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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May 15. 2022

쉰네 살 실업자의 실패로 끝난 쿠팡 물류센터 도전기

-왜, 도대체 왜, 나는 안 되나요?  -

허리 부실, 돌싱남, 실업자, 사회 빈곤층인 쉰네 살 피터팬의 쿠팡 물류센터 도전기는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고 내가 일이 힘들다면서 꾀병을 부리거나, 엄살을 부려서 실패한 게 아니다.


웰컴 데이(쿠팡 지원자들이 첫날 받는 실습) 이후 참가자들에게 문자로 합격여부를 통보해준다고 했는데, 쉰네 살 실업자 돌싱남 피터팬에게는 이런 문자가 도착했다.      


금번 면접 및 현장체험 진행 결과,
아쉽게도 이번에는 쿠팡 가족으로 모시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헉!!  뜨아~~!
이미 주위 지인들에게 노동의 신성한 가치에 대해서 배우면서
하루하루를 성찰하고... 등등 이미 다 합격한 것처럼 말해뒀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쿠팡 물류센터는 매일 수백 명의 새로운 지원자를 뽑아야 할 만큼 일손이 부족한데, 그래서 큰 하자가 없다면 지원자들의 99% 합격되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기계처럼 같은 작업만 열심히 반복하면 되는 일에도, 쉰네 살의 돌싱남인 나는 자격이 없다는 말인가?? '


자괴감이 몰려왔다.    

사실 웰컴 데이를 마치고 다음날 바로 피터팬의 통장으로 '자그마치 8만 6천'이 입금되니까 기분이 무척 좋았었다. 심야 조를 하게 되면 야간수당으로 여기에다 '매월 52만 4천 원'을 더 주니까 매월 280만원! 혼자 사는 돌싱남 실업자 피터팬에게는 부족하지 않은 돈이었다.      


그런데 낙방이라니~~ ㅠㅠ 웰컴 데이 때 현장실습에서 내가 일을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내게 배정된 일은, 1)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진열대에서 찾아서 -> 2) 사과박스만 한 크기의 분류 박스에 담고  -> 3)이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 이에 올려놓는 거였는데 나름 열심히 했었다. 중간에 한번 화장실을 간 거 외에는 물도 마시지 않고 계속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런데,,, 결과는 낙방이라니!!


왜 날 떨어 뜨린 걸까?   

나보다 더 약해 보이는 여리여리한 여성분들도 열심히 잘 일하고 계신데, 대한민국 육군 상병 출신에다가, 비록 허리가 부실하다지만 허벅지는 튼실해서 다리 힘을 사용하면 물건을 적재함에 담고 카트로 옮기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데....


피터팬이 셜록홈스 혹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명탐정 '포와르'와 같은 천재들 뺨치는 추리력으로 생각해낸 매우 설득력 있는 불합격의 사유는 아래와 같다.  

    

1. 일단 내가 너무 잘생겼다. 제주도에 있을 때 '표선면 송중기'로 자타가 공인했으며, 평창동 월세집으로 이사 와서는 '평창동 공유'로 동네가 떠들썩했으니 준수한 외모에 대해서는 이미 말 다했다.
그렇다고 미남 미녀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할 수 없다는 편견을 피터팬이 갖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 준수한 외모의 노동자분들이 많이 계셨다.      
2. 그럼 무슨 뜻이냐고?
쿠팡의 최첨단 AI 시스템이 피터팬은 빼어난 외모뿐만 아니라, 뛰어나 연기력으로 봉준호 감독이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주연으로 낙점될 인물임을 미리 파악한 것이다!     


이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그렇다. 오직 이 이유만이 나의 불합격을 설명할 수 있음이야~~~ 한국인 최초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수상의 영광 피터팬에게 안겨주기 위한 쿠팡의 빅픽쳐가 가동된 것뿐이라는.....   


<강호형, 미안해요,, 봉감독의 차기작 주연은 접니다. 연세대 나온 친구 N이 봉감독하고 친분이 있다던데...전화기가 어딨나....>

 

데자뷔도 아니고, 또 낙방이야?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패닉 상황에서 피터팬의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건지,  

스스로를 송강호처럼 연기력이 뛰어난 명 영화배우라고 세뇌시켜보지만,,,     

이것 만으로는 도저히 심히 상한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다. ㅠㅠㅠ

     

고양시 쿠팡 물류센터에서 구체적으로 피터팬에게 배정되었던 일은 아래와 같다     

1. 직접 밀고 다니는 'L자 카트' 위에, 사과박스 크기 정도의 '분류 박스'를 올려놓는다.
2. 지급된 PDA가 가리키는 진열대로 가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분류 박스'에 담는다.
3. 몇 개의 배송 상품이 담긴, '분류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는다.
4. 위 <1번~3번>의 일을 '4시간 동안 기계처럼 계속 반복'한다
5. 1시간의 식사시간 동안 구내식당에서 무료로 주는 밥을 먹고, 휴식시간을 갖는다.
6. 휴식 후 다시 4시간 동안, 위 <1번~3번>의 일 즉, '분류 박스'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는 일을 반복한다.                

참고로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분류 박스는 포장을 하는 작업장으로 옮겨지고, 그곳에 일하는 분들을 4시간 연속으로 박스 포장만한다.       


위의 작업을 쿠팡에서는 ’집품'(주문된 물건을 분류해서 한 박스에 모으는 일)이라고 부르는데, 위 일은 트레일러에 물건을 싣고 내리느라 허리가 아작 나는 일도 아니고, 또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물건 때문에, 4시간 내내 화장실도 못가고 물도 못 마시는 포장 파트의 작업보다는 더 수월하기 때문에 피터팬에게도 잘 맞다고 생각했었다. 다만 '집품'은 주문된 물건을 찾아서 공장을 쉴 새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데 걷는 건 나도 자신이 있었다.      


(전날,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피터팬 : 혹시 쿠팡에서 무슨 일하세요? 많이 힘드세요 허리 나가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저는 허리 통증이 심해서요..

경험자 주부님 : 우리는 '집품' 파트에서 일하는 데, 무겁고 힘을 많이 쓰는 업무라기보다는, 쉴 새 없이 걷는 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해요. 걷고 또 걸어서 진열장에 놓인 물건을 찾는 거라서요...

피터팬: (아싸! 나도 집품 파트에 배정되면, 허리 아파서 쓰러질 일은 없을 듯하구나. ㅎㅎ 허리가 부실해도 평지를 일반 속도로 걷는 건 무리 없이 할 수 있으니까,, 흐흐 드디어 생활비를 아끼려고 하루 1끼만 먹던 것도, 새벽에 너무 배가 고파서 짜파게티를 끊여먹던 생활도 이젠 끝이다! 내일 당장 소곱창부터 먹을 테닷!!)     


이렇게 설레발을 쳤었는데....


아 ~~ 최민식이 먹던 군만두보다 더 지겨운 짜파게티와의 영원한 이별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그래도 이 와중에 쿠팡으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자마자,  00 상조회사에서 '장례식장 전문 스탭'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문자가 왔는데,, 여길 다시 지원해야 할까?      


설마,, 장례식장에서 매일 밤에 일한다고, 퇴근길에 귀신 보이고 그런 건 아닐 거야.. 암 아니고 말고..   

아니야, 반드시 아니어야만 한다규~~~~


<짜파게티도 먹을만 하다! 먹을만 하다! 먹을만 하다!...아무렴 일요일엔 요리사 아빠가 해주는 요리인데 아~~~ 넘나 맛있어라~~~ㅠㅠ >


PS. 쿠팡 물류센터 관계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한곡 있는데, 그건 바로,  휘성의 [안 되나요].


안 되나요 나를 사랑하면
조금 내 마음을 알아주면 안 돼요
아니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살아가도 돼요
내 곁에만 있어 준다면



1. 오해가 있을까 봐 나의 입장을 밝히자면, 나는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조건'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래 쿠팡의 근로조건을 비판하는 기사를 첨부한다.

https://www.vop.co.kr/A00001552430.html

(하지만, 이 기사도 1년 전의 일이고, 사회적으로 비판을 많이 받자 쿠팡 물류센터도 현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


2. 쿠팡 물류센터 일을 하기 전에, 시작했던 '수제피자&비어펍'의 매니저 일은 어떻게 됐냐?라는 피터팬의 안부를 걱정하시는 애정 어린 문의가 많으셨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잘렸어요. ㅎㅎ
(사실은,,, 저보다 더 능력 있는 친구가 열심히 일하고 있길래, 그 친구가 매니저로 성장하는 게 더 맞겠다고 생각하고 자발적 퇴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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