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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May 11. 2022

쉰네 살 명퇴자의 [쿠팡 물류센터]  도전기(1)

-유튜브 광고에서는,, 월 338만 원(!)을 벌 수 있다던데....

사실 쿠팡 물류센터에 취업해보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었다. 느닷없이 실직자가 되고 나서 2여 년 동안 200군데가 넘게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깜깜무소식이거나,      


"... 안타깝게도 서류전형 합격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번 전형을 통해 피터팬 님과 좋은 인연으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꿈꾸는 인생은 반드시 실현되리라 믿으며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향후 피터팬 님을 다시 만나 뵐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앞으로 펼쳐질 삶에 성장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공허한 메시지만 100여 통 이상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서류전형 낙방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다들 짬짜미로 '복사&붙이기'를 하는 건지 내용이 다 똑같았다. 그리고 낙방 소식이 늘어날수록 하루하루 생활비의 압박 역시 빛의 속도로 늘어가고 있었다.


특히 내가 [사람인], [인크루트], [알바몬] 등 여러 취업포털에 이력서를 넣으면서 취업 관련 콘텐츠를 자주 봐서 그런지 '전 세계에서 내 마음을 가장 잘 안다는 우리들의 찐친 유튜브 AI'는, <쿠팡 물류센터 구인 광고>를 하루에 한두 번씩은 내게 꼭 노출을 시켰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지원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끝끝내 망설이기만 했던 건, 지난 25년 동안 MBC 라디오 PD로 지내오면서 프로그램 연출이나 기획을 하며 지식노동자로 살아왔던 내가, ‘과연 육체노동으로 밥 벌어먹고 살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고, 더 중요한 다른 이유는 나의 불치병인 '만성 요통' 때문이었다.      


피터팬은 친구들에게 ‘유리 허리’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걸핏하면 허리가 삐끗 어긋났고, 그럴 때마다 송곳 같은 날카로운 통증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만큼 아팠다. 꼼짝도 못 하고 외마디 신음소리만 질러대는 와중에 통증이 더 심한 경우엔, 다섯 발자국 떨어진 거실 건너편 화장실까지도 기어갈 수가 없어서 소변통을 옆에 차고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나날도 많았다.


<화장실에 마음 편히 걸어서 가고 싶다규!! >


물류센터에 취업을 하면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이 많을 텐데...
과연 내가 아프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갑자기 극심한 요통 때문에 꼼작도 못하다가 컨베이어 벨트 위로 쓰러져서
배송 박스 안에 담긴 뒤 '로켓 배송'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40대에 실직을 하고 한참 힘들었던 시절 모 대기업 물류센터에서 잠시 일해 본 경험이 있다는 대학 동기중 한 명은, ’ 나는 물류회사에서 3일 일하고, 허리가 아작 나서 바로 접었다’라며, 극구 만류하기도 했다.      


“피터팬!! 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한다는 것 나는 반대다. 소득이 없어서 지금 당장은 생활이 힘들더라도 좀 더 버티면서 너에게 맞는 다른 일 찾아봐라”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의 말이 고맙기는 했지만, 지난 2여 년 동안 이미 생활고의 바닥을 버틸 만큼 버텼기 때문에, 친구의 다정한 위로의 말도 서류전형 낙방 메시지처럼 공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최근 쿠팡물류센터 광고를 보면,


‘바코드만 찍고, 월 338만 원 벌었어요’
‘쿠팡에서 일하고 나서, 비로소 제 생활을 찾았어요’
‘건강도 찾고, 사랑도 찾았어요’   

등등의 낚시성 광고 카피가 점점 더 피터팬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그래 한번 해보자!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아예 안 해보는 것보다야 낫겠지!


야무지게 인터넷으로 쿠팡물류센터에 지원을 하고 나니 문자가 왔는데,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근처에서 고양 물류센터행 셔틀버스가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하니 늦지 않게 오라는 내용이었다.      


"쿠팡 고양 1 물류 센터에 지원하신 피터팬 님~~    

우선 첫날에는 교육을 받으셔야 하니 5월 10일 웰컴 데이에 참여해주세요.   

교육에만 참가하셔도, 첫날 7만 8천 원을 수고비로 드립니다. "


제주도에서 평창동으로 이사 오고 나서 1년 만에 가장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은평구 불광역 중앙차로로 가니 벌써 10여 명의 아주머니, 아저씨, 혹은 젊은 아가씨와 청년들이 줄을 서있었다.    


-피터팬 : 저 혹시 이 줄이 쿠팡 물류센터 가는 셔틀 기다리는 거예요?

- 앞줄 여성분들 : (어머 저 아재 신참인가 봐~~) 네, 맞아요~~


‘참 열심히들 사는구나.. 근데 저 젊은 아가씨는 저렇게 여리여리하게 생겨서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을까?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오늘 기필코 7만 8천 원을 벌어서 저녁은 탕수육을 먹어보리라~ 이제 짜파게티와는 영원히 안녕이다~ '  


기대와 걱정 그리고 호기심으로 고양시 쿠팡 물류센터행 버스에 올랐다.


<서울과 수도권 전역을 촘촘히 연결하는 쿠팡 물류센터의 출퇴근 셔틀버스들. 로켓 배송의 고용유발 효과는 대단하긴 한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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