라는 남자들에게 내 모든 것을 바치다 상처만 남은 연애를 반복했다.


소개로 만났던 한 남자가 우리 동네에 놀러와 말했다.

"너네 동네 왜 이렇게 가난하냐? 진짜 웃기다 사람들."

그러나 당시의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지도 못한 채 그저 그렇게 관계를 유지했다. 헤어져야 함을 알면서도.


금사빠?!


방 사랑에 빠진다는 뜻의 금.사.빠. 나는 금사빠였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 예쁘지도 않고 잘난 것도 없는 못난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를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하면 가슴이 얼마나 설렜겠는가?


좋아한다는 고백을 받지 않았더라도 내게 조금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쫄래쫄래 가서 배고픈 강아지마냥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헤헤.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몰라!"


만날 때마다 하던 그 기대는 처참히 깨어졌고 점점 꼬리를 흔들지 않게 됐으며, 누군가 간식을 내밀어도 시무룩하게 쳐다만 보는 유기견이 되어있었다.


환승연애?!


금사빠는 환승연애를 좋아한다.


금방 사랑에 빠진다는 건 혼자 있는 걸 싫어하고 누구든 사랑할 대상이, 혹은 자기가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시켜 줄 대상이 자주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다리를 걸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고 금방 또 사랑할 대상을 찾아갈 것이기 때문에 교통카드 "30분 이내 환승 룰"이 적용되어 환승이 되는 것이지.


전 연애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도 전에 어디선가 나타난 다음 사람에게 또다시 홀랑 넘어간다.


"이번 사랑은 진짜야."


는 개뿔. 조금만 만나봐도 "아, 이번에도 망했다."를 단박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없는 난 남자친구가 사라지는 게 무서워 이별을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환승할만한 누군가가 나타나서야 이별을 고한다.


아니, 그 헤어지자는 말을 결국 못 해서 연락을 서서히 끊다 차인다.


혼자는 끔찍이도 싫어.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나를 나로서 바라보지 못하니 혼자 있는 나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완벽한 연애를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못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혼자 있는 게 싫고 외로워서 누군가를 만나는데, 외로움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왜 더 외로운 것 같지?"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아닌 걸 알면서도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이 관계를 잘 유지하고 결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좋은 사람인 척 연기도 해보지만 타들어가는 가슴은 감출 수가 없다.


뭐 하는데 연락도 없지..?

이번 주말에 만나자고 해도 되나..?


연애란 원래 이런 밀당을 하면서 가까워지는 것이라 생각하며 상대의 기분에 맞춰주고 내 존재는 조금씩 지워간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자."


그러나 그 좀 더 나은 나는 사실 내가 아니다. 연기일 뿐이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자도 평생 연기만 하며 살 수는 없다. 평소엔 자기 성격이 나오는 법이다.


하물며 뛰어난 연기자도 아닌 우리가 쿨하고 착한 여자인 척 연기를 해봐야 그게 얼마나 가겠는가? 상대도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Hey, stop acting! I don't buy it."

연기 그만해. 안 넘어가니까.





내 자존감은 누가 망쳐놨을까?


여러 가지 환경 탓을 해보자면 끝도 없다.


그럼, 부잣집 아이로 태어났으면 자존감은 당연히 높아졌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누구든 자기가 태어난 환경 안에서 비교를 당하고 산다.


일찍이 세상을 등진 내 동기도 부유한 집에서 자라 유학도 다녀오고 남들이 보기엔 아쉬울 것 하나 없이 자랐다.


나도 남들이 보기엔 그 정도 얼굴에 그만한 학벌로 자존감이 낮을 일이 뭐가 있었겠냐 싶겠지만 내겐 수십 가지 이유가 있었다.



솔직히 나 정도면 고마워해야지!


나의 첫 자존감 회복 훈련은 장점 찾기였다.


아니, 결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부터 시작됐다고 해야 할까?


완벽한 부모/ 부유한 집안/ 전문직/ 어린 나이


이런 지표들로 결혼상대를 "평가"하는 결혼 시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보니 난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니! 나정도 몸매에, 활달하고, 성격 털털하고, 학벌도 좋은 데다가 똑똑하지 웃는 얼굴도 나름 귀여운 내가 뭐가 아쉽다고 그딴 남자들한테 질질 짜면서 매달린 거야,! 어후~ 못난 놈들."


오히려 나 같은 재원을 못 알아보고 놓친 남자들을 한심하게 보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내가 사람을 걸러 만난다!"


누구든 비위를 맞춰가며 만났던 기존의 관계를 청산하고, 관계에 있어 내가 주도권을 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나를 예쁘게 봐주지 않는 사람도, 나의 가치관을 비웃는 사람도 모두 내쪽에서 거절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


자존감이 있다면 나를 귀하게 생각하는 만큼 상대도 귀하게 기는 법. 맺고 끊음을 명확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최대한 미련이나 상처가 남지 않도록 했다.


(내게 상처를 남긴 그놈들도 자존감이 없어서 상대를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찌질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다.)



외롭... 지가 않아.


상대를 신중하게 만나기 시작하고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을 찾기 시작하면서 솔로인 기간은 늘어났지만 불안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신기했다.


단 일주일이라도 연락할 애인이 없으면 큰일 나던 내가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내고 있는 것 아닌가??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선 상대를 온전히 혼자일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해."


나를 그에게 책임질 짐짝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니 혼자서도 완전한 인생을 사는 내가 남자들에겐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너무 내 멋에 취해 사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자존감이 떨어진 사람들은 이런 자아도취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렇게 혼자서 완전해지던 즈음, 내 짝이 나타났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혼자서도 잘 지내기 시작하면서 내 매력이 오히려 커지고 스스로가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예전처럼 군살 없는 탄탄한 몸매가 아니어도 내가 밉지 않아 졌다. 20대라는 나이는 불안함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30대는 초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뭐든 흘러가는 대로 놔두면서 현재를 즐기지 않으면 내 인생은 '기다림'만 남게 된다.



브런치에서 10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오로지 '아이를 갖기 위한 시간'으로만 살아왔다는 글을 보았다.(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출처를 적지 못하였습니다.)


나 또한 지난 몇 달간 배란일을 맞추고, 임신 테스트기를 수없이 해보며 난임클리닉을 갈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언가만 기다리고 사는 삶은 처참하고 우울하기에 이 또한 하늘의 뜻대로 되겠거니 싶어 완전히 마음을 놓아버렸다. 어차피 안 생길 사람은 시험관 시술을 해도 안 생긴다. 굳이 내 인생을 아이를 갖기 위해 낭비하고 싶지 않아 졌다.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


인생의 짝을 만나는 일도 같은 이치다. 생기면 너무 좋지만 안 생긴다고 지금의 내 삶을 버리기엔 너무도 아깝고 귀중한 시간이다. 특히 결혼을 생각하는 20대 후반~ 30대 중반까지는 더더욱 그렇다.


멋진 인생을 살고 행복한 시간으로 채웠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대들의 이웃을 언제나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지만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되도록 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




[브런치북: 가난한 자유를 얻어보기로 했습니다.]

[행복학 개론 3화]

이전 07화 솔직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