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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미수집가 Jun 14. 2021

[제주도 한달살기] 우당탕탕 제주도 함덕19일 차(2)

좋아하는 마음이 우리를 구할 거야


새탕라움가는길과 새탕라움의 입구


마음을 다독이며 새탕라움으로 가는 길. 제주도 현지인들이 살법한 주택의 골목골목을 지나, 바람이 모이는 매서운 골목길을 뚫고, '여기가 맞나?' 할 즈음 만난 조그만 명패와 갈색 철문. 문자로 알려준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면서도, '이곳이 정말 맞는가? 다른 집 대문을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집주인이 '누군데 남의집 도어락을 이렇게 누르냐!'면서 묻는 일 없이 제대로 도착했다.


제주도 방언인 줄 알았던 '새탕라움'이라는 이름은, 독일어인 'seetang(해초)'과'raum(공간)'을 합친 이름으로, 의역하면 '해초의 공간'이 된다. '제주'라는 섬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해초'라면, 새탕라움은 이 해초들이 다양한 창작활동과 실험을 펼치기를 바라는 공간으로,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너무 근사하여 샘이 날 정도였다.



모든 것이 무인시스템으로 돌아는 이곳은, 미리 예약을 하면 당일 아침 문자로 현관의 비밀번호를 알려 주는데, 어쩐지 비밀요원이 은밀하게(?) 임무 메시지를 받은 기분이 들어 재미있다.(하하하) 이 예약한 시간만큼은 내가 집의 주인이자, 관람객이자, 서가의 독자가 될 수 있다. 어떤 방해도 없는 공간에서 작품과 오롯이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1층과 2층 모두 전시실이 있는데, 작품도 작품이지만 2층에 있는 무인 북샵 또한 이 범상치 않은 공간에 신묘함을 더해준다. 처음엔 혼자여서 무서웠다가, 어리둥절하게 공간을 다 훑고 나서야 전시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며, 공간이 주는 힘을 또다시 느낀다.   


새탕라움에서 나와 제주의 도심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지난밤, 짧은 대화를 나누었던 룸메가 알려준 중고서점인 <동림당>도 갔다가, 근처 <공간 이아>라는 곳에서 제주대학교의 예술대 학생들의 졸업전시를 하고 있다는 현수막을 보고 어떨결에 방문하기도 했다. 제주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작품들, 풋풋하고 재기 로운 작품들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제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어쩌면 이친구들도 제주의 '해초'같은 존재가 아닐까?  제주에는 근사한 해초들이 많구나. 건물을 나와 또다시 길거리를 배회했다. 엄청난 바람과 흐릿한 날씨와 사람이 없는 거리가 어쩐지 적적해 보였다.






오늘 유일하게 나를 설레게 했던 계획인 저녁시간. 지난번 갔던 존맛 식당에 가서 문어 짬뽕과 하이볼을 먹을 예정이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에 가장 완벽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버스가 너무 일찍 도착해 버린 탓에,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기까지 1시간을 방황해야 했지만, 기다려야 했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저녁 메뉴를 정해놓고 하루 종일 그 음식을 생각하다 보면, 온몸과 마음이 그 메뉴에 세팅이 되어있는 기분. 그런 날은 메뉴가 절대 바뀌어서는 안 된다. 꼭.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지난번에  좋았던 기억이 오늘 나를 또 이곳으로 데리고 와 주었다. 양이 너무 많았지만, 많다고 해놓고 하이볼까지 야무지게 다 마시고, 푸른밤 소주잔을 얻기 위해 푸른밤을 테이크아웃했다.(음식점에서 소주 테이크아웃 하는사람 나야나) 알딸딸~한 취기에 걷는 밤길이 좋았다. 배가부르니 춥지도 않았다.

그 기분 좋음에, 오드랑 베이커리까지 걸어가서 유명한 마늘빵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내일 아침으로, 하나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드렸다.(마치, 아빠가 회식 후 기분 좋게 사온 치킨의 느낌이랄까) 사장님께서는 처음 함덕에 왔을 때 이 마늘빵을 엄청 먹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먹어서 잘 안 사 먹게 되셨다고 한다. 오랜만에 먹는다며 고맙다고 하셨는데, 정말 현지인스러운 대답이었다.(하하하)


반강제적으로 밖으로 나돌아야 하는 상황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하루에 기분이 노곤하게 좋았다.


우리는 살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저마다의 밧줄을 잡습니다. 그건 종교일 수도 있고, 연애 혹은 반려동물일 수도 있으며 술이나 운동, 여행...,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단지 제가 붙잡은 밧줄이 덕질이었을 뿐. 방식은 제각각 다르지만 그건 모두 사랑의 다른 이름일 테니까요.

 <정지혜-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p.38 >



오늘 내가 잡은 밧줄은 여행, 그림, 책, 바다,  짬뽕, 술, 마늘빵이었다. 아이고 많다~

그래! 역시 좋아하는 마음은 우릴 구하는 거야♥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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