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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Feb 23. 2023

[1984], 그리고 [대한민국 콜센터]

-영화, [다음 소희]에 붙여-

박근혜 정권시절 MBC에서 라디오 PD로 있었던 필자는, 노동조합의 간부였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회사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에 나를 위로해 줬던 유일한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지오웰의 소설 [1984]였다.  


영국의 천재 작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탈고한 소설 [1984]는, 작가가 생존하던 시대보다 40여 년 뒤의 디스토피아(어둡고 암울한 미래)를 상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2차 대전 직후인 1948년에 조지오웰이 상상한 미래는, 박근혜 정권 시절의 대한민국 또는 MBC와 많이 닮아 있었는데, 당시에 문화방송에서 노동조합 간부였던 나는 1948년에 오웰이 상상한 미래에 '동질감' 같은 걸 느꼈고, 동지를 만난 듯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2023년. 나는 대한민국 콜센터 노동자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KT 그룹의 자회사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인데, 신용카드의 고객을 상대로 상담을 한다.

그리고 오늘 회사로부터 이런 공지를 받았다.      


“성희롱, 성추행 등의 우려가 있으니 남녀 직원 단둘의 만남을 자제”     


오전에 회사 팀장이 46명의 팀원들 전체에게 보낸 메시지를 잠깐 들여다보고, 나는 계속 울려대는 전화를 받는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직장 동료가 내게 물었다.

     

“여기가 북한이에요? 성인 남녀가 퇴근 후에 서로 만나는 것에 대해서
 회사가 이래라저래라 해도 돼요?”     


나는 대답했다. “북한에서도 요즘은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지 않나?”     


그리고 잠시 우울해졌다.

길게 우울해하기에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 밀려오는 상담 전화를 받아야 했으니까.      


집으로 오는 길에 수년 전에 읽었던 조지 오웰의 [1984]가 다시 생각났다.

소설 속의 사회에서는 무시무시한 독재자가 TV 모니터를 통해서 국가의 모든 인민들의 행동과 말, 심지어 생각과 사랑까지 통제한다. 그래서 소설 [1984] 속 남녀는 개인적인 이유로 서로 만나서는 안된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사무실에서 알던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이 둘은 독재자의 눈을 피해서 점심시간 무렵 밖에서 잠시 만나 은밀한 데이트를 즐기는데, 그런 이유로 극심한 고문을 받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전기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을 밀고하는데, 여인 역시 끔찍한 고문을 받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  


2023년 대한민국 콜센터 노동자들은 평균 하루 100여 통이 넘는 전화를 받는데, 우리 사무실에서는 하루에 130여 통 정도를 받는다. 하지만 하루에 100여 통 이하의 콜을 받으면, “입사 3개월이 넘는 사람이 심지어 아직도 100통을 못 채운다”는 잔소리를 듣게 되고,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 특별 면담을 갖게 된다.      


엊그제는 책상 위에 놓인 내 스마트폰의 카톡을 힐긋 봤었는데, 잠시뒤에 팀장이 “대놓고 핸드폰 보지 마시오”라는 전체 팀원 대상 공지를 올려서, 그 뒤에는 핸드폰은 서랍에 넣어두고 퇴근할 때까지 꺼내지 않는다.   


나는 2023년 대한민국 콜센터 노동자이다.

기본급으로 최저임금 월 2,010,000원을 받고, 식대 10만 원이 추가된다. 하루 120 콜 이상을 받으면 매월  2,640 콜(22일 근무기준)을 받고, 인센티브로 10여만 원 정도를 추가로 더 받을 수 있다.     


나의 경우 8시간 근무 중, 1분~2분씩 짬을 내서 화장실을 3번 정도 갔다 오는데, 점심시간 외에는 화장실도 아예 안 가고 8시간 연속으로 전화를 받는 콜센터 직원도 있다. 적정 콜 수를 채워야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콜센터에는 아직 노동조합이 없다. 그래서 장기근속을 해도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고, 이유없이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고객으로 부터도 부당한 지시를 하는 회사로부터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이직 역시 매우 심하다.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을, 또는 우정을 대기업의 하청 콜센터가 혹은, 우리 사회가 혹은, 나의 대한민국이 막을 수는 없게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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