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빚 100만 원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처음 시작은, 꿈에도 그리던 알리 올리오 파스타 때문이었다. 통 크게 20인분의 파스타 면과 소스를 주문했는데, 5만 원 정도가 필요했고 통장 잔고는 간당간당했다. ‘에이~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일단 지르고 보자’하는 심정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부여잡으며, 카드사 어플에서 장기대출 신청을 해버렸다.
‘돈도 없는 놈이 카드빚을 내서, 자기 먹고 싶은 건 맘껏 사다니, 도덕적 해이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양심의 가책이 생겨 처음엔 좀 께름칙했는데, 막상 결제를 하고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맛있는 파스타를, 냉장고에 3달째 묵혀있는 와인 한잔과 같이 먹을 생각을 하니, 경제적으로 크게 쪼들리지는 않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꼬물꼬물 그분이 오시기 시작했다. 지름신.
그녀는 내게 속삭였다.
‘이왕 카드빚낸 건데, 뭐 어때?
3개월 동안 눌러왔던, 쇼핑 욕구도 한번 발산해보지 그래?
’ 파스타 사고 이렇게 행복해지는데, 더 큰 걸 사면 더 행복해질 거야!‘
맞는 말 같았다. 비록 카드빚 100만 원이지만, ‘내가 소비를 해서 그 이상의 행복과 가치를 누리를 수 있다면, 빚을 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는 어차피 돈이 돌고 도는 소비사회’이고, 빚으로 지탱되는 거대한 유기체 아니던가? ‘역시 나는 경제학도답게 똑똑하군.
생각의 큰 틀을 바꾸고 나니, 우리 집 근처 표선해수욕장에서 바다 전망이 ‘캡짱 슈퍼 울트라’ 잘 보이는 무료 야영장이 생각났다. 그곳에 텐트를 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게다가 그동안 표선해수욕장 근처를 오며 가며 지켜봤는데, 이미 5월부터 나 같은 홀아비들, 혹은 가족 단위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걸 띄엄띄엄 볼 수도 있었기에 더욱 욕심이 생겼다.
1인용 텐트!. 100만 원도 생겼겠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살 용기를 내겠는가? 제주에서 지난 3개월 동안, 내가 꼭 사고 싶었지만 참고 참아왔던 것이 아니던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5만 원부터 15만 원까지, 여러 가격대의 텐트가 보였다. 그런데 평소 야영을 좀 하는 친구들 말을 들어보니, 5만 원짜리 ‘원터치 텐트’는 텐트를 치기는 쉬우나 의외로 접을 때 고생을 한다고 반대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제일 비싼 명품 ‘코오롱’, 그 이름도 유명한 국내산 코오롱 텐트를 만원 할인받아, 14만 원에 샀다. 내게 유혹의 귓속말을 해주신 ‘지름신’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텐트를 사고, 나도 잘나가는 캠핑족이 되는 건가 ?^^>
텐트를 사고 나자, 80만 원 정도의 돈이 남았는데, 그분이 다시 내게 오셨다.
‘지름신’은 내 귀에 또 속삭이며,
‘바닷가에서 텐트를 치고 쉴 때, 세련된 반팔 티도 한번 입어봐~
그럼, 바닷가에 놀러 온, 재벌집 20대 귀한 영애(令愛)가,
너한테 반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그리고 해수욕장에서 수영할 때 필요한 래시가드도 하나 사봐~
요즘 그런 게 유행이래~~ 어때, 좋지?’
역시 우리의 ‘지름신님’은 현명하셨다. 어찌 그리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본단 말인가? 반팔 티와 래시가드를 사고 나자, 이젠 다시 먹거리 쪽으로 눈길이 갔다. 그동안 제주에 내려와서 대형 마트에서 파는, 저가형 꿀을 사 먹었는데, 서울에서 먹던 ‘안상규 벌꿀’이 먹고 싶어 졌다.
꿀은 단맛보다도 꿀을 한 수저 입안에 넣었을 때 ‘풍미’라는 게 살아있어야 한다. ‘안상규 벌꿀’은 세계 양봉대회 대상에 빛나는 꿀답게, 한 수저를 떠서 입안에 물고 있으면, 들판의 야생화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자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안상규 벌꿀 협찬 아닙니다~!)
제주에 와서는 그 풍미를 못 느끼고 살았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질러 보자. 꿀을 장바구니에 담고 나자, 이젠 오렌지주스 중의 명품 ‘콜드 오렌지주스’도 마시고 싶어 졌다. 주스를 담고 나자, 다음엔 탄산수.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것, 또 다른 것,,, 지름신과 나는 주거니 받거니, 얼쑤 좋다, 인터넷 장바구니가 미어터지도록 상품을 가득 담았다. 아~배불러! 그동안 잊고 있던 행복이란 바로 이런 거였어!
‘자,, 그럼, 대출을 갚을 일이 남았는데, 이자율이 15.25%에, 36개월 할부니까, 한 달에, 거 뭐시냐... 대략 4만 5천 원 정도 아껴 쓰면 되는 거 아닌가?’ 까짓 거 그 정도를 못하겠는가? 사나이 피터팬이 한번 결심하면, 바위는 못 쪼개도, 무는 쪼개는 사람인데.
‘그런데, 가만 보자, 4만 5천 원을 아끼려면.. 탄산수 50병 주문한 건 뺄까?’
그러고 보니, ‘주스도 뭐 그렇게 필요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그리고 꿀도 뭐.. 그냥 저가용 꿀로 먹으면 4만 원 아낄 수 있잖아? 그럼, 이것도 다시 빼고, 반팔티? 이것도 오래전부터 입던 게 몇 벌 있는데, 이것도 빼자. 래시가드? 이것도 이혼한 아내가 보내준 입던 게 있잖아? 이것도 빼자. 그럼 텐트는? 아니 뭐, 야영한다고 꼭 바닷가 갈 일 있나? 우리 집 뒷 숲이 바로 야영지나 다름없는데, 밤에 거기에 가서 신문지 깔고 좀 앉아있다 오면 되지. 텐트도 빼자...
엥? 이러고 나니 장바구니에 남은 게 없네.
그럼, 나머지 돈으로 다시 다시 대출을 갚을까? 아~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 머리 아파 죽겠네. 위대한 성현님들께서 ‘욕심과 돈이란 골치 덩어리’일 뿐이라고 이미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돈 걱정 없이, 국민 모두가 부자로 사는 나라가 생각났다. 남태평양에 있는 그 섬나라 사람들은 조개껍데기를 돈으로 여기는데, 섬나라 국민 아무나 붙잡고 ‘혹시 당신은 부자인가요?’라고 물으면 다들 환하게 웃으면서 ‘그럼 지구 상 최고의 부자입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조개껍데기가 바다에 가득 있거든요. 이 섬에 사는 모두가 다 엄청난 부자입니다’라고 대답한단다.
그 섬나라 사람들은, 그 많은 바닷속 ‘돈’을 굳이 집에 놔두지도 않고, 그냥 바다에 그대로 둔단다. 조개가 바다에 살면서 더 많은 조개를 낳아서, 더 큰 부자가 되게 해 주니까. 돈과 관련해서 아무런 걱정도 없고, 집착도 없고 서로 누가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지도 않는, 모든 섬나라 사람들이 바다만 보면 행복해지는 나라인 것이다.
<바닷속 조개가 모두 금이라면, 금이 계속 생기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해질까 ? >
내가 사는 제주도에서는 나뭇잎을 돈 대신 사용하면 어떨까? 제주도는 나무가 정말 많으니, 그렇게 되면 제주도민 모두가 재벌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나뭇잎은 매해 봄과 여름이면 새롭게 자라나고, 또 가을이면 돈이 거리에 막 떨어지지 않는가? 제주도민 모두가 나무를 더 아낄 테고, 언제라도 산과 숲에 가면 돈이 있으니 돈 걱정 없이, 욕심도 내지 않고 잘 살지 않을까?
오늘 밤은 카드빚 따윈 잊고, 나무 왕국의 나뭇잎 부자로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엔 숲 속 나뭇잎을 밟으며 ‘만수르의 행복’을 만끽해 봐야겠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반짝이는 별들이 죄다 달러로 보인다. 지구별 사람들이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다 돈이라고 합의를 하면, 전 세계 사람들이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부자가 된 것처럼 행복해지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