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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Jun 04. 2022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 / 서문탁

-결코 시들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서문탁의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이라는 노래가 발표된 것은 1999년 10월이었다.   

당시에 나는 뭘 하고 있었더라...?     


1년 동안 인도와 네팔 히말라야 그리고 중국의 티베트 마을들을 횡단을 하고 와서 회사에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년여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라디오를 켰을 때  우연히 들었던 노래가 이 노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서문탁의 이 노래는 그해 연말에 MBC 라디오로 다시 복귀하고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생방송으로 들었었다. 서문탁 씨는 라디오 출연도 많이 했었기 때문에 바로 코앞에서 그녀의 스튜디오 라이브 공연도 참으로 많이도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1990년 후반)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라디오의 전성시대'였고(음악 케이블채널들이 아직 전혀 힘을 쓰지 못하던 시대였다), 라디오 중에서도 MBC FM과 AM 두 채널을 합한 점유율이 전체 한국 라디오 시장에서 6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었다. 때문에 국내의 어떤 인기 가수라도 MBC 라디오의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음악을 홍보하고 싶어 하던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음악적 자원이 넘쳐나던 MBC 라디오 PD직을 버리고, 인도와 네팔의 히말라야에 가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겠다며 라디오 국장에게 애걸복걸 싹싹 빌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이적의 별이 빛나는 밤에](인도로 1년여의 구도 여행을 떠나기 직전) 조연출이었는데, 그때는 [가족]이라는 노래를 담고 있던 이승환 5집이 발표되었고 이승환도 한참 활동 중이었던 터라, 별밤 요일별 게스트로 이승환, JYP 박진영, HOT 등 탑 가수들이 즐비하게 출연했던 때이기도 했다.      


이적과 함께 매일 2시간씩 별밤을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생방으로 진행하던 때였고, 동시간대 경쟁 라디오 프로그램인 SBS의 진행자 정재형이나 KBS 인기가요의 김동률이 본인들의 방송을 녹음을 한 날이면, 우리 방송이 더 재밌다면서 MBC 라디오 생방 스튜디오에 놀러 오던 때였다. 본인들도 녹음방송을 하면 더 재미있는 이적의 [별밤]을 듣는다면서...    


김동률과 함께 여의도 MBC 앞 호프집에서 골뱅이 파무침을 먹을 때, 동률이는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적아 우리 엄마가 나한테, 넌, 왜 적이처럼 진행을 잘하지 못하냐?
라고 뭐라고 하셨어”라며 투정을 하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전설적인 1990년대 가수들이 주위에 늘 있었고, 그들의 라이브 무대를 코앞에서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또 당시의 한국 음반 산업은 상당히 호황이라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같은 앨범이 300만 장이 넘게 팔리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마치 세상의 모든 문화자본은 대한민국 음반시장에만 집중되는 듯했고, 또한 그 중심에 MBC 라디오가 우뚝 서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환경의 고마움을 몰랐다.   

매일 이적과 신해철 유희열 이승환 이소라를 만날 수 있던, 그런 최고의 음악적인 혜택을 매일 같이 과분한 월급을 받으면서 누릴 수 있었지만, 나는 천국 같은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애초에 난 시사교양국에 가서 광주의 진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시사 PD가 되고 싶었는데, 선천적으로 눈이 색약이라서 칼러 TV 시대에 TV 프로듀서가 못되고 나니, 소위 '라디오의 천국 같은 음악적 자양분'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인도와 네팔 그리고 중국의 서쪽 끝 파키스탄 국경의 산악지대로 도망가서 1년을 숨어 살았다. (그러고 보면 이미 그때부터 두더지 기질이 풍부했던 건지, 국내의 모든 유명 가수들이 소위 우러러보던(?) 스포트라이트에 나는 알레르기를 갖고 있었다) 사실 대학시절 내내 학생운동을 했던 소위 '꼰대 386세대'에 속하는 내가 겪었던 희한한 해프닝 중의 하나가, 고려대 축제에 변진섭이 출연한다고 하자, 학생회에서 '미 제국주의의 사랑노래' 타령이나 듣는 게 무슨 고려대 정신이냐면서 스크럼을 짜고 변진섭을 쫓아낸 적도 있었다.      


그만큼 투철한 이데올로기 정신을 맹신했던 나였기에, 한국사회의 노동자, 민주주의, 역사의 진실, 이런 걸 파헤치는 건 '중요하고도 거룩했지만', 딴따라 대중음악에 소명의식 같이 게 생기지는 않았다. 참으로 편협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시대도 견디며 통과해내야만  하'부조리의 시절'이기도 했다.    


암튼 1년의 도피 후에 다시 MBC 라디오 방송국으로 돌아갔던, 단 하나의 이유는 우연히 들은 서문탁의 노래 때문이었다. 당시엔 각 방송국 라디오마다 용인 에버랜드 야외무대에서 공개방송을 많이 했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회사로 복귀해서 '딴라라 음악 PD'가 되어야 하나?
아니면 MBC에 사표를 내고 독립 프로덕션에 들어가서 내가 하고 싶은 한국사회의 문제를 심도 깊게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PD가 되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을 들려왔다.   

   

애버랜드의 시원한 가을밤 하늘 아래 울려 퍼지던, 어느 라디오 방송국의 공개방송에 출연한 가수의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의 첫 소절을 듣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이적과 유희열과 같이 녹음을 하던 여의도 MBC 라디오 6층의 6 스튜디오가 너무나 그리워졌다. 또한 당시에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던 무수한 노래들이 가슴에 일렁였음도 물론이다.      


사실 요즘 쿠팡 물류센터에서 잘리고, 농협카드 및 케이뱅크 등 금융권 및 보험사의 콜센터 면접에서도 떨어지자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밤 9시부터 다음날 밤 9시까지 24시간을 내리 계속 한숨만 쉬면서 잠을 잔다. 그리고 다시 한숨을 쉬며 깨는 일과를 반복하고 있는데, 잠결에 우연히 1999년 아름답던 가을의 열정이 다시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서문탁의 바로 그 노래를 들었다!     


난 당시에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할지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보석 같은 뮤지션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었다. 어쩌면 10~20년 후 다시 지금을 돌아본다면, 좀 더 노력해서 쿠팡 물류센터의 배송 노동자들 혹은 카드회사의 콜센터 직원들과의 행복한 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지 않고, 이렇게 두더지처럼 땅속 깊숙이에서 잠만 자고 있는 현실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이젠 두더지의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ztlgKGKTq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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