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살이 식비를 아끼는 방법에 관한 수학적 고찰-
(수식이 나오니 초딩 산수에 약한 분들은 패~~쑤~~하시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 보니 식비에 대해서 깐깐해 질 수밖에 없다. 일단 제주에서 1년을 살기로 했지만, 1년 정착 자금을 준비하고 떠나온 게 아니고, 가족과 헤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살면 가족 생각이 덜 날 것’같아 급작스럽게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던 탓에, 여러 가지가 부족한 편이다.
글은 꼭 써야겠기에 노트북 하나를 챙겼고, ‘우울증을 억제’하기 위해 꼭 먹어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극심한 허리통증 재발을 막기 위한 정형외과, 그리고 이런저런 위장약과, 턱관절 통증을 줄이기 위해 치과에서 처방해준 진통제 등이 제주에 가져온 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계절이 바뀌다 보니, 옷도 부족했고, 글을 쓸 때 참고 자료로 쓸 책도 부족하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옷가지 몇 벌과, 우리 집 거실 책장 오른쪽에서 세 번째, 위에서 두 번째에 꽂혀있을 ‘도널드 서순의 유럽문화사 1권~5권’을 받았다. 서울에서 입던 옷 몇 벌과, 아끼던 책은 융통이 된다지만, 생활비는 어디서 충당할 도리가 없다. 지금은 안식년 중이라서 회사에서 받는 돈이 뻔한데, 그 돈의 대부분이 대출금 이자로 나가서, 내 수중에 남는 돈은 월 50만 원이 채 안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역병이 돌아서, 전체인구의 20~25%가 사망했다. 음악PD, 피터팬은 감자를 삶아 먹을때마다, 먹거리의 중요성과 굶주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
유흥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니, 남은 돈의 대부분을 식비가 차지하는데, 아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해보면 어찌 어찌 견딜만 하다. 우선 메인 요리인 찌개는 ‘다담’ 된장찌개와 순두부찌개, 부대찌개, 그리고 친구의 누님이 경남 하동에서 보내주신 재첩국을 며칠에 걸쳐 돌려가며 먹는다. 그런데 이것 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얍삽한 '꼼수'를 좀 부린다.
내가 창안한 꼼수는 이렇다. ‘다담’ 찌개류 파우치를 하나 사면 3끼 정도를 먹을 수 있는데, 여기에 명시된 조리법보다 물의 양을 2배로 넣어 6끼니의 찌게로 만드는 거다. 그럼 싱거울테니 어머니가 보내주신 된장, 고추장 그리고 갈치속젓(멸치대용) 적당량을 넣으면, 3인분으로 만들었을 때와 맛이 거의 같거나 아니면 나의 천재적인 레시피가 더 맛있다! 이 조리법을 어디에 비싸게 팔아야되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의 천재적인 조리법으로 찌개를 끓이면, 된장찌개 6번을 먹는데, 총 드는 비용이 다담(1280원), 감자 2알(2천원), 양파반쪽(500원) 대파 두 줄 (1500원) 두부 1모 (1천원) 이렇게, 대략 6,500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쌀을 제외한 이틀 식비 즉 6끼 메뉴로 6,500원 정도만 쓰는 건데, 중간에 물린다고 찌개를 바꾸면 절약이 안되니까, 같은 메뉴를 6끼니 연속으로 먹는다.
순서는 된장찌개 6끼니 -> 순두부 6끼니 --> 재첩국 3끼니(냉동 포장된 재첩국은 물을 추가해서 양을 불려도 3끼니만 충당할 수 있다)-> 부대찌개 6끼니 이렇게 된다. 이렇게 하면 일주일이 지나가고, 월요일에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과학적으로 짜여진 식단표대로 새벽부터 일어나서 6끼니 분량의 된장찌개를 다시 끊인다.
유일한 단점은 같은 메뉴를 6끼니, 이틀 연속으로 먹다 보니 물린다는 건데, 이것도 해결 방법이 있다. 매 식사 후에 콜라를 한 컵 마시고 급하게 들이마시고, 트림을 ‘꺼~억~’크게 하면, 위에 켁! 걸려 있는 느끼한 음식물의 찐한 건더기들이 다 내려가고, 다시 순결한 위를 갖게 된다.
이와 같은 생활고의 와중에도, 나의 왕성한 남성성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서, 제철 과일인 토마토를 적당량 먹는다. 더불어 사치의 극을 달리는 마지막 화룡정점이 있는데, 2주일에 한 번씩, ‘표선면의 자랑-흑돼지 전문점, 수라간'에 가서, 삼겹살을 구우면서 왕의 호사를 즐긴다. 턱관절이 어느 정도 나아서, 이젠 천천히 고기를 씹어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바로, 2주일에 한번 흑돼지를 먹는 날이었다. 일 인분은 주문을 안 받기 때문에 혼자 가서 2인분을 시키고, 고깃집에서는 1인분만 먹고, 나머지는 싸갖고 집으로 온다. 찌개를 끓일 때 넣거나, 조금 떼어내 구워 먹기 위함이다.
세계여행을 많이 다니던 젊은 시절, 유럽과 중국, 인도에서는 매일 그날의 식비를 계산했었다. 돈을 벌지 않고 떠난 젊은 여행자의 돈주머니라는 게, 다들 ‘없는 집 쌀독’ 신세라 계획적으로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터팬에게는 인도의 평범한 서민들의 음식으로, 3달을 버텼던 젊은 날의 추억이 있다 >
유럽에는 6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그때도 식비에 워낙 큰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식단 계획을 세웠었다. 아침엔 무조건 바케트에 딸기쨈, 점심엔 노포에서 고기가 들어간 햄버거를 테이크 아웃(이렇게 먹으면 레스토랑에서 먹을 때보다 최대 1/10가격까지 저렴해 질 수 있다), 저녁엔 한국에서 챙겨간 미니 밥통에 밥을 해서 순창고추장과 유럽의 상추, 그리고 분말 미소 된장국을 출동시킨다. (쌀은 유럽 대형마트에서도 팔기는 하는데, 한국 쌀은 없고, 일본 쌀은 너무 비싸사서, 저렴한 태국이나 베트남의 안남미를 샀다).
유럽과 인도, 중국의 이곳저곳을 떠돌던 젊은 날엔, 몇천 원이라도 더 싼 숙소를 잡으려고 헤맸던, 한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가 힘들지 않았다. 그런 것도 다 추억이라 생각했고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때는 분명 지금보다 젊었고, 꿈이 있었고, 게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뭔가 근사한 일을 할 수 있을거’라는 무모한 배짱같은 게 있었다.
제주에서의 첫 1년은, 여행자 모드로 지내니, 지금처럼 식비를 쪼개고 쪼개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말에 명퇴를 한 이후까지 계속 ‘젊은 배낭여행객 모드’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제주 MBC에 다니는 후배가 [제주 중장년 취업센터]에서 조언을 받는 걸 제안을 했는데,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오름 해설사'를 지원해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월 50만 원 정도를 준다는데, 오름 해설사라...잘 해낼 수 있겠지? 뭐든 처음이란 있는 거니까. 그래!, 보란 듯히 해낼 수 있을 거야!
ps. 이글은 생활비를 좀 넉넉하게 썼던 [제주살이 1년 생활비]를 발간하기 전인, 지난 5월~6월의 쪼들리던 계절에 쓴 글이다.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오름은, 화산섬인 제주도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들판의 '별' 같은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