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너무 사랑한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매우 발달한 오감 덕분에 상황 파악이 빨라 상대방의 감정까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이라고 미화를 해본 내 성격은 예민한 편이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며 기다린 아기에게조차 나의 예민한 성향을 완전히 버리긴 힘들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예민한 엄마라서 우리 딸이 예민한 건지
예민한 기질의 태아를 임신해서 내가 더 예민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스러운 우리 딸도 예민하다.
덕분에 감수성도 풍부하고 감정표현도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두 예민한 여자 사이에서 남편은 늘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살고 있다.
우리 딸은 또래에 비해 감각이 발달하여 낯가림도 심하고, 입맛도 까다롭고, 촉각도 민감하다.
그렇지만 나는 예민한 것이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우리 딸이 그 감각들을 고스란히 잘 간직하고 자라서 보다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는 원래 시끄러운 소음에 매우 민감한 편이지만 내면의 스트레스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음악은 주로 댄스나 락을 즐겨 듣곤 하였다.
그러나 뱃속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까지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준다면 아기가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임신을 한 이후로는 주로 클래식이나 재즈음악을 듣게 되었다.(물론 아주 가끔은 좋아하는 댄스음악을 들었지만..)
엄마라는 위대한 이름하에 그이후 들었던 재즈와 클래식이 너무 좋아서 이제는 나의 음악 취향까지 변하였다.
요새는 재즈, 클래식을 주로 듣는다.
그러면 마음이 확실히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비록 남편은 난데없이 클래식에 빠진 나에게
“뭐 이상한 거를 듣고 있노.”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나는 태교를 핑계 삼아 의상 전공자로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나만의 의무감(?)으로 아기의 배냇저고리, 손싸개, 발싸개, 인형, 신발 등 다양한 딸의 출산 선물을 바느질하였고 그 외에도 초점북, 모빌 만들기, 태교 일기장, 축하 토퍼 등 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임신 중 마음속에 가끔 끓어오르는 분노(?)도 사그라들고 평상시에도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그나마 초점북은 프린트 도안이었지만 토퍼는 일일이 검은색 종이를 칼로 도려내고, 흑백모빌도 손으로 각각의 모양을 펠트지에 그려서 다 자른 후 손바느질을 하느라 매일 손이 여기저기 찔려서 피가 났다.
투명 OHP 필름과 화이트 마카로 만삭 소품을 만들어 남편과 여행도 많이 다녔다.
'꽃님이'에게 다양한 꽃을 많이 보여주기 위해 전국의 꽃 축제를 찾아다녔고 비록 비행기는 불안해서 못 탔지만 편도 7시간 거리의 강원도까지 만삭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시험관으로 어렵게 가진 아기라 모두들 만삭 여행을 반대했지만 엄청 고민하다가 해외는 포기하고 그나마 휴게소마다 쉴 수 있다는 명목 하에 긴 장거리 운전으로 모두에게 비밀로 한 만삭 여행을 떠났다.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모르신다.)
그렇지만 마치 생리주기처럼 한 달에 한 번씩은 극도로 예민해졌고 남편과 크게 싸우고 울었다.
엄마라면 참고 견디고 이겨내야겠지만...
그게 옳은 일이지만 나는 잘 안되었다.
뱃속의 소중한 아기보다 내 감정이 우선이 되어버리는 철딱서니 없는 엄마였다.
하긴 지금도 우리 딸을 너무 사랑하지만 아직도 이해심 넓고 온화한 엄마의 길은 먼 것 같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름 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초반부터 입덧도 엄청 심했고 임신유지를 위해 호르몬제를 계속 투입해서 부작용으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가려웠지만 임신 중이라 약을 못써도 다 참아내야 했다. 그것도 엄마였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노산이라 만삭까지 안심할 수 없었기에 평소에는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집에만 주로 있어서 스트레스도 많았고 몸도 무거웠지만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소중한 딸이기에 너무 감사했다.
너무 어렵고 힘들게 갖게 된 우리 딸이지만 만약 남들처럼 좀 더 쉽게 임신과 출산을 했더라면 오히려 나는 이렇게 정성을 쏟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예민하지만 그 감정들을 누르고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며 오랜 시간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딸이 무사히 태어나기만을 바라던 간절함 덕분이었다.
여전히 나는 예민한 엄마이지만,
우리 딸에게 더 너그러워질 수 있도록 매일 매일 노력하며 사랑하고 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너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