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소중한 딸이지만 나는 내가 우선일 때 행복하다.
장녀인 내가 어느새 마흔이 훌쩍 넘었고, 우리 엄마도 칠순이 넘으셨다.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에 본인의 것은 일절 사지 않으시고 우리 삼 형제에게 다 내어주셨다. 항상 같은 옷에 화장품도 싼 것만 쓰시고 액세서리 하나 구입하지 않으셔서 어렸을 때는 그냥 외모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만 생각했었다.
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던 엄마는 요리 실력이 뛰어나서 덕분에 우리 가족은 웬만큼 잘 사는 친구들 못지않게 늘 맛있는 요리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주부였던 엄마가 친구들 엄마처럼 직장을 다녀서 용돈을 많이 받는 것을 더 부러워 하였다.
정성 가득하고 맛있는 음식 대신 넉넉한 용돈으로 불량식품이라 불리는 군것질을 마음껏 하고 싶었던 철없는 마음이 가득한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늘 우리 삼 형제를 케어하던 엄마의 구속이 싫어서 직장 엄마를 가진 친구들의 자유가 부러웠다.
20대가 되어서도.
30대가 되어서도.
엄마가 되기 전까지 우리 엄마의 그 크나큰 희생의 가치를 나는 알지 못했다.
요즘 내 자신의 자기 계발을 빌미로 5세의 어린 딸에게 엄청난 자유를 부여하며 유튜브 같은 영상 노출에 아이를 방치하고 간식도 그냥 대충 과자를 주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셨겠지...
예전부터 힘들면 항상 멀리사는 엄마 생각이 난다.
그런데 오늘은 힘들다기보다.. 항상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던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 나게 고맙다.
잘 사는 애들보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못 시켜주셔서 늘 아쉬워하셨던 엄마는 당신의 삶은 온전히 우리를 위해 쓰셨다.
(게다가 첫째인 나는 동생들에 비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얻었다.)
우리가 모두 독립하고 나간 빈자리를 아빠와 단둘이 채우며 살아가고 있는 엄마지만, 그녀의 인생에 우리가 전부인 걸 잘 안다. 그래서 한때는 그것이 꽤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엄마가 아니었다면 우리 삼 형제가 모두 이렇게 바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늘 중심을 잡고 곁에 있어 줬고 모든 상황에서 절대적인 내 편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처럼 못할 것 같기에 그녀의 희생을 너무 존경한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딸을 너무 소중하게 얻은 만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그래서 가끔은 피곤하고 아프고 힘든 순간에도 내 시간의 우선순위를 딸을 위해서 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인생 전체가 딸을 위해 희생하도록 두지는 않는다.
엄마의 희생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나는 딸에게 희생에 대한 대가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딸은 무남독녀라서 내가 오로지 그녀만 바라보고 희생한다면 엄청 부담되고 힘들 것 같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내가 행복한 방법을 찾고,
나 스스로 매일을 즐겁게 산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딸에게도 매일 행복하고 멋진 엄마가 될 테니까.
나는 그런 엄마가 되도록 매일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