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조어를 보면 "벼락 거지" "빌라 거지"처럼 거지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이 이면엔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갖고있어야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깔려있기때문 아닐까?
나는 남들이 말하는 '빌라 거지' 생활을 하고있다.
거지라는 표현이 너무 격하니 그냥 빌라 생활이라고 하겠다. 그들 표현대로라면 나는 돈도 없고 아파트도 아닌 고작 빌라에서 생활하는 불쌍한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막상 우리집에 와본 모든 지인들은 "와~ 집 진짜 좋다~"라며 집 구석구석을 다니며 구경도 하고, 이런 집은 얼마냐, 인테리어 얼마나 들었냐 하는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물론, 겉으로만 좋아하는척 하고 집에 가서는 '쳇 무슨 아파트도 아니고 빌라에 살아?'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최소한 나 스스로는 30평에 가까운 빌라에 거주하며 인테리어도 하고 쾌적하게 살고있는 내 삶이 자랑스럽다.
인생은 가진만큼 힘들어진다.
내가 일하는 필라테스 센터는 반포동, 그것도 70평대 고오급 아파트가 들어있는 지역에 있다. 그들의 삶을 체험하지 못했을 때는 "나도 강남에 아파트 한채 갖고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라던지, "의사 남편 뒀으면 지금쯤 떵떵거리고 살았을텐데!"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집값이 너무 올라 매월 나가는 건강보험료가 덩달아 올라 감당이 안된다는 얘기, 아이 사교육비를 벌기위해 남편이 매일 새벽까지 야근을 한다는 얘기, 종합부동산세를 내기 위해 집을 팔 수는 없으니 돈을 빌려야 한다던지 하는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파트 갖고있지 않길 참 잘했다."
는 생각까지 든다.
'서울에 집 한채 마련하기'라는 꿈, 그리고 그것만 바라보며 건강과 영혼을 모두 갈아넣어 살고있는인생.
아니면 지금 이순간에도 로또를 구입하며 서울에 아파트 한채 마련하는 것만을 바라보고 살고있는사람들.
정작 무리해서 아파트를 구입하거나 가진게 오직 집 한채뿐인 사람들은, 행복할까?
빌라정도 살면 거지는 아냐
나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12살까지는 우리가 소유한 주택에 살았고 집이 좁아지자 사이즈가 더 큰 다세대 주택에 전세로 들어가 살았다.
다시 2년 뒤, 중학교에 올라가고 아버지의 사업이 잘 나갈 때 처음으로 아파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와~ 엄마 우리도 이제 아파트 살아?? 집 완전 좋다~!"
생애 첫 아파트는 30평짜리 우성아파트였고 매매를 하자는 어머니와 전세를 살자는 아버지의 싸움에서 아버지가 이겨 전세로 들어가 살고 있었다.
"여기 우리가 구입만 했으면 얼마를 벌었는지 알아?!"
1년 뒤, 서울 주택가격이 폭등했고 2억짜리 아파트가 3억이 되는 마법에 어머니의 마음이 타들어갔다.
집값 폭등 이후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이듬해 우리집은 사이즈를 줄여 19평짜리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서 들어갔다. 하지만 방이 2개뿐이라 한 명은 거실에 침대를 놓고 생활해야 할만큼 중학생 여자 하나, 남자 하나가 있는 4인 가족에겐 좁디 좁은 공간이었다.
아파트를 구입하자 서울 집값의 폭락이 시작됐다. 우리에겐 아파트를 소유할 운명따윈 주어지지 않은걸까? 또 다시 1년 뒤, 아버지의 사업이 하락세를 타며 감당하지 못할 빚을 갚느라 그마저도 다 팔고 수중엔 달랑 9천만원이란 돈만 남게되었다.
아무리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 전의 이야기라지만 그때도 9천만원으로는 제대로된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대출을 껴서 좋은 집에 들어가기엔 대출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 후 우리는 17평짜리 햇살도 잘 들지않는 어두컴컴한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들어가 살았다.
그 지역이 재개발이 되기까지 꼬박 10년을 40년도 더 된 오래된 주택에 살았다.
커다란 바퀴벌레가 튀어나오고, 너무 오래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보일러는 두달에 한번 수리공을 불러야 했으며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을 공간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 곳에서 대학에 입학하고, 취직도 하고 남자친구도 만나며 20대를 보냈다.
그런 내게 지금의 넓고 쾌적한 빌라는 꿈만같은 곳이었다.
비록 서북향이라 햇살이 직접 들지는 않지만 쇼파에 누우면 거실 창 밖으로 예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깨끗한 화이트 톤으로 전체 인테리어를 해두니 천장이 낮음에도 답답한 느낌은 커녕 40평짜리 커다란 집에 있는 기분이 든다.
1층이라 겨울에는 추워서 옷을 두겹 세겹 입어야 하지만 집안에서 신랑과 축구도 하고 운동도 마음껏 하고, 밤 늦은 시간에 청소기를 돌리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신랑의 뒷꿈치 망치 소리도 조심하라고 혼낼 필요가 없어졌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집이라 100계단을 지나 100m 언덕까지올라야 하지만 그 덕분에 체력이 좋아지고 언덕위에 사니 홍수 피해를 입을 일도 없다며 기뻐한다.
단점만 바라보면 불행한 삶.
내가 우리집에 대해 좋아하는 면들은 누군가에겐 끔찍한 면이 될 수도 있다.
매일 퇴근길에 끝도없는 언덕을 오르고, 1층이라 겨울에 코끝이 시릴만큼 춥고, 직접 해가 들지 않는 집인데다 아파트도 아니고 빌라다.
"도대체 나더러 어떻게 이런 집에 살라는거야!"
라며 도망칠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집의 수많은 장점들에 너무나도 감사하며 살고있다.
수백만원의 대출이자를 갚기위해 영혼을 갈아넣으며 눈 꼭 감고 죽어라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우리집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ㅎㅎㅎ
40년된 좁디좁은 다세대 주택에 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천국이 따로없다.
서울에 빌라 한채를 소유하면 나가는 돈이 얼마일까?
우리는 매월 대출이자와 원금으로 80만원을 내고있으며 1년에 두번 재산세로 10만원 안팎의 돈을 내고있다. 투자 목적의 집이 아닌 살기위한 집을 구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