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처음 지방의 오래된 아파트를 손에 쥐었을 때만 해도, '이게 과연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가득했다. 소액투자를 찾아 남들 따라 했던 지방 갭투자였다.
시간이 지나자 시장은 차갑게 식었고, 세입자와의 협의, 공실, 관리의 책임 속에서 ‘임대인’이라는 이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배워야 했다.
투자 수익에 비하면 그동안 마음 고생했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하나하나가 지금 이 선택을 가능케 했다. 이번에 갈아타기 한 아파트는 우리 부부가 임장데이트 하며 방문했던 곳이었다. '좋긴 한데, 가격이 넘사벽이야'라며 아쉬워했던 단지였다.
그때의 발품과 기록 덕분에 지금 이 타이밍에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 가격보다 훌쩍 뛴 가격, 일명 지각비를 내고 매수했지만, 기존 아파트를 최고가에 매도한 덕분에 가능했다. 부족한 자금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대출을 일으켰다.
운도 좋았다. 시세보다 몇 천만원 저렴한 가격으로 네고에 성공했다. 곧바로 들어온 세입자는 우리가 제시한 조건 그대로 계약했다. 예상보다 적은 투자금으로 매수가 이루어진 셈이다. 매수는 이렇게 물 흐르듯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지인들은 종종 내 이야기를 듣고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몇십억 짜리 아파트를 과감하게 지를 수 있냐고.
나는 결단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망설이고, 다시 계산하고, 또 되짚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놓친 기회가 많다. 이번 선택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백 번의 손품기록과 임장경험이 내 안에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부동산투자는 타고난 감이 아니라, 꾸준한 임장과 기록, 그리고 실패에서 얻는 학습의 결과물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한 가지에 깊이 몰두하는 스타일이었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오래 집중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곤 했다. 기억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매번 블로그에 임장 기록을 남기고 비교하고 생각했다. 그 결과, 4년 만에 진심으로 살고 싶어 하던 아파트로 갈아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원룸 자취방 꾸미는 게 삶의 낙이었던 철없던 30대 중반의 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아파트에 투자하고, 세입자와 협의하고, 임장하고, 기록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 사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한 생명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새로운 집에서 아이가 태어나 자라날 것을 상상하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이 집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 가족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첫 페이지라는 것이다. 아이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것이다. 집 앞 공원에서 자전거를 배울 것이고, 우리 부부가 대학생 때 다니던 추억의 거리를 셋이서 함께 걸을 것이다.
어쩌면, 부동산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등기권리증, 무덤까지 가져갈 것도 아니잖아요.”
5년 전, 당돌하게 외쳤던 나 자신에게, 이제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덤까지 가져갈 순 없지만, 이 집에서 만들어갈 추억은 우리 가족의 삶 속에 오래도록 남을 거라고.
돌고 돌아 깨달은 사실은,
결국 내가 원한 건 ‘집’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