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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미수집가 Jul 08. 2021

[제주도 한 달 살기]우당탕탕 제주도 함덕 21일 차

♫ MAX/Felly - Acid Dreams

늦잠을 자 본 사람이라면 알것이다. 몽롱하게 감겨있는 눈 위로 느껴지는 적막한 공기와, 포근한 햇빛, 개운한 몸, 어렴풋이 들리는 새소리가 어떤 의미인지. 이것은 필시 늦잠을 잔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겨우 뜬 눈으로 허둥지둥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7시 45분. 젠장. 알람도 울리기 전이었다. 외마디 짧은 탄식과 함께 다시 잠을 청했지만, 이미 깨어버린 잠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침대에서 꿈틀거리다가 8시가 지나서야 침대 밖을 나왔다.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다. 취향이나 성향, 여행 스타일이 비슷해 주변에 몇 없는, 합이 잘 맞는 여행 메이트인 윤희언니가 오는 날이다. 여행에서 동행인이 생겼다는 기쁨.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조급했던 마음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들게 했다. 사실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언니와는 오후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그사이에 점심을 먹기 위해 무거 버거로 향했다.오늘도 역시나, 매서운 제주바람이 맞이해준다.(그... 그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야 했기에 온몸으로 맞는 바람이 더 매섭게 느껴졌다. 이곳도 작년에 친구인 마늘과 함께 갔던 곳이다.(추억순례라고 해야하나) 그날도 바바 호미에서 나와서 3월의 차가운 바닷바람에 대차게 얻어맞으며 걸었던 날이었다. 덜덜 떨며 도착해서 얼은 몸을 패티 굽는 열기에 몸을 녹여가며 한쪽 구석에 기대어 햄버거를 먹었던 추억과 맛이 함께 있는 곳이다.



 바람을 뚫고 도착한 무거버거는, 건물의 부지부터 외관까지 모두 리모델링이 되어 서울의 백화점이나 가로수길에 있을 법한 힙하고 세련된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시설, 디자인과 브랜딩 모두 이전보다 훨씬 쾌적하고 좋았지만... 그곳엔 내가 알던 무거버거는 없었다. 단골도 아니고, 고작 한 번 와본 것이 전부이지만, 잃어버린 것을 영영 찾을 수 없는 듯한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알 수 없는 아쉬움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꿈뻑꿈뻑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쭈뼛뿌뼛 주문을 하고는 전망이 좋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2층은 노와이파이존이면서 함덕의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데, 그 덕분에 함덕의 바다를 보면서 먹는 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대로인 것은 바다와, 당근 버거와 뿐. 입안에 남아있는 변함없는 햄버거의 맛 만이 위로가 되었다.

식사에 너무 집중한 탓일까, 다 먹고 나니 30분남짓. 핸드폰 없이 혼자 먹는 밥은 원래 먹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먹게 된다. 밀려드는 손님에, 혼자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미안해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지도 어플에 목적지의 주소를 입력하고 알려주는 길을 따라 걷는데,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 도로와 골목길에서 좀처럼 가야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횡단보도를 세 번 왔다 갔다 하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지도위의 내 위치를 확인하는데 자꾸 이상한길로만 간다. 도대체 어느방향으로 가야하는거야(엉엉) 주변만 뱅뱅 맴도는 내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나다가 혼잣말이 툭 튀어나온다.

 '너 뭐하냐 진짜?'

진짜 울고싶을 즈음 가야할 길을 찾았다. 정말 심각한 방향치가 아닐 수가 없다.(길 잘 찾고 싶다 진짜. 엉엉) 역시 나답다. 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태어나 이렇게 살아갈 사람인가 보다.





초점 어디....
귤꽃카페


사람 하나 없이 차 몇 대만 왔다 갔다 하는 길.(뚜벅이는 나 혼자 뿐이었다.) 이 길이 맞나? 싶은 좁은 돌담길 중간에서 만난 귤꽃 카페. 이곳에서 언니와 만나기로 했다.

제주스러운 빈티지한 주택의 문을 넘어가니 꽃 같은 귤밭의 향연이 펼쳐진다. 몇몇 사람들이 귤 따는 체험을 하고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갔다. 협소한 가게 내부에는 서너 개의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각각의 테이블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평소라면 꽉 차는 테이블이지만, 평일의 궂은 날씨가 만들어준 빈자리에 취향에 맞는 자리에 골라 앉을 수 있었다. 카운터 옆에는 메뉴판과 함께 공간 이용에 대한 주의사항이나 공지에 대한 글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는데,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져 안타까웠다. 그 글에서 이 공간을 향한 애정과 소중히 여기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의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을 오감으로 느끼게 되는 일이다. 사장님의 멋진 취향이 묻어나는 인테리어, 분위기에 꼭 맞는 음악, 주문한 음료의 플레이팅을 보며 감격하고, 맛에 감동하고, 혼자 온 여행객이라고 귤 한봉다리를 선물로 주신 사장님의 마음에 또 감동하고! 봉다리 손잡이에 함께 묶여있던 로즈마리의 향긋함이 손으로 전해져  마음을 더 간질거리게 만들었다.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 OO~~!!!"

가까이서 내 이름을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윤희 언니가 드디어 왔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한껏 올라간 텐션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 함께할 여행 계획을 하다가 급, 용눈이 오름을 가기로 결정했다. 원래의 계획이라면 지금 이시간 해녀의부엌에서 공연과함께 저녁을 먹고있어야 했지만, 심해진 코로나의 여파로, 몇일 전 운영중단 소식을 문자로 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주에 와서 첫 오름이었다. 멀고 가기 힘들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던 오름을 드디어 가볼 수 있게 되었다.(사실 정말 가고 싶었다.) 장롱면허인 나와는 다르게 취미가 운전인(?) 언니와 함께하는 길은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차 없이 뚜벅이로 다녀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차가 있으면 더 많은 곳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차가 최고다!!!)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에 서둘러 움직이기로 했다. 잘하면 오름에서 노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용눈이오름


진눈깨비처럼 내리던 비는 개어서 구름이 예쁜 맑은 하늘이 되었다.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구름을 보며 노을이 다 져버릴 까 봐 마음이 조급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오름을 올랐다.

억새로 물든 오름은 장관이었고, 하늘은 주황빛으로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눈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 그냥 아름다웠다. 단지, 올라간 오름의 끝은 너무 춥고, 바람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불었다. 바닷바람은 아무것고 아니었다. 바람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었고,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오름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무서웠다. 노을 진 하늘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점점 어두워졌고, 바람은 더욱 휘몰아쳤다. 우리는 펭귄처럼 조금씩 뒤뚱거리며 걸었고, (마음같아서는 네발로 기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바람을 막아줄 구조물 뒤에 서서 바람이 멎기를 기다리기로 했는데, 우리의 걸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구조물 뒤에 서자마자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 듯 고요해졌다. '이때 아니면 못 내려간다!' 싶어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부리나케 내려왔다. 그 내려오는 사이에 깔린 어둠 위로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커다란 달이 떠올랐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오늘 별이 잘 보이려나보다.


나름대로 성공적인 첫 오름행을 뒤로하고 숙소 근처의 흑돼지 고깃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사실 이곳도 작년에 마늘과 왔던 곳인데, 그때 둘이서 밥 한 공기에 김치찌개, 고기 한 근 반을 먹었으니... 다시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기도 고기지만 이곳에서 불판에 올려주는 '멸젓'에 고기를 찍어 명이나물과 싸 먹는 맛이 일품이다. 아, 또 생각나네.

우리는 한 근으로 끝내고, 숙소의 식당에 가서 혼디 주와 함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즐거운 마음이 몸과함께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하루가 참 풍성하고 긴 밤이었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무거버거-> 귤꽃카페-> 용눈이오름-> 함덕흑돼지-> 유드림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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