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도 앓았다는 '메니에르'라는 불치병
예민한 우리 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두 돌... 아니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내내 울었다.
부실한 체력탓에 자주 안아줄 수도 없었고 모든 게 처음이라 서툴렀기에 불만족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없었다.
저질체력의 노산 탓인지 아니면 미처 몸을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해서인지 꽤 오랜 기간 몸이 회복되지 않았고 한약이며, 흑염소이며 몸에 좋은 것을 챙겨 먹고 남편이 바쁜와중에도 최대한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도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친정이 멀어 조리원에서 3주를 보낸 후 엄마가 집에 와서 한 달을 같이 살았지만 엄마가 가시자마자 나는 계속 아팠고 결국 딸과 함께 친정으로 가서 한 달 동안 다시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다. 그렇게 칠순이 다되어 가는 나의 엄마는 본인의 관절이 여기저기 아파도 마흔 넘은 딸과 어린 손녀를 위해 또 희생을 하셨다.
한 달 후 어느 정도 몸이 괜찮아지자 집으로 돌아와서 최대한 몸을 챙겼고 그 와중에도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여 육아를 하였다. 그러나 우리 아기의 섬세하고 민감한 성향은 심신이 지친 내가 맞추기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이유식을 사 먹일 때 항상 정성껏 먹을 것을 직접 만들어주신 엄마를 떠올리며 나 역시 자연스럽게 초기부터 후기까지 모든 이유식을 직접 식재료를 사서 하나씩 다 만들고, 틈틈이 남편에게 아기를 맡긴 후 좋은 원단을 사다가 아이옷도 직접 만들어 주었다.
좀 더 쌩쌩하고 팔팔한 젊은 엄마, 아빠라면 훨씬 더 잘해줄 텐데...라는 마음에서인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복직 전까지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자기애가 무척 강한 나지만 우리 딸은 그런 나조차 희생하게 만드는 위대한 존재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알 길 없는 우리 딸은 본능에 충실하였기에 매일 심하게 울어댔다. 그 덕분에(?) 나 역시 몸의 회복이 매우 더디었다.
그리고 태어난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이름도 생소한 정체불명의 불치병 '메니에르'를 진단받게 되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무거운 몸도 회복할 겸 수영이라도 배워볼까 생각하며 신년 계획을 세웠다.
누구나 그렇듯 새해가 되면 없던 의욕도 새롭게 생긴다. 이런저런 계획들을 세우며 올 한 해도 알차게 보내보자는 나의 파이팅 넘치는 마음가짐과 다르게 여전히 새해에도 아기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평소 집 밖으로 외출을 전혀 하지 않고 육아에만 전념했기에 하루는 주말에 기분전환도 할 겸 남편이 인근으로 드라이브를 데려가서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평소 좋아하던 군것질 거리를 한가득 사서 차에서 먹었다.
오랜만에 너무 급하게 차 안에서 먹은 탓일까?
급체를 했는지 저녁에 계속 구토를 하였다. 몇 시간을 토하고 아픈 상태에서 겨우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에도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아기를 케어하는 데 더욱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아기는 더욱 심하게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안고 달래도 아기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고 좋지 않은 몸으로 어정쩡하게 오래 안고 있다가 아기가 빽!! 하고 울자 갑자기 귀가 윙윙 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큰 소음을 들었을 때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윙윙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귀 안이 먹먹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나에게 '돌발성 난청'이라고 하였다.
돌발성 난청은 원인불명의 불치병이었지만 일시적인 증상이기에 나는 한두 번 약을 챙겨 먹은 후 그냥 낫겠지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며칠을 방치하였다.
그런데 귀의 증상이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되는 느낌이 들었고 하루는 여느 날처럼 물티슈로 바닥의 먼지를 닦아내고 일어서는데 하늘이 빙그르르 돌았다. 순간 눈앞이 하얘졌고 본능적으로 옆에 벽을 잡았는데 아마도 몸의 균형을 잃었는지 벽에 수차례 머리를 부딪히다가 넘어졌다.
옆에서 나를 보고 있던 아기는 엄마의 희한한 몸짓이 웃겼던지 깔깔거리며 신나게 웃어댔다.
나는 주말에 좀 더 큰 이비인후과에 갔다.
이런저런 청력테스트 후 의사의 진단은 '메니에르'라는 생소한 병이었다.
“제가 구토를 심하게 해서 일시적으로 그런 건 아닐까요? 갑자기 귀에 압력이 가해져서?”
“귀에 물이 들어간 것 같아서 면봉으로 심하게 닦아서 그럴까요?”
…
“그런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원인 불명의 병이지만 계속 검사를 통해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꾸준히 약 복용하시고 매주 방문하세요. 커피는 끊으시고 저염식을 해야 하니 김치 등도 먹지 마세요.”
“네..?????”
의사의 자세한 설명도 부족했던 나는 '메니에르'라는 병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배우 한지민 씨도 한 때 앓았고 유명한 화가 반 고흐도 심하게 앓아서 귀를 스스로 잘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불치병이라서 심할 경우 평생 안 나을 수도 있고 10년째 병을 앓는 사람도 꽤 있었다.
증상이 악화되면 귀가 먹먹하고 안 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어지러움증을 동반하고 균형감각을 잃어서 길을 가다가 혹은 운전을 하다가도 언제든 갑자기 쓰러질 수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
원인불명인 만큼 스트레스를 주원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고 치료법이 명확하지 않아 완치도 어렵지만 완치 때까지 저염식은 물론이고 커피, 술을 모두 끊어야 했다. 술은 원래 즐기지 않지만 매일 마시던 커피를 못 먹는 것은 꽤 힘들었다. 게다가 무염식에 가까운 저염식으로 식사를 하니 입맛도 없고 먹는 낙이 사라지니 삶의 의욕까지 사라졌다.
몇 개월을 무염식에 가까운 저염식을 먹으며 한쪽 귀가 안 들린 채 가끔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상황으로 지내다 보니 장애를 가진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클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누구든지 갑자기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에 다시 한번 감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개월 동안 병원을 다녀도 완치는 쉽지 않았지만 아주 서서히 귀의 먹먹함이 사라지면서 귀가 윙윙거리는 소리도 사라졌고 조금씩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정말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일 년정도 걸렸던 것 같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완쾌한 상태인 듯하다.
그래서 커피도 다시 마시고 음식도 짭짤하게 먹고 있다.
원래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불치병이라 평생 저염식을 할수도 있으니 초기에 치료를 잘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인간이란 참 간사한 게 좀 괜찮아지니 다시 본래의 습성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몇 년째 재발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초기였기에 가능한 일 같다.
우리는 일상에서 소유한 기본적인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자주 잊고 산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기에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잠깐이라도 잃게 되면 너무 소중했다는 것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함에 젖어 그 사실을 또다시 망각하고 살아간다.
나는 아주 잠깐 이명, 어지러움, 난청을 경험했지만 엄청나게 삶의 질이 떨어졌다.
게다가 나의 삶은 물론이고 뜻하지 않게 내 주변인들에게도 우울한 그림자를 전파하게 되었다.
나는 미처 머리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육아의 어려움과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문제(아이의 비명 울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원인에 한 몫을 한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이 꽤나 발생한다. 그러나 해결책이 없을 것 같은 일들도 애쓰다 보면 결국 실마리를 찾게 된다.
앞으로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발생하게 될 수많은 반짝 이벤트(?)들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생기겠지만...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현명하고 지혜롭게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