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주라 친구야 !

- 고마운 친구 K의 편지-

by 이안

너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서 힘든 한 달이었습니다. 이렇게 괴로운 마음이 언제쯤 끝날지, 끝날수 있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로움을 달래 보려고 오래전부터 계획하던 고양이를 입양했지만, 냥이가 내 품에 안겨 귀여운 짓은 할지언정, 피터팬의 자괴감과, 어딘가로 사라지고만 싶은 마음을 달래줄 수는 없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집을 비우고, 제주시 삼양동 해수욕장의 검은 모래 해변과, 표선면의 편안한 돌담길을 따라서 많이 걸었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아무렇게 쌓아 올린 듯한 제주의 돌담은 어떻게 두 번의 태풍을 이겨냈을까요? 오히려 시멘트를 발라 굳건히 세운 듯한 담벼락은 무너져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제주의 돌담처럼 바람을 받아치는 게 아니라, 바람을 자신의 빈 구멍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걸까요? 돌담 위로는 제주의 감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감을 보자 구순이 다 되어 가시는 아버지와, 감을 좋아하던 아버지 때문에, 매해 추석 무렵이면 굽은 허리에 대나무 작대기를 짚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에서 익어가던 감을 따시던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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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표선면에서 익어가는 감 >


4남 2녀를 키우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떻게 그렇게 모질고 험난한 세월을 견디셨을까요? 아버지는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월남전에 참여해서라도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결심을 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그분들에게, 잔인한 시간을 버티고 견디게 해 줄 굳은 의지를 주었을까요? 그리고 저는 왜 이리도 나약해서, 바스러질 것 같은 자존심과 무릎을 펼 수 없도록 짓누르는 자괴감에서 헤어날 수 없는 걸까요?


해수욕장에서는, 잠시 구름 사이로 빼꼼 드러난 햇볕에, 늦은 여름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니고, 스노클링을 하는 젊은 친구들은 큰 소리로 까르르 웃고 있었지만, 그 모든 풍경은 슬로비디오처럼 느릿느릿 흐르다가, 이내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기분은 축 쳐져,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기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K는, 좀처럼 남에게 말하지 않던, 일찍 돌아가셨던 아버지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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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야!

대학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내 아버지는 생신 밥을 드시고, 다음날 새벽 아무 말씀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심장마비셨는데, 뭐 당시는 갑자기 돌아가시면 그렇다고 했으니까. 뭘 알았을까 대학 신입생이. 그리고 동생은 중2였으니, 샌드위치 패널로 냉동창고를 만들던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처음 번 돈으로 산 내의를 아버지 관에 넣어드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1988년 이후에 난, 작은 외할아버지, 외증조할머니, 그리고 큰아버지까지 네 분의 상을 채 다섯 달도 안 되는 동안 치렀다. 군에 가기 전까지, 어머니가 숨을 쉬고 계신지 확인하는 게 다반사였다. 우리 나이의 남자들이 그렇듯, 아버지와 난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남은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었을 거야.


나조차 추스를 시간 없이 입대했고, 제대하고 보니 학비 부담에 동생이 또 군에 가야 할 시기가 되었고, 그렇게 그렇게 살아왔다. 그 시절 자다가 문득 동네분들에게 어머니가 '제 아빠가 있을 땐 몰랐는데, 돌아가시고 방학마다 일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은 기억이 , 아직도 내 귓가에 남아 있다. 그리고 당신 가슴엔 동생을 보면, '아빠라는 소리 이제 못해서 어쩌냐' 하는 슬프고 아리고 미안한 맘이 , 늘 배어 있으셨다. 지금 40대 후반의 동생을 봐도, 난 여전히 그 시절 중학생만 같다.


난 아무리 힘들어도, 가늘고 길게 살아 내 자식이 결혼할 때, 결혼식장 아버지 자리에 앉는, 최소한의 내 생명줄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산다. 동생의 상견례 날도 결혼식날도, 어울리지 않지만 혼주 노릇을 당당히 하려고 했다.


친구야,

내가 결혼이 늦어 아이가 이제 13살, 16살이다. 지금은 아들들이 널 원치 않아 보여도, 조금 크면 네 마음을 받아들이리라 믿는다. 그때 네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겠니? 나도 살아 보니 그렇더라. 내가 힘드니까, 울 아버지 돈 번다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맘이 점점 짙어간다. 편할 땐 모르는데, 좀 힘들고 어려우면 그 생각이 더해진다.


친구야, 그냥 버텨주면 안 되겠니?

조금 비굴하고 찌질하면 어때? 세상이 네 맘 같지 않아 쉽지 않지만 뭐 어때,

그러려니 하고 버텨보는 거지.. 버텨주라 친구야...”


어제 친구는 이 메시지를 보내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이 메시지를 읽었던 삼양동 해수욕장에서 함께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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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일렁이는 불빛을 비추며 제주도에 밤이 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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