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도 못 지킨 못난 부모

슈퍼면역자라 맹신한 우리 가족의 전패

by Scarlett Jang

인사이동으로 정신없이 바빴던 한 달을 보내자 나의 체력은 끝없이 떨어졌고 매일 쌓이는 일상 속 스트레스를 감당해내기가 버거웠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할때도 특별히 외출금지를 하지 않고 잘 버텨내던 우리 가족은 나의 코로나 항복으로 인해 모두 처참하게 전패하였다.

그리고 나와 남편... 우리의 무지한 생각들로 우리 딸은 큰 고비를 겪게 되었다.




주말 없이 일하고 드디어 추석 연휴를 앞두자 그나마 무거웠던 내 마음은 한층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비록 명절 전날 시댁에 가서 열심히 명절음식을 준비해야 하지만 그 이후에 오랜만에 친정에 가서 가족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날 생각을 하니 기운이 났다.

그러나 추석 연휴 하루 전 새벽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심한 오한에 잠을 깼다.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자 남편은 한겨울 이불을 꺼내어 나에게 덮어주었고 급한 김에 타이레놀 한 개를 입에 털어 넣고서야 겨우 다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살 기운이 더욱 심하였다. 그렇지만 연휴 전 근무 날이라 몸살 감기약을 사서 먹고 억지로 출근해서 쌓인 업무는 물론이고 외근 근무까지 하고 나서야 늦게 퇴근할 수 있었다.


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집에 와서 대충 끼니를 때운 후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약을 먹은 후 일찍 잠을 청했다.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니 몸상태가 더욱 좋지 않아서 시댁에 가기 전 동네 병원을 들렀다.

연휴 첫날인데도 대기환자가 엄청 많았고 한 시간 넘게 대기하는 동안 온몸이 쓰러질 듯 아파서 끙끙거리며 앉아 있다가 불길한 느낌에 코로나 검사를 하였다.

역시나 예상대로 아주 늦은 후발자로 확진이었다.


다행히 남편과 딸은 아무 증상이 없었지만 내가 확진이라 어디에도 못 가는 아프고 슬픈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차라리 평일이었다면 딸은 유치원을 가고 남편은 출근을 해서 더 나을 텐데 연휴라 집에만 갇힌 우리들은 나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휴 마지막 날, 여전히 내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남편은 몸살로 딸은 고열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물론 보통 감기보다는 많이 아팠지만 처방약이 별도로 없었고 독한 감기라 생각하고 감기약을 먹는 것이 다였기에 남편도 딸도 그렇게 지나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딸은 고열이 3일이나 지속되었다.

그동안 38도가 넘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지라 해열제만으로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고 주위 조카나 지인, 친구들의 자녀들은 코로나로 40도가 넘어서야 입원했는데 하루 이틀 만에 나았다고 하길래 큰 걱정도 하지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해열제를 교차 복용하는데 약이 너무 맛없다고 하루 종일 짜증내고 칭얼대는 딸의 투정을 나도 역시 아프니 받아주기가 더 힘들었다. 삼일째에 짜증을 많이 내는 어린 딸에게 화를 버럭 내며

"너만 아픈 게 아니고 나도 아파! 약이라도 잘 먹어야지.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라며 신경질까지 내는 못난 엄마였지만 당시엔 미안한 감정도 없었고 모든 게 힘들기만 하였다.


딸이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새벽에는 끄곤 했기에 우리는 딸이 고열인 상황에도 밤새 에어컨을 켜 두지는 않았다.




넷째 날 아침.

평소보다 두꺼운 반팔 상하의를 입은 딸아이는 39.1도를 처음으로 넘었다.

우리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억지로 자는 딸을 깨워 약을 안 먹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삼십 분 넘게 하다가 해열제를 겨우 먹이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려고 남편이 거실로 나가고 나 역시 일어나 나가려는데 딸이 내 손을 잡았다.

전날 밤에 화낸 것도 미안하고 손을 꽉 잡는 딸이 안쓰러워 다시 침대 옆에 누워 잠시 있기로 하였다.


며칠 전부터 고열로 배가 많이 아프다고 했기에 배를 문질러주며 10여분이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뒤척하던 딸이 몸을 뒤집었다.

"왜?" 하며 딸을 보던 나는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딸은 눈이 뒤집히고 사지가 뻣뻣해지며 경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주변인들에겐 들은 적도 없었던 일이라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내 비명 소리에 남편이 뛰어와 아이를 급하게 안았으나 아이는 뻣뻣한 채로 입에 거품기를 물고 있었다.

급히 119에 전화를 걸자 절대로 안고 있지 말고 평평한 바닥에 눕히라고 하여서 시키는 데로 하니 아이의 몸은 풀렸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울먹이며 119와 통화를 하는데 애 옷을 벗기고 몸을 계속 닦아주며 방 온도는 서늘하게 해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119에서 응급대원들이 도착하는 30여 분동안 다행히 아이의 의식도 천천히 돌아왔다.

그들은 딸의 상태를 점검하며 고비는 넘겼으나 또 응급상황 발생 시 연락을 달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한참을 쓰러져 있던 딸은 '열성 경기' 이후 열이 38도로 떨어졌지만 우리는 또 경기가 재발할까봐 너무 불안하였고 해열제를 먹인 후 코로나 확진자여도 갈 수 있는 병원들을 수소문하여 오후 늦게 타지역의 병원을 찾아가 해열 주사를 맞힌 후에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이후 37.5도 이상은 넘지 않았고 이틀이 더 지난 오늘은 정상체온이 되었다.



열감기를 지독히 앓은 적이 없어서 너무나 무지했던 우리였고,

주위에서 40도까지 고열이 오른 사람도 많았지만 39도였기에 방심했고,

게다가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조차 지키지 못했다.


방 온도를 낮추고, 애 옷을 벗기거나 한 겹만 입히고, 수시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줬다면 아마 열성 경기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미안했고 죄책감이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피할 수 없지만 엄마와 아빠의 무지와 부주의로 딸이 너무 힘든 경험을 해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

게다가 내가 아프다고 며칠 동안 딸에게 피곤하다고 짜증만 낸 스스로의 모습이 무척이나 한심하고 싫었다.

아이가 경기하던 그 순간...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며 간절히 얻은 딸이 잘못될까 봐 정말 무서웠다...


여전히 부족하고 무지하고 미숙한 부모라 딸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건강해진 딸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고 매일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